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무능…최저임금 ‘삭감’ 사태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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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민주당의 무능…최저임금 ‘삭감’ 사태 자초했다 노동계는 수용하고, 대신 정부는 갑을관계 근본적 청산 약속해야

기사입력2019-07-13 07:0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문재인 정부에게 묻는다. 대한민국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고, ‘민생경제’ 파탄을 초래한 주범이 최저임금인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순대와 떡볶이까지 팔았던 재벌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방식이 아니었던가. 수직·종속적 원하청관계를 구축해 리스크는 하청이 전담하고, 이윤은 원청이 독점하는 재벌대기업 편향의 산업생태계가 원흉 아닌가.

엉뚱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당면한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최저임금을 지목했다. 그런 정부가 위기탈출 해법을 ‘최저임금 사실상 삭감’에서 찾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12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20년 최저임금 시급을 올해보다 240원(2.87%) 인상해 8590원으로 결정했다. 1998년 외환위기(2.7%)와 2008년 금융위기(2.75%)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란 보도가 나온다.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13차 전원회의에서 2020년 최저임금이 2.87% ‘인상(?)’된 8590원으로 결정됐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결정된 최저임금안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인상폭이 낮긴 하지만 최저임금이 인상됐다는 언론, 명목인상률 수치만 주목한 틀린 분석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2020년 최저임금은 동결을 넘어 삭감됐다. 이미 정부는 최저임금법을 바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에 포함시켰다. 최저임금 이외 상여금, 복리후생비를 받았던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인상효과가 반감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사용자가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으로 항목만 바꾸면 최저임금 인상효과는 제로(0)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올해 6월기준 0.7%인 소비자물가 상승률, 2%대 중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GDP 성장률을 고려하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삭감됐다는 게 정확한 분석이다.

난무하는 민생파탄 주장에 경제위기론이 발목을 잡았다. 보수·극우 야당 및 언론이 끊임없이 설파하는 ‘경제위기론’은 소득주도성장론을 공격하기 위해 조작된 프레임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내내 시민사회·노동계 그리고 개혁·진보 경제학자 모두 나서 거짓 프레임과 맞서 싸웠는데, 먼저 무릎을 꿇은 건 정부다.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이란 형식을 빌었지만, 2.87% 인상폭은 경제공황에서나 가능한 수치다. 외환위기·금융위기 당시보다 경제가 심각하다는 보수·극우 집단의 선동에 정부가 부하뇌동 한 꼴이다.

기업은 곳간을 마저 채울 수 있다며 미소짓고, 대부분의 노동자·가계는 허리띠를 졸라 맬 걱정에 한숨만 내쉰다. 사상 최고·최대까지는 아니어도, 최근 수년이상 계속됐던 재벌대기업의 고공실적 행진은 여전하다. 지금 서민들 삶이 고된 이유는, 우리 공동체가 함께 생산한 부(富)가 노동자와 기업 간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아서다. 주상영·전수민 건국대 교수가 근래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75~2017년 사이 노동소득분배율이 많게는 15.1%p, 적게는 7.2%p 떨어졌다. 기업과 노동자·가계 간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마저 삭감됨으로써 기업으로 부(富) 쏠림현상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후폭풍도 우려된다. 경제위기를 극복해야한다는 명분으로 강요될 고통은 오롯이 저임금노동자를 포함 몸뚱어리만으로 먹고사는 대다수 국민의 몫이 됐다. 당장 하반기부터 기업의 실적과 무관하게, 최저임금 인상률(2.87%)은 노사간 임금교섭에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좀 더 고약한 사용자라면 명목이 아닌 실질 최저임금 인상률을 거론하며 깎자고 할지도 모른다. 노동자의 임금이 소득의 전부가 아니라지만, 소득주도성장론을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각계의 속도조절론을 대승적으로 수용하고 작금의 일본 경제보복에 따른 경제위기 등의 상황에 노사가 합심해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가 읽히는 결과”라고 밝혔다. 가공의 경제위기 프레임조차 거둬내지 못하고,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스스로 갇혀 무기력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삭감이란 초유의 사태까지 초래한 집권여당, 자신의 무능에 대한 일말의 자성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도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던 문제가 영세중소기업·자영업자의 지불여력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용자의 부담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는 2018년에만 3조원 가까운 일자리안정자금을 쏟아 부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에 따르면 2018년 최저임금 수혜자는 552만명, 이들의 임금인상액을 모두 합하면 최대 7조2000억원이다. 영세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 지원된 일자리안정자금 3조원이면, 전년대비 16.4% 인상된 당시 최저임금 합계액의 40%가 넘는 돈이다.

정부는 또 카드수수료 체계를 개편해 연매출 30억원이하 우대(영세)가맹점 수수료 5700억원을 경감시키는 등 총 8000억원을 지원했다. 상가임대차법도 개정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을 10년으로 연장, 영업권을 보호하는 등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했다. 이외에도 가맹·유통·대리점·하도급 거래관계에서 갑질 근절을 위해 시행령을 개정했거나, 관련 입법안들도 국회에 올라가 있다. 정부가 이처럼 영세중소기업·자영업자 지원방안을 연이어 내놨음에도, 이들의 시장경쟁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수직·종속인 갑을관계를 수평·자율의 대등한 거래관계로 완전히 바꿔내지 못하면, 영세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 미래가 없다는 반증이다.

고용노동부장관의 고시 등 형식적 절차가 남았지만, 내년도 최저임금은 명목상 찔끔 인상, 실질적으론 삭감으로 결정됐다. 집권여당까지 경제위기 프레임에 빠진 상황에서, 노동계와 시민사회 힘만으로 이번 ‘참사’를 반전시킬 가능성은 전무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시민사회, 특히 노동계에 제안한다. 촛불정권 출범 초기 심정으로 돌아가, 한번만 더 통 크게 양보해 달라고. 여기에 화답해 정부도 분명하게 약속해야한다. 우리 산업생태계의 고질병인 갑을관계를 싹 갈아엎어 대등한 거래관계로 만들겠다고. 그래서 앞으론 노동자와 가계에만 고통을 전담시키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도 함께 표명해야한다.

아울러 이번 최저임금 결정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준비하는 소상공인단체 역시 자중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골목상권을 지키는 소상공인과 노동자·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할 수 있을 때,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고 말씀도 덧붙여 드린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