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집유 무전실형 ‘이재용 판결’…공정경제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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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유전집유 무전실형 ‘이재용 판결’…공정경제 요원 뇌물주고도 ‘법리적으로’ 틀린 사법적 판단 덕분에 감옥 안간다면

기사입력2018-02-22 10:28

김종보 객원 기자 (jongbokim51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오랫동안 공들인 형사사건의 판결 선고를 기다리며, 다른 사건들에 대한 선고를 들었다. 누구는 회삿돈 7000만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곧바로 구속됐고, 누구는 보이스피싱으로 2000만원을 사기쳤다는 이유로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았다. 순간 36억원 회삿돈을 횡령해 뇌물을 주었음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떠올랐다.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그 사이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준 서울고등법원 13형사부(재판장 정형식)의 판결에 대해 여러가지 비판이 쏟아졌다.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은 법리적으로 틀렸다”, “재산국외도피죄를 잘못 이해하고 대법원 판례를 잘못 적용했다”, “뇌물의 개념을 오해했다”, “마필 사용이익을 산정하지 않은 것은 심리미진이다”, “삼성경영권 승계의 본질을 축소·왜곡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죄의 법리를 오해했다” 등 각종 비판 아래, “법리는 양보할 수 없다”던 정형식 판사의 변명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결국 항소심 판결이 ‘법리적으로’ 틀렸다는 점은 논증되었고, 대법원이 언제 무슨 이유로 파기환송하느냐만 남은 것 같다.

그런데 정형식 판사의 “법리는 양보할 수 없다”는 말은 꽤 강력해보인다. 왠지 판사가 “당신의 주장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고 하면, 판사의 판단이 맞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법리적으로’ 맞고 틀리고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판사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정형식 판사의 판결처럼 판사는 자신의 판단이 “법리적으로 맞다”고 하는데, “법리적으로 틀렸다”는 점이 논증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정형식 판사’ 대신 ‘대법원’을 넣어보면 더 분명해진다.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이 ‘법리적으로’ 틀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현재의 제도로서는 답이 없다.

누군가 뇌물을 주고 특혜를 받았다면, 우리는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런 ‘불공정’을 방지하려고 법을 만들었지만, 법을 해석·적용하는 사법부가 ‘법리적으로’ 틀린 판단을 해버리면 ‘불공정’은 존속·확대된다. 1억원의 뇌물을 주고 10억원의 이익을 얻었는데 감옥에 안간다면, 9억원을 벌기 위해 잠깐 재판 받는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이재용 부회장은 구삼성물산에 대한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 지분 16.5%를 보유한 개인최대주주가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해 0.57% 지분만 가지고 있었는데, 삼성물산을 지배하게 되면서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또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에 대해 19.4%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에 대해 7.2%의 지분을 가지고 있기에,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력도 그만큼 강해졌다.

36억원 뇌물을 주고 ‘삼성그룹 지배자’의 지위를 얻는다고 상상해보자. 달러빚을 땡겨서라도 뇌물을 바치고 싶지 않은가? 하물며 ‘법리적으로’ 틀린 사법적 판단 덕분에 감옥에도 안간다면 당장에라도 뇌물을 바치지 않겠는가? ‘유전집유 무전실형’이 반복되는 한, 우리 사회가 보다 공평하고 정의롭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공정경제를 위해 사법정의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아득하다.[법률사무소 휴먼 김종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