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미술…작가가 작업하는 곳이 작가의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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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신체 미술…작가가 작업하는 곳이 작가의 신체 몸이 몸에게 하는 예술…비토 아콘치 ‘트레이드마크’

기사입력2020-07-19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몸을 도화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용이나 호랑이와 같은 문신을 한 조직폭력배를 봤을 때, 앞에서는 벌벌 떨지만, 뒤에서는 ‘몸이 도화지인 줄 아나?’라며 비웃는다.

요즘 젊은이에게 유행인 패션 타투(tattoo)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자리 잡았다. 이 또한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의 도화지처럼 사용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보디 페인팅이나 페이스 페인팅도 몸에 그림을 그려 자신을 미술작품으로 만든다. 화장도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예쁘게 꾸미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몸도 표현의 좋은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상황을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작가가 작업하는 곳이 작가의 신체인 상황, 작가와 작품이 어떤 틈도 없이 딱 달라붙어 있는 상황. 둘 사이가 분리되지 않는 이 같은 상황은 미술 행위의 주체와 대상이 공존하는, 혹은 교란되는 애매한 상황을 만든다.

◇자신이 자신에게=미술가가 자신을 작품에 등장시킨 것은 이미 오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자화상이다. 화가에게 자신의 얼굴은 연습하기 아주 좋은 인물화의 대상이다. 모델이 될만한 다른 사람을 부를 필요가 없이, 거울만 있으면 언제든지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뿐만 아니라 전신을 그리기도 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시녀들(Las Meninas, 1656)’이 그 좋은 예다. 펠리페 4세의 딸인 마르가리타 공주를 중심으로 좌우에 시녀들과 난쟁이, 큰 개가 있는 이 그림의 왼쪽에서 거대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다.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자신을 넣어서 그린 것이다. 사진기가 없었던 17세기 그 당시에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알맞은 자세를 취한 후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스케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게 자신의 모습을 이 그림에 넣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화가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을 종종 드러내곤 했다.

자신의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출처=sonicabuse.com>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은 자신을 반영한 작품이기에 어떤 측면에서 화가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품에 자신을 그린다고 해도 작품은 작품이고, 화가는 화가다. 작품은 표현의 대상일 뿐 표현의 주체인 화가와는 명백히 분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만약 작가가 자신의 몸을 표현의 대상처럼 사용한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쉽게 말해서 작가가 자신의 가슴을 도화지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그림을 그린다면, 작가는 표현을 하는 주체인가, 아니면 표현을 당하는 대상인가?

이러한 고민은 이미 1960년대 초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행위하는 퍼포먼스가 몸 그 자체, 즉 신체로 그 초점을 이동하면서 “신체가 하나의 필수적인 재료가 되어 작품과 결합되는” 퍼포먼스가 등장한 것이다. 이를 ‘신체를 내세우는 퍼포먼스’ 혹은 ‘신체 미술’이라고 불렀다. 신체가 작업의 주체이자 대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작품을 만드는 주체적인 몸과 작품이 되는 대상으로서 몸이 겹쳐져 있다.

하지만 ‘행하는 몸’과 ‘당하는 몸’의 화해는 행하는 몸이 당하는 몸을 평온하고 아름답게 만들 때나 가능하다. 만약 행하는 몸이 가학적인 행위를 당하는 몸에게 가한다면, 즉 자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면 이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자신의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ουροβóρος)를 떠올려보라. 거대한 뱀 또는 용이 자신의 꼬리를 먹고 있는 고대의 상징,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의 우로보로스에서 포식자는 꼬리를 먹는 자신이며, 피식자는 꼬리가 먹히는 자신이다. 여기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교란이 일어난다. 과연 누가 포식자이고, 누가 피식자인가?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누가 주체이고, 무엇이 대상인가? 이 둘은 과연 화해하며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문제적인 작가 비토 아콘치는 1970년 9월 어느 날 자신의 살을 강하게 물었다.

◇애매한 몸=비토 아콘치(Vito Acconci, 1940~)의 작품 중에 ‘트레이드마크(Trademarks, 1970)’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손바닥과 팔뚝, 허벅지 등을 강하게 물어서 선명한 이빨 자국을 남겼다. 그는 이러한 행위와 선명한 이빨 자국을 사진으로 찍었다. 더불어 탁본처럼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이빨 자국에 잉크를 칠해 종이에 찍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글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트레이드마크’다.

비토 아콘치, ‘트레이드마크’, 1970,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과 탁본, 텍스트.<출처= walkerart.org/collections/>

이 작업에서 아콘치는 작가이며, 작품이다. 캔버스의 지배자인 동시에 캔버스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는 ‘표현하는 주체이자 표현되는 대상’이 된다. 문제는 깨무는 행위가 ‘자기 소외’ 행위라는 것이다.

‘트레이드마크’에서 아콘치는 가학적인 주체이며, 동시에 피학적인 대상이다. 하지만 이 두 층위는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된다. 작가로부터 신체가 소외되는 것이다. 신체는 자신을 보호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사신경은 어떤 위협적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작용이다. 신체의 피부에 분포되어 있는 통점은 신체에 위해가 가해졌을 때, 아픔을 느끼게 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신체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우리의 신체는 신체를 보호함으로써 자기의 소유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데 자기 몸을 자신이 공격하는 행위는 자기 몸과 자신을 분리하는 행위이고, 결국 자신(몸)을 소외시키는 행위다. 그래서 아콘치가 자신의 몸을 깨무는 예술 행위는 자기 소외 행위이다. 그로 인해 작가의 몸은 애매한 존재가 된다.

몸은 물과 단백질, 지방, 무기질, 탄수화물 등으로 구성된 물질이지만, 문화가 스며 있는 상징적인 기호이기도 하다. 아콘치가 자신의 몸을 깨무는 순간 ‘표현되는 대상’이 된 신체는 단순히 물과 단백질, 지방 등으로 구성된 물질로서의 미술작품이 된다.

이때부터 신체는 판매 가능한 상품화된 신체가 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빨 자국은 신체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깨무는 모습과 이빨 자국은 이미 사진으로 남았고, 자국을 잉크로 뜬 탁본과 이 행위를 기록한 텍스트도 남아서 판매 가능한 작품으로서 신체임을 증명해준다. 이 신체는 더는 문화가 스며 있는 기호로서 몸이 아니다. 단지 살덩어리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면 작가는 살덩어리인가? 몸을 가진 작가는 행동하는 주체다. 단순히 살덩어리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빨 자국이 있는 신체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가 될 수 없는 이 상황은 분열과 교란을 낳으며 ‘애매한’ 몸을 만든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이분법이 각축한다. 능동과 수동, 가학과 피학, 물질과 기호, 표현함과 표현됨 등.

마치 자신의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처럼 몸 안에 존재하는 이 모든 대립항은 끊임없이 물고 물리며 작가와 작품 사이에서 무한 진동한다. 작가가 자신을 소외시키며 작품이 되는 것과 작품 그 자체가 작가인 것은 물질적 실체로서는 하나의 단일한 몸이지만, 의미의 영역에서는 결코 하나일 수 없는 몸이다.

현대미술은 쉽지 않다. 작가가 자신의 신체를 깨무는 단순한 행위에서도 이처럼 깊은 의미를 헤아려 봐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