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할 수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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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무엇이든 할 수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 사회적 압박에 저항하는 “시간 낭비자”…액스 미스유타

기사입력2024-07-23 09:30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결혼식들과 장례식들’, 2024, 캔버스에 유채, 100×150cm. Courtesy PERES PROJECTS, Berlin, Seoul, and Milan. <이미지=페레스프로젝트>

지난 6월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이 선보인 액스 미스유타(Aks MISYUTA, 1984~)의 전시가 관심 속에 막을 내렸다. 액스 미스유타는 사회적 기대와 압박에 저항하는 주제로 작업을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화면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입체적 인물 표현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액스 미스유타의 작품에는 조각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물들의 존재감은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만큼 뚜렷하다. 강한 명암과 그림자로 표현된 거대한 인물들을 보면 라인의 경계가 모호한데, 이는 작가가 개인의 경험(인물)을 형성하는 힘을 사회적 또는 가족적(풍경) 요인을 통해 탐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의 탐구 노력은 드물게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인 ‘폐기물(Trash, 2024)’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에서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대신, 웨딩드레스의 모습을 닮은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상징적인 물건들로 넘쳐나 거칠고 주름진 풍경을 자아낸다. 이는 사회적 기대(풍경)에 사로잡힌 누군가의 자아(인물)가 투영된 것이다.

‘폐기물’, 2024, 캔버스에 유채, 150×190cm, Courtesy PERES PROJECTS, Berlin, Seoul, and Milan. <이미지=페레스프로젝트>

미스유타는 자기 경험과 타인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사전 계획 없이 캔버스에 바로 작업한다. 어두운 색의 물감으로 첫 번째 레이어를 올린 후, 무의식에 흐름을 맡기는 오토마티즘(Automatisme)에 가까운 과정을 통해 인물의 형상을 드러낸다. 직관과 즉흥성을 포용하는 그녀는 무언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풀어내며 친밀하면서도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연출된 손놀림은 존재의 복잡성을 함축하는 연상적 장면을 만들어낸다. 종종 나체이거나 뒤틀린 포즈로 등장하는 미스유타의 인물은 취약함과 의구심을 풍기며, 덩치가 큰 실루엣은 단지 연약한 허울 역할만을 할 뿐이다. 풍만하고 단일한 윤곽은 개별화를 피하는 대신 다양한 원형을 구현한다. 외부의 기대와 상충하는 잠재된 욕망,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위하여 충족되지 못한 개인적 열망과 씨름하는 그녀의 인물은 무겁게 짓눌린 것처럼 보인다.

‘나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개인의 성취를 측정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시간’은 인물의 손목을 장식하는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로 상징화되어 작품 내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시계 모티프는 러시아에 널리 알려진 “시간이 똑딱똑딱 흘러가고 있어(the clock is ticking)”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간 낭비자(time-wasters)”라고 불리는 이 인물들은 빈 손목시계를 차고 한가하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작가는 성인이 된 소녀들에게 결혼과 출산 등의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문화를 언급하고 있는데, 작품 속 인물들은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를 찬 채, 시간에 무관심한 모습으로 그러한 사회의 관습적 기대에 조용히 반대한다.

그녀의 작품은 사회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와 해당 미술사조가 지지하는 장엄한 이상에서 탄생했다. 러시아가 소련(1917~1991)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무렵, 러시아 예술가들은 특정한 사회, 경제 및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사회에 퍼뜨리는 예술작품만을 창작해야만 했다. 미스유타는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무엇이든 할 수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인물들을 묘사하여 그러한 사상에 저항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예술만세 김현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