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만나기 두렵다”…쑥대밭 만든 한전

프린트

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동네사람 만나기 두렵다”…쑥대밭 만든 한전 “한국전력, 송전탑 건설하면서 공동체 파괴”…밀양송전탑 증언대회

기사입력2017-03-23 18:51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금 이 순간에 가장 힘든 건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다.”

한 마을에서 먹을 것 하나라도 생기면 너나할 것 없이 나눠 먹으며 정을 나누던 경남 밀양, 한국전력 송전탑 때문에 사람 마음이 녹슬어 갔다. 한 동네 사람을 마주하기도 두려울 정도로 온 마을은 쑥대밭으로 변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한전이 송전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마을공동체를 파괴했다고 증언한다. 이런 행태는 밀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한전은 전국에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마을주민들 편을 가르고 분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보고서 발간 및 증언대회’에는 밀양을 비롯해 청도, 횡성, 군산, 광주, 당진에서 송전탑 건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참석했다. ©중기이코노미

23일 국회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보고서 발간 및 증언대회’에 참석한 밀양, 당진, 횡성, 청도, 군산의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한결같이 한전이 만행을 벌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들 증언에 따르면, 한전이 송전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 마을들에 적용한 방식은 매우 유사했다.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몇몇 주민들과 마을 이장 혹은 동장과 접촉해 포섭했다. 이후 한전은 이장과 찬성측 주민 몇몇을 대표로 해 이들과 협의를 진행했다.

특히 한전은 반대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는 공식적으로 대책위원회를 통하지 않았다. 주민들을 밤낮 구분없이 찾아가 개별협상을 하고, 반대가 심한 주민들은 외지의 자녀 심지어 자녀의 직장상사들까지 동원해 찬성하도록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명씩 찬성하게끔 만들어 놓고 나면, 나중에는 마을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게 되고, 반대하는 주민들이 마을에서 핍박을 받는 일도 벌어진다.

경북 청도의 경우 한전은 송전탑을 반대하는 3명의 주민을 개별로 찾아가 보상안을 제시하고, 또 전 청도경찰서장을 내세워 주민들에게 돈봉투를 돌린 일도 있었다. 전북 군산 옥구읍의 경우 정작 송전선이 지나가는 5개 마을을 제외한 인근 28개 마을이장들을 협상단에 가입시키고 51억5000만원을 보상금액으로 주기도 했다. 회현면에서는 한전 직원이 주민 몇 명에게 접촉해 합의서 도장을 받아오면 1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시했고, 이를 나중에 다른 주민들이 알게되면서 주민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강원 횡성에서는 농자재 공동구매를 위해 마을이장에게 도장을 맡긴다는 사실을 알고, 한전측이 이장에게 접근해 송전탑건설 동의서에 도장을 찍도록 해 마을주민들이 이장을 고소·고발하는 일까지 일어났다는 주장도 나왔다.

마을주민들은 한전이 마을공동체를 해체해가며 송전탑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기이코노미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청도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이은주 위원은 “청도의 두개면, 15개 동이 처음에는 다 같이 반대를 하다가 지금은 삼평 1리만, 그것도 주민 60여명 중 15명만 남아서 반대하고 있다”며 “한전이 ‘벌써 협상이 끝났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말하지만, 협상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주민들이 대다수다. 대책위에서 그 협상내용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니 ‘주민대표 5명과 협상할 때 공사가 끝날 때까지 협상내용을 볼 수 없다고 합의했다’며 보여주지 않았다. 한전 때문에 결국 마을은 분열됐다. 공동체 파괴라는 것은 당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다”고 했다.

밀양 송전탑 관련 밀양주민들을 인터뷰하며 구술조사를 했던 연세대 국문과 김영희 교수는 “밀양주민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송전탑 건설 관련 정보도 충분히 공유되지 못했고, 송전탑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과정 자체가 없었다”며 “대부분 마을 주민들은 보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 소문으로 듣거나 동장이 하자는 대로 하고, 한전 직원들이 밤낮없이 선물을 가져 오니까 성의에 대한 보답차원에서 합의하고, 공무원들이 개입하니 ‘나라에서 하는 일이구나’하는 생각에 합의를 한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구술조사를 통해 드러난 한전의 태도는 말이 협의지 그저 합의서 도장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진행해 왔다”며 “주민설명회도 송전탑 건설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합의를 전제로 질의과정도 없이 일방적인 설명만 하고 끝나는 형태다. 또 개최정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설명회 참석자도 대부분 송전탑이 설치되지 않는 마을주민들을 초청해, 구색 맞추기였다”고 말했다.

군산 새만금 송전탑대책위의 김덕중 총무는 “군산의 경우 돈을 받고 합의를 해준 마을사이에서도 보상의 적고 많음에 따라 갈등까지 생겼다”고 증언했다. ©중기이코노미

그렇다고 합의에 기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군산 새만금 송전탑대책위의 김덕중 총무는 “군산의 경우 돈을 받고 합의를 해준 마을사이에서도 보상의 적고 많음에 따라 갈등까지 생겼다”며 “주민들이 한전에 ‘보상금을 왜 차별적으로 줘 주민들을 싸우게 만드느냐’고 따지자, 한전 직원들은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주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답변을 했다”고 밝혔다.

밀양송전탑 상동면대책위의 김영자 총무는 “마을이 분열돼가는 과정을 커가는 자식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힘들다”며 “지금까지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이 13번 중단됐다. 그때는 마을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언제가 제일 힘들었느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기이코노미는 이번 증언대회에 대한 입장을 듣고자 한전측에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