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모양을 보니…주식이 상승할 것 같다”

프린트

오피니언 ㅣ 칼럼 “그림의 모양을 보니…주식이 상승할 것 같다” 허무한 금융시장 향한 욕망…미술은 어쩌면 머리 없는 유니콘

기사입력2024-09-07 00:00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언제부터인가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유니콘’이라는 단어가 경제전문지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3년, 벤처캐피탈 기업 ‘카우보이 벤처스’의 대표 에일린 리는 창업한 지 10년 미만이지만 1조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신생기업 39개를 뽑아 성공비결을 분석한 적이 있다. 리는 39개의 기업을 ‘유니콘 기업’이라고 호칭했고, 분석 결과가 공개된 후 유니콘 기업이라는 단어는 공공연하게 회자됐다. 스타트업 시대의 성공 기준, ‘대박’의 기준이 된 것이다.

장우주의 개인전 ‘유니콘으로 가는 길’(2024)에는 유니콘이 가득했다. 유니콘이 그려진 회화, 유니콘 형태의 조형, 유니콘 드로잉, 유니콘 별자리 모양을 본떠 배치된 스크린까지. 장우주는 미술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개인이나 기관에서 투자를 받고, 투자를 받기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제작하고 ‘네트워킹’을 하는 등의 행위가 신생기업이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 발품 파는 행위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신생기업이 유니콘이 되기를 원하듯, 미술작가 또한 성공을 염원한다. 전시에서 유니콘은 금융의 논리와 미술의 논리가 교차하기 시작한 오늘을 가리키는 표상으로 쓰였다.

장우주, ‘유니콘 친구들이 히히힝~을 외치며 경주마처럼 달리는 것으로 보아, 네 번째 유니콘이 보이기 전까지 서서히 오를 예정이다’, 천에 아크릴, 210×94cm, 2024.

‘금융화’는 분명 현대 자본주의를 이루는 중요한 논리 중 하나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 힘을 생산하고, 경제와 경제성장은 국가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매개가 된다. 정치는 경제에 의해 침식되고, 시장원리와 경제원리가 일상을 파고든다. 개인과 가족처럼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조차 투자와 비용관리라는 기업의 작동방식을 따르게 된다.

‘신자유주의’라는 체제 분석이 낡은 것처럼 느껴지는 오늘, 몇몇 연구자들은 금융시장에 주목한다. 금융시장은 이 시대의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핵심이다. 연구자 전경모와 이승철은 금융시장의 특징으로 대중투자문화와 불확실성을 꼽는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투자는 생경한 것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돈이 남으면 저축했지, 투자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투자 상품과 기술이 대중화된 이후, 투자 접근성은 크게 높아졌다. ‘개미’라고 불리는 개인투자자는 이제 활발하게 금융시장에 참여하면서 주가 상승과 하락에 울고 웃는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사회를 기업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투자 논리의 온전한 내면화다. 또한 금융시장은 무척이나 불확실하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한 서사를 창작한다. 이러한 서사는 시장을 둘러싼 ‘허구적 기대’를, 즉 꿈과 희망, 그리고 믿음을 만들어내고,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버블’을 형성하기도 한다.

장우주의 전시에는 흥미로운 그림이 한 점 있었다. 주식의 디지털 차트를 꼼꼼하게 묘사한 뒤, 대강 그린 듯한 유니콘을 새겨 넣은 작업이었다. ‘유니콘친구들이 히히힝~을 외치며 경주마처럼 달리는 것으로 보아, 네 번째 유니콘이 보이기 전까지 서서히 오를 예정이다’(2024)라는 긴 제목을 달고 있는 그림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밈(meme)’을 소재 삼았다.

주식 차트에 표기된 데이터를 따라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 놓고는, ‘그림의 모양을 보니, 주식이 상승할 것 같다’라고 농담하는 밈이었다. 차트가 유니콘 모양이기에 주식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이처럼 터무니없는 믿음이야말로 거품과 같이 부풀어 오르는 금융시장을 떠받치는 뿌리일지 모른다. 그림에 묘사된, 조금 귀엽고 왠지 허무하게 생긴 유니콘들은, 그만큼이나 허무한 금융시장을 향한 욕망을 나타냈다.

전시장에 놓인 유니콘들에겐 어딘가 흠결이 있어 보였다. 몸이 없거나 목이 없는 등, 신화 속 유니콘 도상이나 ‘유니콘 기업’이 의미하는 유니콘에 비하면 볼품없는 모양새였다. 망가져 버린 유니콘들은 하나의 화폐(currency)가 되어버린 미술의 처지와 유사하다. 진리를 좇기 위한 미적 탐구는 이제 투자가치를 올리기 위한 궁리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유니콘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목이든 몸이든.

그래도, 미술은 이처럼 허탈한 상황을 소재로 삼으며, 역설과 모순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줄 알기에 흥미롭다. ‘유니콘으로 가는 길’ 역시 모순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확장하면서 하나의 길을 만든다. 그 길 위에는 성공이나 ‘대박’ 대신 성찰과 비판이라는 낡아빠진 가치가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