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금지 철회” 못믿는 여론…원인은 정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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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직구금지 철회” 못믿는 여론…원인은 정부에 국내 제품에 대한 위해성 대책도 없고, 소비자 보호책도 불투명

기사입력2024-05-29 00:00

정부가 KC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를 추진하다, “사실상” 쳘회했다. 그런데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다양한 공론의 장에서 표현되고 있다. 말로만 철회한다면서 실제로는 직구 규제를 실행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 25일에는 수백명의 소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직구 규제 방침에 대해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정책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데, 원인은 온전히 정부에 있다.

우선 해외직구 금지 방침의 “철회”가 사실인지부터가 혼란스럽다. 지난 19일 정부는 브리핑을 통해 80개 품목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를 “검토해본 적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16일 처음 해외직구 규제 방침을 공개했을 때는 “어린이 제품 34개 품목과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은 KC인증이 없는 경우에 해외직구를 금지하도록 하겠다. 또한,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도 승인·신고되지 않는 제품은 해외직구가 금지된다”고 발표한 사실이 있다. 이후 KC인증 이외에 다른 인증을 인정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입장을 바꿨지만, 직구를 전면 금지하는 방침은 애당초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해외직구 금지가 6월부터 즉시 시행되는지 여부를 놓고도 혼란이 이어졌다. 정부는 “6월 중 시행되는 것은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산업부, 환경부,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서 그동안 진행해 온 해외직구 제품에 대한 안전성 조사 결과와 앞으로 추진할 안전성 조사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에 한정해 반입을 제한할 계획이란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사실상 해외직구 금지를 제한적으로 시행하면서 위해성을 핑계로 삼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불신이 담긴 시선은 정부의 해외직구 관련 방침을 완전 철회하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거듭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에 대한 반입을 제한하는 조치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위해성 차단”에 초점을 두는 대신 “해외직구 금지”로만 보고 있다. 이런 시선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위해성 있는 제품이 해외직구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위해성 차단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의 위해성 문제에 대한 해법도 포함됐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유독 해외직구 제품에 대해서만 위해성 검사를 하겠다니, 시선이 위해성 대신 해외직구로 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 문제는 KC인증으로도 확대된다. 정부는 당초 KC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해외직구를 금지하겠다고 했는데, KC인증이 위해성 차단을 위해 제대로 기능하는지가 의문이다. 당장 큰 피해가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중에도 KC인증을 받은 제품이 있었다. 처음부터 KC인증의 보완이나 국내 위해성 제품에 대한 대책을 함께 제시했다면 모를까, 직구 금지부터 선언하고 나선 것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향이 아니다.

KC인증뿐만이 아니다. 리콜 등 소비자 권리보호 제도의 기능강화 방안 등도 함께 내놓았어야 한다. 정부가 이번에 해외 플랫폼의 국내 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환불이나 리콜은 물론이고 피해 발생 시 보상방안과 같은 내용 역시 함께 내놓았어야 한다. 위해성 제품 차단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라면 이같은 조치는 필수적이다.

해외직구에 한해서 우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 최소한 위해성을 제대로 검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마련도 우선적으로 필요했다. 정부는 일단 산업부와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서 그동안 진행해 온 해외직구 제품에 대한 안전성 조사 결과나, 앞으로 진행할 위해성 조사를 근거로 위해제품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위해성 조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개개인의 직구에 대해 조사를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의문이 남아 있다.

결론적으로, 위해제품 차단을 위해 취해야 할 조치가 보이지 않으니 소비자들은 정부의 목적이 해외직구 금지에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해라는 말만 반복해봤자 무너진 신뢰가 회복될 수 없다. 위해제품 차단이라는 목적에 진심이라면, 기존 인증이나 리콜 등 제도를 정비한 뒤 피해발생 시 보상방안 등까지 포함한 새로운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