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아이디어 도용·탈취는 ‘엄연한 도둑질’

프린트

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기술과 아이디어 도용·탈취는 ‘엄연한 도둑질’ 거래교섭·거래과정에서 중소기업 기술정보를 탈취하면 속수무책

기사입력2023-05-03 00:00

김은정 객원 기자 (ejcong@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급성장한 IT 영역, 온라인플랫폼 영역, 문화콘텐츠 영역 등 새로운 산업영역이 발전함에 따라 기존의 법제도로 보호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을’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에 최근 참여연대 등은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불공정 피해 사례를 다루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을들의 증언대회를 마련했다. 그 첫번째 자리에서 스타트업의 기술탈취 피해를 다뤘다.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이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에게 애써 만든 기술을 탈취당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기술과 아이디어는 기업에 있어 더욱 주요한 자산이 되고 있는 만큼, 기술탈취와 아이디어 도용은 단순한 갑질을 넘어 스타트업의 혁신 의지를 가로막아 국민경제의 크나큰 해악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들은 투자가 간절한 스타트업에 자본력을 미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탈취하거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있다. 하도급 기업에 대해 지위를 이용해 기술을 탈취했던 전통적인 방법보다 더욱 교묘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들의 이러한 기술탈취는 스타트업이 산업에서 자리를 잡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우리 산업 전체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행태다. 또한 새로운 기업들이 속속 등장해 기존 기업들과 경쟁을 통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대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명백히 반경쟁적, 반시장적이라 할 것이다. 기술탈취와 아이디어 도용이 엄연한 도둑질인 이유다.

◇계속된 말 바꾸기…롯데헬스케어의 기술탈취=2021년 8월 헬스케어 사업 구상을 시작해 관련 스타트업을 물색하던 롯데헬스케어(롯데지주 헬스케어팀이 롯데헬스케어로 법인 전환)는 투자, 파트너십을 빌미로 알고케어의 아이디어 기술을 탈취했다. “경쟁상품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알고케어를 안심시켰지만, 정보 획득 이후에는 “롯데가 제품을 만들고 알고케어에게는 라이센스를 주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전형적인 기술탈취를 위한 수순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알고케어와 협력 협의가 결렬되자마자 식약처에 알고케어와 같은 사업을 해도 되는 지 문의한 것이 알고케어에게 적발됐다. 도용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도용제품을 개발해 CES2023에 전시했다. 의료데이터, 문진데이터, 라이프로그데이터, 유전자데이터 등 건강데이터를 분석, 디스펜서를 통해 영양제를 복용하고 앱을 통해 일상에서의 건강관리를 하는 전체 서비스 구조와 뉴트리션 디스펜서·카트리지 역시 형태, 구조 및 원리, 사용방법까지 동일하다.

◇공동입찰 빌미로 한 포스코건설의 기술탈취=포스코건설은 자신과 공동입찰을 하기로 한 스카이텍에 11차례에 걸쳐 제공받은 기술정보를 토대로 입찰에 성공했다. 하지만 스카이텍을 지정 납품업체로 해 기술 제공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스카이텍이 아닌 포스코 임원 출신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스카이텍의 기술을 포스코 임원 출신 업체에 제공했고, 해당 기업은 스카이텍의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쟁입찰 등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중소기업 등의 기술을 탈취하는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대규모 사업에 참여하는 기회이기에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자신의 기술을 걸고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대기업의 선의에 기대어 거래를 추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800번 넘는 해킹 시도…카카오VX의 기술탈취=스크린골프·골프예약 업체 카카오VX가 경쟁사인 스마트스코어의 시스템을 해킹해 기술을 탈취했다. 박노성 스마트코어 부대표에 따르면, 카카오VX는 2021년 3월부터 2023년 3월까지 2년간 총 801회에 걸쳐 해킹을 시도했고, 577회 무단 침입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한다. 카카오VX가 스마트스코어가 보유한 148개 골프장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박 부대표는 카카오VX가 자사 서비스의 화면 구성 등을 거의 동일하게 구현한 데에 해킹을 의심하게 됐고, 이에 내부시스템에 접근한 IP 목록을 확보, 카카오VX의 IP와 대조한 결과 무단침입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카카오VX는 “골프장 관제 스코어 솔루션 기획과정에서 스마트스코어에서 당사로 이직한 직원이 스마트스코어의 관리자 페이지를 본인이 사용하던 계정으로 접속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관련 직원은 업무에서 배제했으며, 담당 임원의 관리 소홀 책임도 묻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마트코어는 한명의 직원이 아닌 다수의 조직적인 접근이 이뤄졌다며, 강경대응하겠다고 반박했다.

