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건희보다 못한 이재용의 대국민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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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2008년 이건희보다 못한 이재용의 대국민사과 뭘 잘못했고, 어떻게 바꿀건지 알 수 없어…그럴거면 사과는 왜?

기사입력2020-05-07 15:48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對국민사과를 놓고 비판이 쏟아졌다. 참여연대는 ”모호함의 극치”라 했고, 경실련은 “진정성과 제도 개선의 의지가 없는 맹탕사과”라고 평가 절하했다. 삼성전자 노조탄압의 주요 피해자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소속된 금속노조 또한 “만기일도 안 적힌 깡통어음을 들이밀면 곤란하다”고 비난했다.

6일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사과에 대해,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사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유가 있다. 많은 이들이 12년전 삼성 특검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과를 떠올렸다. 특검의 수사로 비자금이 발견된 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4월 직접 對국민사과를 했다. 사과의 내용 대부분은 나중에 번복되거나 지켜지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가 이건희 회장의 사과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성명을 통해 회장직을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이어 발표된 삼성그룹 쇄신안에 따르면, 삼성과 관련된 일체의 직에서 사임하고 경영에서 퇴진한다는 의미였다. 전략기획실 해체도 선언했다.

실제 이건희 회장은 등기이사 등 주요직책에서 물러났지만,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를 지속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2010년 3월 경영퇴진 발표 23개월 만에 삼성전자 회장직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해체했던 전략기획실도 미래전략실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당시 쇄신안에는 특검이 발견한 차명계좌 처분방안도 포함됐다. 차명계좌를 활용해 누락한 세금을 모두 납부하고, 남은 돈은 기부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와 관련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금도 내지 않았고, 실명 전환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인출해서 자기 돈으로 가져가버렸다”고 꼬집었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을 보자.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제시하지 않았다. “삼성 에버랜드와 삼성 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고 “승계와 관련한 뇌물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이라면서도, 피해를 입은 당사자중 하나인 국민연금은 언급조차 없었다. 피해복구를 논할 여지조차 보이지 않은 것이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건 당연한 말이지, 선언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무노조 경영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선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건 실천 방안이 아니다. 기존에 결성된 삼성그룹내 노조와 단체협약을 언제까지 체결하겠다거나, 노조탄압에 관여한 임직원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책임을 묻겠다는 계획이 나와야 했음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성준법감시위가 파기환송심 형량에 영향을 미칠 의도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내용은 좋다. 하지만 이사회 개혁을 비롯한 실질적인 경영쇄신 방안없이 준법감시위 존재만을 내세우는 것도 의미가 커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6일 사과가 이건회 회장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가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사과 때처럼 일회성 이벤트로 그친다면, 삼성이라는 글로벌기업은 또다시 총수일가의 불법행위로 지탄받고 타격을 받을 가능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반면, 정말 뼈를 깎는 쇄신과 변화를 시도한다면 결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 변화의 키는 이재용 부회장의 손에 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