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 리모델링…폐허위 지은 유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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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화력발전소 리모델링…폐허위 지은 유럽미술관 아트 비즈니스 ②‘테이터 모던’ ‘콜룸바’ 그리고 청주 연초제조창

기사입력2015-12-08 00:00

김현성 객원 기자 (artmanse2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독일의 ‘콜룸바뮤지엄’의 공통점은 과거에 폐허였다는 점이다. 폐허 위에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져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화력발전소 굴뚝이 있는 미술관 ‘테이트 모던’

영국 런던 템즈강 유역에는 우뚝 솟은 굴뚝이 보인다. 연간 25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다.

“버려졌다 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롭게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건물 하나에도 의미 있는 역사와 상징이 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 야경

영국 테이트모던 운영자 아드리안 하드위크의 말이다. 이곳은 원래 미술과는 거리가 있는 뱅크사이드(Bankside)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만든 미술관이다. 세인트 폴 성당 벽을 비롯해 주변 마을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돼 1981년 오일파동으로 문을 닫은 이후 20년동안이나 방치되면서 주변의 슬럼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1994년 현대미술관을 짓기로 결정하고 진행한 국제현상 공모에서 70여명의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흉물이 된 발전소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올리는 설계제안을 했지만 유일하게 스위스의 젊은 건축가인 헤르조그와 드므롱만이 발전소의 리모델링안을 제출했다. 이들은 “우리는 거대한 산 같은 벽돌 건물을 부수거나 축소시키지 않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것 뿐”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영국 정부와 테이트 재단의 이런 실험적인 생각은 대성공이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마침내 8년여의 공사를 거쳐 2000년 5월12일 개관했다. 총 높이 99m의 거대한 미술관은 7층으로 구성되었고, 똑같은 높이의 굴뚝도 그대로 살려 건축했다. 미술관 건물 자체만으로도 명소가 된 테이트 모던은 한해 2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즐겨 찾는 런던의 명소가 됐다. 더불어 넘쳐나는 작품에 골머리를 앓던 테이트 예술재단은 발전기가 돌아가던 이곳을 작품 수장고로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방대한 컬렉션을 세계인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그야말로 과거의 어둡고 우울했던 흔적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연간 약 7000만 파운드의 경제효과와 30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로 기적같이 부활했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철강을 실은 배들이 항구를 끊임없이 드나들던 영광을 뒤로 한 채 흉물스러운 항구에 널브러진 고철덩어리들이 보이는 것의 전부였던 낡은 시가지 스페인 빌바오. 빌바오(Bilbao)는 이베리아 반도의 북쪽 끝 대서양에 접해있는 항구도시다. 산업혁명 당시 철광석 광산의 발견으로 스페인 북부의 산업을 주도하며 번창했던 도시였다. 그러나 철강산업의 거품이 꺼지던 1980년 이후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의 영화만을 간직한 ‘폐허’가 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시작됐다. 그 결과 구겐하임의 세 번째 미술관을 이 도시에 유치하기로 했다. 선택은 들어맞았다. 폐허 위에 자리 잡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빌바오의 옛 영광이 재현되기에 충분했다. 7년 만에 완공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20세기 최고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빌바오의 옛 도심을 유유히 흐르는 네르비온 강가에 반짝이는 티타늄 건물은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가 설계해 관심을 모았다. 한낮이 되면 일그러진 건물 외관을 덮고 있는 티타늄 조각들이 일제히 햇빛을 반사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 건물은 찬사와 함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도시를 저 고철덩어리가 버려놨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미술관의 방대한 컬렉션과 건축물을 보기 위해 몰려든 전 세계의 사람들로 인해 그동안의 비난을 단박에 잠재울 수 있었다. 흉물스러웠던 도시가 현대미술의 메카로 변모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독일 쾰른 콜룸바 미술관

콜룸바 미술관의 옛 성당 벽체 잔해

독일 쾰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고딕양식의 교회인 ‘쾰른 대성당’이다. 하지만 최근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명소로 부각된 곳이 바로 ‘콜룸바 미술관(Kolumba museum)’이다. 이곳은 미술애호가들 사이에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알려진 곳인데 쾰른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1853년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스러움을 간직한 성당 위에 건축된 콜룸바 미술관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함으로써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성당은 194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고 잔해의 일부인 벽체만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이 미술관을 이야기할 때 빼놓은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스위스 건축가 피터 줌터(Peter Zumthor)다. 그는 건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치유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2009년 프리츠 커상을 수상했다. 프리츠커 건축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 콜룸바 미술관이 역사의 무게감과 동시에 미니멀한 현대적 감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모든 건물이 일정한 온도를 가진다고 믿는다”는 바로 피터 줌터의 깊이있는 안목 덕이다.

콜룸바 미술관에는 백남준을 비롯해 요셉보이스의 설치 작품은 물론 리차드 세라, 야네스 쿠레릴스, 존 케이지, 빅토리아 벨 등과 같은 동시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영국의 게이츠헤드라는 소도시에서 2002년 개관한 발틱현대미술관 역시 제분공장을 현대식 미술관으로 바꾼 성공 사례다.

일본의 예술의 섬 나오시마도 마찬가지. 한국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이 396억원을 들여 청주의 연초제조창을 미술품 수장보존센터로 리모델링한다고 한다. 낙후된 공장이나 흉물로 변해버린 폐허를 예술의 도시로 변화시키는 일련의 사례를 보며 기업과 정부가 예술을 통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김현성 (주)예술만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