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인정한 법원, ‘이재용 무죄’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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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분식회계 인정한 법원, ‘이재용 무죄’ 뒤집어” 형사소송 2심은 사법정의와 국민의 신뢰를 바로 세우길 바라며

기사입력2024-09-02 11:57

김윤진 객원 기자 (jin@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지난 8월14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중요한 판결 선고가 있었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가 분식회계를 이유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에 내린 제재 처분에 대해 로직스가 제기한 취소 청구소송에서, 재판부가 원고 승소판결을 내리고 제재 처분을 취소한 것이다. 판결이 나오자 여러 언론에서 드디어 로직스가 혐의를 벗었다거나, 이재용 회장의 형사재판에 이어 행정소송에서도 삼성 측이 이겼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법원 판단의 핵심은 ‘짜맞춰진 분식회계’

2018년 증선위는 로직스에 두 차례에 걸쳐 제재를 내렸다. 7월에 내려진 1차 제재의 내용은 최고재무책임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검찰 고발 등이었다. 11월에는 재무제표 재작성, 최고경영자 해임 권고, 과징금 80억 등의 2차 제재가 내려졌다. 지난 8월14일에 취소된 제재는 2차 제재에 해당한다. 선고 결과만 보면 마치 로직스가 완전히 이긴 것 같지만, 자세한 내용을 찾아보면 상황은 다르다.

로직스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단독지배하는 ‘종속기업’으로 회계처리하다가 2015년부터는 공동지배하는 ‘관계기업’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증선위는 애초에 2012~2014년부터 에피스가 로직스의 종속기업이 아니라 합작회사로서 공동지배 상태였고, 2015년의 회계기준 변경은 에피스 주식을 시장가액으로 평가받아 로직스의 기업가치를 부풀리기 위한 부정이었다고 보아 제재를 결정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회계처리는 문제 없으나, 2015년의 회계처리는 2015년 9월1일에 이루어진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단독지배력 상실이라는 결과를 정해놓고 짜맞춰진 비정상적인 회계처리라고 보았다.

다만 증선위의 제재 자체는 2012~2014년에도 회계부정이 있었다는 근거로 내려진 제재이니 취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2015년에는 회계부정이 있었다는 것이 서울행정법원의 분명한 판단이다. 현재 증선위와 금융위는 제재 취소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국정농단, 경영권 불법승계…희생된 것들

행정소송 1심 재판부는 삼성 합병과 분식회계의 연관성을 지적하며 그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사진=중기이코노미>

그렇다면 로직스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는지 여부가 왜 중요한가? 그 이유는 로직스의 분식회계가 이재용 회장의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라는 커다란 퍼즐의 작은 조각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이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구)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했다. 삼성 총수 일가에게 이득이 되도록 합병하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에게 유리하고 (구)삼성물산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는 조치들이 필요했다. 그중 하나가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로직스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고, 로직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로직스의 자회사인 에피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했다. 바로 여기서 에피스에 대한 로직스의 분식회계가 발생한 것이다.

분식회계 외에도 여러 불법행위 동원되었다는 혐의를 받는 (구)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은 국민 모두의 피해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판결은 중요하다.

이재용 회장은 이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뇌물을 줌으로써 국정농단에 개입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 대가로 (구)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과정에 압박을 넣어 합병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로 인해 (구)삼성물산의 해외주주들과 국민연금공단을 포함한 국내주주들은 피해를 입었고, 해외주주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메이슨 캐피탈은 한국 정부가 국정농단 과정에서 합병과정에 개입해 피해를 입었다며 국제투자분쟁을 제기해 우리의 세금 2000억원 이상을 받아 가게 되었다. 국민 모두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은 최대주주로서 더 큰 손해를 입었을 것이 자명한데, 참여연대 추산으로는 최대 67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법원 판단이 서로 충돌하는 모순 발생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보다 앞선 지난 2월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재용 회장과 삼성 임직원들이 (구)삼성물산-제일모직을 불법적으로 합병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형사소송에서 모두 무죄라고 판결하며 분식회계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곧 항소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며, 9월30일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로직스의 분식회계를 두고 형사소송 1심과 행정소송 1심의 판단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형사소송 2심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우리 모두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국정농단 사건에서,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은 이미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국정농단 사건과 (구)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사건, 로직스의 분식회계 사건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행정소송 1심 재판부는 삼성 합병과 분식회계의 연관성을 지적하며 그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이번 판결은 형사소송 2심 재판에서도 고려돼, 시장의 질서를 뒤흔들고 전 국민의 피해를 유발한 범죄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형사 2심 재판부는 사법부 내부의 모순을 해소하고, 1심 판결에 무너진 사법정의와 국민의 신뢰를 바로 세우길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