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물의 덕목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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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물의 덕목 되새기자 물을 잘 다스리는 치국(治國)의 도리와 상선약수(上善若水)

기사입력2020-08-07 12:47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올해도 장마철이 되니 어김없이 큰비가 내려 여기저기 비 피해가 심각하다. 7월 내내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머물던 장마전선이 지난주부터는 서울 경기지방으로 옮겨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폭우를 쏟아내고 있다.

농경지가 매몰돼 애써 지은 한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기차 철로가 끊기고 도로 곳곳이 무너지고, 토사가 집안으로 밀려 들어와 살림살이가 온통 흙덩이로 엉망이 됐다. 또 길 가던 사람들이 폭우로 넘친 하천에 빠져 휩쓸리고, 그들을 구하려던 소방대원까지 함께 실종되었다는 안타까운 보도도 있었다.

특히 이웃 중국의 비 피해는 가히 기록적이라 할 만하다. 지난 6월부터 두 달 동안 이어진 양자강 유역의 폭우로 인해 160여 명이 사망하고 500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한데다가, 세계 최대 규모의 샨샤댐이 폭우로 물이 넘쳐서 무너질지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등 어느 해보다 피해가 크다고 한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쏟아지는 비가 원망스럽기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힘이 자연 앞에서 참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물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고마운 존재라는 점을 잊어서도 안 된다.

기원전 3천여 년 전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인류 문명이 처음으로 발생했고, 이어서 이집트의 나일강, 인도의 인더스강 그리고 중국의 황하강 유역에서 연이어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강 유역을 근거지로 삼아서 농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황하의 발원지인 호구폭포(壺口瀑布)다. 황하(黃河)는 글자 그대로 누런 강이라는 뜻으로 흔히 ‘물 반, 황토 반’이라고 할 만큼 강물에 황토가 많이 휩쓸려 흐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황하강이 자주 범람해 인류에게 큰 피해를 끼쳤지만, 고대 중국인들은 그러한 도전에 대응하면서 강 주변에서 문명을 일으켰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이처럼 고대 4대 문명 발상지가 하나같이 비교적 큰 규모의 강 유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지역 이외에 다른 곳에서는 어째서 문명이 탄생하지 못했던 것일까?

강 주변이 농사짓기가 수월했기 때문이라는 것 이외에 그들 지역이 모두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범람해 큰 피해를 주는 천정천(天井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천정천이란 사람들이 사는 지대보다 강바닥이 높은 강을 말한다. 천정천은 오랜 세월 동안 상류로부터 많은 흙이 쓸려 와서 강바닥에 쌓이게 되면 이들 흙을 제때 강 주변에다 퍼올려야 하는데, 당시에는 준설 장비가 없어서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고 흙이 쌓여 강바닥이 점점 높아진 것이다.

그렇게 되자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임시방편으로 강 양쪽에 둑을 쌓았지만, 강바닥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때때로 많은 비가 내리면 그 둑이 터져버리곤 했다. 둑이 터지면 역시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도 보지만, 그 때문에 영양분이 많은 상류의 흙이 중하류 농경지를 뒤덮었다. 이것은 마치 영양분이 빠진 논바닥에 자연스레 흙갈이 작업을 한 격이라서 다음 해에는 오히려 농사가 잘될 수 있었으니, 전년도에 큰 피해를 주어서 참혹했던 범람이 농사에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또 사람들이 비를 내리는 하늘을 유심히 관찰해 ‘언제쯤 비가 많이 오겠구나’ 하는 정보가 축적되면서 천문학이 발달하게 됐고, 강이 범람하더라도 그때를 대비해서 폭우로 인한 피해를 줄이며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강이 범람해 흐트러진 농경지의 경계를 다시 구획하거나 농작물을 수확한 것에 대한 세금을 효과적으로 걷기 위해서 수리학(水理學)과 수학이 응용되기 시작하면서 초보적인 과학도 발전하게 됐다.

만약에 비가 얌전하게 내리거나 강물이 고요하게 흐르기만 했다면, 당시 사람들은 그것에 대응하는 과학지식을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집트 문명이 범람하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나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도전과 응전’을 통해서 역사가 발전한다고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서안(西安) 남서쪽에는 노자(老子)의 유적지인 누관대(樓觀臺)가 있다. 이곳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의 ‘상선지(上善池)’라는 표지석을 세운 샘이 있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도 세계 각국의 큰 도시들이 어김없이 큰 강을 끼고 발전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범람하는 강이 인류에게 큰 피해를 끼쳤으면서도 문명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우리나라나 중국과 같이 농경을 주요 산업으로 삼았던 곳에서는 물을 잘 다스리는 것이 나라 정치의 주요 관심사였다.

중국의 속담에 “황하를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治黃河者, 治天下)”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의 ‘치국(治國)’에서 다스릴 치(治)자에 의미 요소인 물 수(氵)자가 들어 있는 것만 보더라도, 세상을 잘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물의 관리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 상고시대 이상적인 임금으로 추앙을 받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뒤를 이은 이가 우왕(禹王)이다. 그는 요임금 시대부터 치수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13년간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애쓴 끝에 황하 치수에 성공했다. 이것을 계기로 우왕은 본디 순임금의 아들이 아니었는데도, 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순임금이 죽자 기원전 2070년에 나라 이름을 하(夏)로 내세우고 중국 최초의 왕조 국가를 건설했다.

한편 물을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겼던 노자(老子)는 도덕경(道德經) 8장에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선하고 이롭게 하여 다투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争, 處衆人之所惡, 故幾于道)”라고 했다.

이처럼 노자는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 항상 낮은 데로 나아가려는 물의 속성이야말로 인생에서 최고의 덕목이라고 했던 것인데, 오늘날 세상에는 오로지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들과 다투려고만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물의 덕목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