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노동자 고통, 사회 구성원 함께 분담해야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저임금노동자 고통, 사회 구성원 함께 분담해야 정부…최저임금 사실상 결정했다면, 최고임금 통제못할 이유 없다

기사입력2019-07-17 18:1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아이 생일날 제일 작은 생일케이크를 사며 울어본 적 있는가!” 2020년 최저임금 8590원(시급), 최저임금위원회가 전년대비 최저임금을 240원(2.87%) 인상했던 지난 12일 민주노총이 낸 논평 속의 구절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에게 케이크조차 배불리 줄 수 없는 처지가 한스러워 나온 피눈물이라 짐작해본다.

이 발언은 요즘 유행어로 ‘팩트’다. 최저임금 인상폭이 낮다는 사실을 과장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올해 마지막 회의에서 노동자위원이었던 마트산업노조 전수찬 부위원장이 마트노동자의 삶을 얘기하면서 전했던 울분이다. 민주노총이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가) 저임금노동자의 절규를 짓밟고 최저임금이 가진 의미를 뒤집어 끝내 자본 편으로 섰다”며 “소득주도성장 폐기를 선언했다”고 단언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경옥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비정규특별위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최저임금 노동자위원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사진=뉴시스>

소득주도성장론 폐기 주장에 대해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지난 14일 청와대 김상조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이 곧 최저임금 인상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건강보험료 등 생활비용을 낮추고, 사회안전망 확충 등 간접임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년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 최저임금에 따른 영세중소기업·자영업자의 반발 또는 호소 등을 감안하면, 김상조 실장의 ‘변명’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머릿속으로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가슴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최저임금이다. ‘그럴듯한’ 케이크 하나를 집어 들지 못하고, 그 옆에 ‘제일 작은’ 케이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마트노동자의 절규 때문이다. 마트산업노조에 따르면 대형마트노동자가 서서 일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6.5시간에 달하고, 10명중 7명은 근골격계질환으로 병원치료를 받았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이들이 받는 ‘최고임금’이란 게 최저임금이다. ‘그럴듯한’ 케이크를 아이에게 사주겠다는 마트노동자 모두의 작은 소망을 담았던 최저임금 투쟁, 이들은 여기서 ‘패배’했다.

마트노동자를 포함 저임금노동자 모두가 좌절하며 한편으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이들 모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중소기업·자영업자 부담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노여움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왜 그 부담을 온통 자신들에게 전가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린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손을 놓고 있던 정부가 자영업자를 방패삼아, 자신들의 숨통을 또다시 옥죄는 게 정의에 부합하는지 따지고 있다. 김상조 정책실장의 선의를 불신하는 게 아니라 드러난 결과와 현실을 보면서, 소득주도성장론을 밀고나갈 의지가 정부에게 있는지를 묻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통해 2018년 최저임금은 전년대비 1060원(16.4%) 올랐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에 따르면 2018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직접·간접 수혜자가 552만명, 1인당 월평균 10만8000원(10.6%) ‘추가’ 소득을 얻었다. 또 최저임금 수혜자의 임금인상액 총액은 최대 7조2000억원, 2016년 한국은행이 집계한 피용자보수총액(736조1000억원)의 1%도 안되는 금액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240원 인상됐고, 내년도 노동자 임금총액과 비교하면 그 비중은 0.25%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이 정도 돈마저 우리사회가 함께 부담하지 못하고, 저임금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소득주도성장은 꿈같은 얘기다.

추가적인 법절차가 남았지만 2020년 최저임금은 8590원으로 사실상 결정됐다. 저임금노동자 기대를 철저하게 외면한 최저임금 결정 이후,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이들 저임금노동자의 소득보전방안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생활비용 경감 및 사회안전망 확충 등 간접임금을 통해 소득을 보전하겠다는 정부의 방안은 유의미한 정책이다.

아울러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상처받은 저임금노동자 역시 우리공동체 일원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조치도 내놔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임금노동자가 짊어진 고통만큼,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해야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부산시와 최근 경기도가 도입한 공공기관 임원에 대한 최고임금제를 검토할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공공기관 기관장을 포함 임원의 보수를 최저임금 7배로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 역시 유사한 내용의 조례가 발의되는 등 적지 않은 지방자치단체가 최고임금제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최고임금제를 중앙정부가 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최고임금제 도입을 통해 공공기관 임원과 직원 간 소득격차를 완화하고, 소득재분배라는 공익가치를 민간부분에 확산시키는 모델로도 활용할 수 있다.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한 최고임금제 도입은 논란이 불가피하지만, 공공부문은 정부의 결단만으로도 가능하다. 저임금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정부가 사실상 결정했다면, 공공기관 임원에 대한 최고임금도 통제할 수 있어야한다. 고통분담 차원이 아니더라도 공정이란 측면에서도 도입해야한다. 저임금노동자도 그렇고 노동계, 나아가 영세중소기업·자영업자 모두가 정부에게 바라는 최우선 덕목은 공정이다. 공공기관 임원을 대상으로 한 최고임금제는 이들 모두에게 정부의 공정함을 보여주는 특별하고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