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아니라 ‘땀’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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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땅’이 아니라 ‘땀’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어야 부동산 불로소득 연 482조…시작은 공시가격 개선·보유세 확대

기사입력2018-04-27 19:03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분석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이 서울시내에 소유한 총 35개 부동산의 공시가격은 21조원이다. 실거래가 추정치인 55조원과 비교하면 시세반영률은 38.7% 수준이고, 주거용 아파트의 시세반영률(약 8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민들은 실거래가대비 80%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세금을 내는 반면, 5대재벌은 실거래가의 절반도 안되는 돈을 기준으로 세금을 낸다는 말이다.

낮은 공시가격 탓에 5대재벌은 35개 부동산에서, 건물을 제외한 부속토지에서만 매년 2200억원의 보유세 특혜를 본다는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나아가 경실련은 “(이번 분석 결과는) 재벌 계열사들이 보유한 모든 부동산 내역을 입수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시민들이 알 수 있는 주요 건물에 국한했다”며 “실제 재벌들이 누리고 있는 세금특혜 규모는 경실련 추정보다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짐작은 했지만, 구체적인 수치와 돈으로 환산하니 놀랍고도 기가 막힌다. 55조원 자산가에겐 실거래가에 40%도 안되는 과표로 세금을 부과한 반면, 서민이 평생 벌어 마련한 아파트 한칸엔 80%를 부담시켰다. 자산가와 서민의 과표를 거꾸로 적용해도, 이미 극단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사회계층·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는 고사하고 완화조차 할 수 없다. 양자의 출발선 자체도 너무 차이가 나고, 부동산을 제외한 소득 양극화 역시 자산 양극화 못지않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없는 ‘놈’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있는 ‘놈’은 시간만 보내면 곳간을 채워주고 늘려준게 지금까지 정부의 부동산정책이고 조세체계다.

경실련은 낮은 공시가격 탓에 5대재벌이 35개 부동산에서, 건물을 제외한 부속토지에서만 매년 2200억원의 보유세 특혜를 본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제2롯데월드 모습.<사진=뉴시스>

수십년이상 계속된 부동산 ‘역진세’ 정책은 2012년 기준 상위 인구 1%가 전체 토지의 55.2%, 상위 10%가 97.6% 토지를 소유하는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를 만들었다. 개인외 법인소유 토지편중도 심각해 상위 1% 법인이 전체의 77.0%, 상위 10%가 93.8% 토지를 가졌다는게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의 주장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가계와 기업이 토지자산 소유로 얻은 명목보유순익은 2008년 61조8000억원에서 2015년 183조8000억원으로 3배이상 증가했다. 토지소유로 인해 2015년 기업과 가계가 벌어들인 불로소득 규모는 같은해 한국 전체 GDP의 11.7%에 달했다.

김 의원의 추정치는 결코 과장된게 아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이 한국은행 국민대차대조표 등을 분석해 추정한 불로소득(부동산 자본이득+부동산 임대소득) 규모는 482조원이다. 슈퍼예산이라고 불리는 올해 정부예산(428조)보다 54조원 많은 돈이, 노동의 대가가 아닌 땅과 건물을 가졌다는 이유로만으로 자산가 및 법인 몫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이 존중되는 나라’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땅을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게 아니라면 바로 잡아야 한다.

정부 역시 부동산 조세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 지난 9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재정개혁특위를 출범시켰다. 보유세 도입·확대가 주요 의제이지만, 야당의 반대와 조세저항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최근 강남4구를 중심으로 부동산경기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보유세 도입·확대 주장에 딴지를 거는 보수언론이 늘어가는 추세다. 행여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딴생각을 하지 않도록, ‘땅’이 아닌 ‘노동’ 존중 국가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다시한번 분명히 밝힐 시점이다.

아울러 재정개혁특위를 통해 보유세 도입·확대가 결정 시행된다 해도, 지금과 같이 낮은 공시가격 하에서는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유세 도입·확대 이전에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모든 부동산의 공시가격은 현행 주거용 아파트 시세반영률(80%)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땀 한방울없이 부동산이 만든 불로소득 규모가 1년에 482조원이다. 이를 절반만 줄여도, 보수·극우야당이 억지 궤변을 동원하며 반대하는 온갖 ‘포퓰리즘’ 정책 모두를 시행할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과도한 임대료로 압박을 받는 대다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 또한 덜어 줄 수 있다. 부동산이 돈을 버는 나라가 아닌 노동과 땀이 존중받는 나라, 그 시작이 부동산 공시가격 개선이고, 보유세 도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