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관료와 검찰·법원이 ‘삼바’ 사태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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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금융관료와 검찰·법원이 ‘삼바’ 사태를 키웠다 이번엔 추호의 정치·경제적 고려없이 법률 잣대로만 판결해야

기사입력2018-11-15 20:09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심의한 결과, 분식회계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바이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 기업가치를 ‘뻥튀기’하기 위해 회계기준을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등의 위법행위를 통해 4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다는 결론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사건의) 시작과 끝은 재벌총수일가의 기업지배 세습 욕망 때문”이라며 “그 과정에서 회계법인이 사실상 공모한 의혹이 있고, 회계법인을 감시해야 할 금융위와 금감원도 묵인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위원은 “이 공모행위와 직무유기 행위에 대해 금융당국 스스로가 자체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밝혀내야 한다”며 “그렇지 못하면 검찰이 최악의 금융적폐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증선위의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은 그 끝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미궁으로 빠졌다. 이제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라 삼성바이오의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거래소가 상장폐지 결정을 하기에는 삼성바이오의 덩치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코스피 기준 전체 6위, 시가총액만 22조원을 훨씬 상회하는 초대형 상장사의 퇴출을 한국거래소가 독단으로 결정할 것이라 믿을 바보는 없다. 증선위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에 철퇴를 가한 당일(14일), 삼성바이오 주가는 전일대비 6.7% 오른 33만4500원을 기록했다. 8만여명 가량의 개인투자자가 주가를 좌우할 수 없음을 감안하면, 이날 주가를 끌어올린 주체는 기관투자자다. 개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진 기관투자자의 최종 결정이 ‘대마불사’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기관투자자의 도박은 성공할 개연성이 아주 크다. 삼성바이오 상장폐지에 따른 주식시장 혼란과 이를 방치하기 힘든 정부입장을 고려하면 그렇다. 법과 원칙을 세우자니 시장이 아우성일테고, 실물경제를 이유로 단죄하지 않으면 정의가 무너진다. 한국거래소뿐 아니라, 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사면초가 상황에 몰렸다.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이 부회장 개인의 탐욕조차 단죄하기 어려운 국가경제시스템과 공권력에 짜증이 난다. 특혜논란이 진작 나왔음에도, 정부는 예외규정까지 만들면서 상장요건을 갖추지 못했던 삼성바이오를 상장시켰다. 그랬던 정부가 이제 입장을 바꿔, 상장폐지를 결정해야 한다. 정부의 상장결정을 신뢰해 삼성바이오에 투자했던 투자자의 주식을 휴지를 만들면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결자해지이고 인과응보 차원에서 정부가 여기까진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리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기업단위에서 벌어진 단순한 분식회계 사건이 아니다. 글로벌기업 삼성전자 ‘주인’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보다 큰 범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하나의 작은 사건이란 얘기다. 증선위가 확보한 증거자료에 따르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그린 설계도가 나왔고, 삼성바이오 대표이사를 포함 재경팀이 손발이 돼 움직였다.

그 결과 적자기업 삼성바이오는 한순간에 특례 상장요건을 갖출 만큼의 초우량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어 대한민국 최고라는 회계법인들이 공범으로 가담했기에 기업공개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리고 삼성바이오에 4조5000억원이상 공돈이 생기자, 모회사 제일모직 기업가치는 치솟았다. 삼성물산과 비교하면 ‘듣보잡’ 수준이었던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하면서, 제일모직 1주를 삼성물산 0.35주와 바꿀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일모직 최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대권을 손에 쥐는 이득을 얻었다. 반면 그 과정에서 속았든, 속아줬든 들러리를 선 국민연금은 국민노후자금 수천억원을 날렸다. 제일모직과 합병과정에서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삼성물산 주주가 입은 직접적인 손해는 어찌 보상할 건가. 또 삼성전자·삼성물산·제일모직·삼성생명 등 삼성계열사 상호간 물고물린 지분을 고려한다면, 이들 계열사 주식을 가진 주주 간 손익은 계산조차 불가능하다. 이처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으로 부당이득을 얻은 자는 분명하지만, 손해를 본 자는 불특정 다수고 손해 규모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은 이재용이란 단 한 사람의 경영권 세습을 보장하기 위해,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근본질서를 무너뜨렸다. 미래전략실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설계도를 보여주고, 실행지시를 받았다는 직접증거가 없다고 하기에는 정황증거가 너무 확실하다. 신분·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지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회통념이 검찰수사 결과에 나올지 지켜 볼 일이다. 그에 앞서 삼성바이오 상장폐지 여부를 심사하는 한국거래소의 결정 또한 주목해야 한다. 한국거래소의 결정은 향후 검찰수사의 방향을 알려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미로도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은 정부다. 지금껏 재벌기업이 보여준 경영행태를 보자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범죄는 유난스런 사건이 아니다. 증선위 결정에 대해 삼성이 행정소송 제기 방침을 밝히면서, 금융당국과 회계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적법한 회계처리였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재벌대기업 편의에 맞춰 금융행정을 자의적으로 운용했던 정부관료가 있었다. 이를 묵인하며 정당성까지 부여했던 검찰과 법원 탓에, 기업단위 분식회계 사건 하나가 한국 자본시장 전체를 흔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 이번만큼은 추호의 정치·경제적 고려없이 법률의 잣대로만 결말이 나야한다. 상황논리에 밀려 이번에도 단죄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삼성바이오가 나타날 것이고, 그때는 정말 한국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