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 국산화…이재용·최태원이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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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부품·소재 국산화…이재용·최태원이 바뀌어야 수평·대등한 산업생태계만이 반도체산업의 지속발전을 보장한다

기사입력2019-07-29 00:0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국경제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산화’다. 완제품이든 그 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부품·소재·장비가 ‘메이드 인 코리아’여야 했다. 국산화 필요성을 모두 알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잊었다가 호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일본은 경제도발을 통해 한국경제의 장기 지속·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키를 알려줬다. 이제 우리 정부와 국민, 기업 모두가 수업료를 최소화하면서 국산화란 목표를 향해 매진할 일만 남았다.

고순도 불화수소,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반도체 핵심소재 3가지 품목 중 하나다. 정부와 기업 모두 불화수소를 구하지 못해 난리다. 재고량이 떨어지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공장이 멈춘다고 한다. 불화수소란 낯선 용어를 포함 이같은 상황을 한달 가까이 모든 언론이 중계해, 국민 대다수를 반도체 전문가가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약 한달 전 불화수소 얘기를 들었을 때. ‘고순도’란 수식어 덕분인지 다이아몬드급 레벨의 고가제품이라 지레짐작했다. 그게 아니었다. 올해 5월까지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불화수소 수입액은 2843만달러, 1년 수입량으로 환산해도 8000만달러가 채 안되는 금액이다. 지난해 반도체 단일품목 수출액만으로 1000억달러를 넘긴 한국이다. 반도체 수출총액 1000분의 1에도 못미치는 불화수소가 대한민국 산업 전체를 흔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필수소재 수출규제 해결방안 모색 차 지난 7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해결방안은 누구나 안다. 당장은 반도체 생산라인에 투입할 불화수소를 찾아야 한다. 수입선 대체가 단기간에 풀어야 할 과제다. 중장기적으로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대책을 수립하고, 국산화가 어려운 제품은 수입선 다변화를 통한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단기 과제의 경우 정부와 기업 모두가 나서 대체 불화수소 테스트, 대체 수입창구 접촉 등 길을 찾은 듯 보여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우려되는 대목은 중장기 과제다. 결론부터 먼저 밝힌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머릿속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불가능하다. 삼성·SK를 최정점으로 한 수직·종속의 원하청관계가 수평·대등한 동반자관계로 전환되지 않으면 역시 가능하지 않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 ‘공정경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집행이 없어도 헛일이다. 지금껏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막은 주범은 이 부회장과 최 회장, 대기업 편향의 산업생태계 그리고 이를 조장·묵인했던 정부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으로 한정하면, 전세계에서 독보적 지위를 점한 한국이다. 불화수소 자체가 대단한 기술력을 요해 한국기업이 생산할 수 없는 소재도 아니다. 8년전 이미 국내 중소기업이 일본산에 맞먹는 불화수소를 개발했지만, 판로가 없어 제품화를 포기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폐쇄적인 생태계 운영으로, 지금 이 난리를 겪고 있다는 게 뼈아프지만 진실이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도, SK하이닉스 최태원 회장은 “국내 중소기업이 불화수소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품질이 다르다”고 말한다. 150여만명이 종사하는 2만8000여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의 역량·잠재력을 부정하고, 자신만이 최고라는 오만이 최 회장의 목을 조이는 셈이다.

장담하지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부회장은 불화수소를 개발할 정도의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하청회사로 거둘 이유가 없다. 고부가가치 부품은 삼성계열사가 개발해 공급하면, 그 돈이 이 부회장 호주머니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저부가가치 부품만 하청기업에 넘겨 수탈에 가까운 수요독점 이윤을 챙긴 삼성·SK다. 호서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김학수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47%다. 반면 반도체 후방산업인 소재·부품·장비 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9%에 불과했다.

1000원어치 물건을 팔아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470원 수익을 남기고, 2만8000여개 하청업체는 59원을 벌었다. 김학수 교수가 최근 한 토론회에서 “메모리 반도체 슈퍼호황의 낙수효과는 없었다"고 단언한 이유다. 이렇듯 생존하기에도 빠듯한 수익으로 하청업체가 불화수소를 개발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격으로 어렵사리 개발했다고 쳐도, 원청사가 원천기술을 도둑질 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해 영업이익을 좀 남기려 하면, 납품단가를 후려쳐 혁신유인의 싹조차 뽑아내는 게 우리 반도체 산업생태계다.

여기에 원청사의 불공정행위를 바로잡을 책임과 권한이 있는 정부는 뒷짐만 졌다. 이같은 산업생태계 속에서는 삼성·SK가 주는 물량만 받고, 그에 따른 인건비 정도라도 챙기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신기술을 개발해봐야 삼성·SK 배만 불려주는 현실에서 어떤 하청업체가 기술개발에 돈을 투자하나. 지금 삼성·SK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 애타게 찾는 불화수소 생산기술이 사장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반도체산업을 포함 우리나라 전체 산업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재벌대기업·원청사 편향의 시장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이 상생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스스로 하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 이들의 반칙을 규제해야 한다. 독과점 지위를 남용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가져가는 수요독점 이윤 또한 과도하지 않도록 공정한 시장의 규칙도 세워야 한다.

반도체산업에서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존속하는 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요원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인 ‘공정경제’·‘혁신경제’의 지향점 역시 대·중소기업 상생발전 아닌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넘어 모든 산업에서 국산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특히, 공정경제는 강력하게 추진돼야 한다. 아울러 강한 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준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의지로, 정부는 중소기업·하청사 보호·육성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