대기업들이 투자가 간절한 스타트업에 자본력을 미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탈취하거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명백히 반경쟁적·반시장적이라 할 것이며, 기술탈취와 아이디어 도용은 엄연한 도둑질이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중소기업 피해 막대한데 기술보호 역량은 열악=‘2022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조사 발표된 중소기업 기술유출과 탈취로 인한 피해금액은 2827억원에 이른다. 기술침해가 발생했거나 피해를 인지한 중소기업 피해건수는 5년간 280건에 이르지만, 증거 등 입증자료 부족 등으로 조취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는 주로 ‘거래 관계(납품, 수출, 계약 등)’(42.1%)과 ‘사업 제안’(15.8%) 등 피해업체가 예방을 하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과정에서 발생했다.

기술분쟁 조정·중재 제도가 시행된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접수된 조정신청 177건 중 실제 조정이 성립된 경우는 40건(22.6%)에 그쳤다. 나머지 89건은 신청인 취하 및 피신청인 불응 등의 이유로 ‘조정불가’ 판정이 났고, 45건은 조정을 진행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조정 불성립’ 됐다. 기술침해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물어내도록 하는 징벌적 장치가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에 처음 도입된 뒤 중소기업 쪽이 승소한 사례는 한 1건 뿐(에스제이이노테크V.한화 서울고등법원 2021. 12.23. 선고 2020나2032402 판결)이다.

2018년도부터 2021년도까지 4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당사자계 특허심판 현황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50%, 60%, 71.5%, 75% 등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특허소송 시 침해 및 손해액에 대한 증거 대부분을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어 증거 수집이 어렵다보니,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도급법 개정 등 실효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2021년 12월 개정된 하도급법은 하도급계약 체결 전의 기술유용행위도 이후 하도급 계약이 체결됐다면 하도급법으로 규율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정보를 탈취한 후 하도급거래를 체결하지 않거나 거래를 거절한 경우에는 하도급법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 현행법상 하도급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경우에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제2조 차목)이 적용되는데, 이를 위반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시정권고, 위반사실 공표 등의 조치만 할 수 있어 실효적인 구제수단이 부재하다. 이처럼 계약체결 전 기술탈취 행위에서 업체를 보호하기엔 현행 법제가 미흡하다.

또한 상대방이 조정절차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통지하거나 참여 거부시 조정안 제시까지 진행되지 못하고 종결되는 등 분쟁조정제도의 실효성이 미비하고, 기술가치의 산정이 어려워 피해인정액이 3배로 인정되더라도 실질적인 피해구제에 이르지 못한다. 실제로 에스제이이노테크는 소가로 100억원을 청구했으나, 실제로 5억원의 2배인 10억원만이 손해배상 액수로 인정된 바 있다.

이밖에도 증거 대부분이 침해자인 대기업 손에 들어 있어 증거를 수집하고 침해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데다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제출 거부가 빈번해 입증이 어렵고, 기술탈취 관련 법률과 소관부처가 산재한 것도 기술탈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이에 스타트업 기술탈취·아이디어 도용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계약체결 전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법적 보완 ▲분쟁조정제도의 실효성 확보 ▲손해배상액의 산정 근거 마련 및 징벌적 손해배상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및 입증책임의 전환 ▲신고 창구의 일원화 및 공동조사를 통한 협력 강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갑을관계에 기인한 병폐로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에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저해하고,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동기를 저해하고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