언제 우리는 ‘삼성’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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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언제 우리는 ‘삼성’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사기극’ 은폐·방조한 관료를 ‘국민의 공복’ 자리에서 쫒아내야 한다

기사입력2017-10-16 19:04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언제쯤 우리는 재벌기업 삼성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언제쯤 삼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 나아가 돈·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관료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 노후자금을 불법적으로 동원해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의 가업승계를 도모했다는 혐의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건희 회장이 실소유주인 4조5000억원 규모의 차명계좌 ‘망령’이 다시 돌아왔다. 삼성의 임원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 명의 계좌의 50억원은 삼성의 비자금이란 양심선언으로부터 시작된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의 여진이 여전히 계속되는 있는 것이다.

한겨레 등 몇몇 언론은 ‘2008년 조준웅 특검으로 확인된 삼성 임직원 명의로 개설된 차명계좌 1000여개에서 실소유주인 이건희 회장이 약 4조4000억원을 찾아갔다’는 금융감독원 관계자의 전언을 보도했다. 이 회장은 조준웅 특검수사 과정에서 4조4000억원의 출처에 대해 횡령 및 배임을 통해 조성한 불법 비자금이 아니라, 자신의 부친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차명상태로 상속받았다고 주장했고, 특검은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였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차명계좌를 실명전환하는 방식이 아닌, 계약을 해지한 뒤 출금하는 방식을 통해 돈을 찾아갔다.

4조4000억원의 성격을 ‘불법 비자금’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했지만 ‘상속재산’으로 인정하는 것은 법률상 큰 차이를 갖는다. 불법 비자금이라면 이 회장은 4조4000억원중 단 한푼도 건질 수 없는 반면 상속재산이라면 세법에 따른 상속세 등을 부담하면 최소한 절반 가량의 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준웅 특검이 불법 비자금인 은닉재산을 찾아 면죄부를 주고,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걸림돌을 치워줬다는 비난을 받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검수사 결과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회장이 차명계좌를 실명계좌로 전환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어떻게 출금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긴급명령)‘이 시행된 1993년 8월12일부터 ‘실명전환 의무기간’(같은 해 10월12일까지) 이후에 실명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그동안의 이자·배당수익의 최고 99%를 소득세·주민세를 부담해야 한다. 또 긴급명령 발동일 당시 자산 가액의 50%(의무기간 5년이상 경과)의 과징금도 부담해야 한다. 결국 이 회장은 실명전환 과정을 건너뜀으로써 많게는 조 단위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는 과징금과 세금을 내지 않았다.

차명계좌의 경우 실명전환의무를 이행해야만 금융거래가 가능하도록 금융실명제법이 명시하고 있음에도, 실명전환 절차없이 이뤄진 이 회장의 출금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 ‘법 위에 삼성’이었던 현실 또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삼성의 ‘힘’이 작동했기에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이다.

먼저 금융위원회가 삼성을 도왔다. 금융위원원회는 차명거래에 의한 기존 금융자산이라도, 그 명의가 주민등록표상 명의라면, 이는 기존 비실명자산에 속하지 않아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가공의 인물이 개설한 계좌만 차명계좌라고 좁게 해석한 것이다. 자신의 명의 이외에 타인, 어떤 이의 이름을 빌어 통장을 개설해도 차명계좌가 아니란 것이 금융위원회의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금융위는 이 회장이 실명전환을 하지 않고 차명계좌의 돈을 찾아갈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한 셈이다.

금융위의 이같은 해석은 불법(비)자금 조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금융실명제 도입 취지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해석이다. 이와관련 삼성의 이번 ‘차명계좌 사건’을 폭로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위 주장대로라면 금융실명제가 아니라, 차명거래촉진제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2008년에 조준응 특검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이후 이건희 회장 등 삼성의 최고 경영진 상당수가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1, 2 ,3심을 거쳐 2009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앞서 이 회장은 ‘삼성비자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차명계좌를 실명계좌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이 회장은 실명전환 과정에서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악화된 국민정서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즉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국민 약속과 무관하지 않다.

특검수사 결과 발표, 이 회장의 사퇴와 대국민 약속이 있은지 9년이 지났다. 이 회장은 국민에 대한 약속과 달리 4조4000억원 전부를 ‘회장(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사용했고, ‘유익한 일’에 썼다는 흔적은 전혀 없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금감원에 자료를 요청하지 않았다면 차명계좌의 실명전환 약속, 차명계좌 자금을 ‘유익한 일’에 사용하겠다는 이 회장의 대국민 ‘사기극’은 상당기간 또는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다.

실제 참여연대는 지난 6월 국세청에 2008년 삼성특검으로 밝혀진 차명계좌의 실명전환 여부에 대해 질의했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 제81조 13의 ‘개인정보 비밀유지 의무’를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또 참여연대는 지난 7월 금융위원회에 이건희 회장 자택 공사비에 사용된 수표가 실명전환을 하지 않은 차명계좌에서 발행된 것인지를 물었지만 역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개인정보,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문은 실명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에 대한 정부의 후속조치를 물었다. 차명계좌의 실명계좌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불법자금이 이 회장 일가의 이익만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국민과 언론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행정부의 관료들은 국민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혹 행정부 관료들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과 동일하지 않고, 이 회장이 추구하는 이해와 동일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는 이 회장의 대국민 ‘사기극’을 은폐·방조했던 관료들을 ‘국민의 공복’ 자리에서 쫒아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삼성으로부터 나아가 특정 재벌과 권력의 압력을 뿌리치고, 국민의 이익에 복무할 수 있는 관료사회 풍토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