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라는 게 따로 있나…동료들의 젖은 신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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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홍보라는 게 따로 있나…동료들의 젖은 신발에 있다 김윤아 작가의 Life is pain.ting…#33. 호우주의보

기사입력2020-09-03 18:02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지난 8월1일 호우주의보가 내려졌고,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이토록 긴 장마는 최근 몇 년간의 기억을 뒤적거려도 없는 걸 보니 뉴스에서 말하듯 기록적이긴 한 듯하다. 올해 작업실 이사 후 짐도 다 풀지 못한 채로 내내 준비하던 개인전 오픈 역시 8월1일이었다. 장마 소식을 접한 후이기도 했고, 코로나 이후 오픈식을 따로 한다는 게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별도의 오픈식 없이 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지원금이 있는 전시이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홍보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지면 홍보의 경우 수백만원 단위이기도 하고, 전시공모나 전시를 업데이트 하는 아트 전문 온라인 페이지 역시 전시를 등록하고 배너에 뜨게 하느냐, 팝업창에 뜨게 하느냐, 게시판 홍보로 가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기간에 따라 적게는 몇 십에서 몇 백만원까지도 간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자체홍보를 하게 되는데 전시 관련 이벤트 페이지를 따로 만들기도 하고, 전시 관련 자료를 여러 문화재단 쪽에 이메일로 배포하기도 한다.

전시에 들어 갈 작품을 점검하고, 작품배치 예상도를 작성해보고, 운송업체를 알아보고 예약을 했고, 전시 포스터를 만들고, 외부 현수막 디자인과 외부 배너 디자인을 하고, 엽서 시안을 만들고, 전시 관련 노트를 작성했고, 전시를 앞두고 ‘별도의 오픈식은 없습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SNS에 전시 포스터를 하나 띄우고는 다른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트○○, 네오○, ○○바바 등등 대부분의 작가들이 전시를 등록하는 곳에 자료를 보낼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그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메일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개인 SNS 계정 외에는 아무데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나를 안다. 그동안에도 잘 하지 않은 짓을 이번이라고 잘 할리 없었고, 다만 고민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고민을 그만둔 것만이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몇몇 가까운 지인들은 고생하며 작업했는데, 온라인 등록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언 했지만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지면 홍보나, 온라인 홍보라는 것이 대부분 작가들만 들락거리거나, 지면기사 역시 작가들만 읽어보는 페이지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런 비용을 들일 만큼 효용 측면에서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돈’을 들여 홍보를 하는 이유는 대부분 관객유치를 위한 게 아니라(어차피 대부분의 전시가 무료이기 때문에 ‘실직적’ 이유가 되지 않는다), 작가 개인의 아카이브 때문이다. 그 많은 공을 들여 전시를 마치고 나서 ‘오피셜’한 기록 하나, 그조차 남지 않는다는 게 너무나 공허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작업실에 내내 벽지처럼 들러붙어 진행해 온 작업들을 전시하면서도 그 ‘기록’을 위해 뭔가 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비가 오락가락 하는 기간 동안 벽지에서 곰팡이라도 피어난 것일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비가 오는 날씨와, 서울 그리고 토요일이라는 교통체증이 극에 달하는 요일과, 이렇다 할 홍보 하나 없었던 전시였는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전시장에 들어섰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형식의 전시관람이 줄곧 이어졌으나, ‘공간’에 대한 니즈가 외려 더 높아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김윤아 작가>

8월1일 전시 오픈을 앞두고 설치기간은 7월30일 저녁부터 31일까지 하루 반나절이었다. 설치를 하는 날은 운송하는 아저씨가 약속시간보다 늦게 오시는 바람에 예상 도착시간보다 두 시간 가까이 늦어졌고, 나의 스트레스는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무리 공간 연출과 예상도를 완벽하게 그려놓고 왔어도 현장 설치는 늘 예상 밖의 결과가 있을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대책까지 고려하면 정말이지 촉박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그에 스트레스를 받아 감정조절 장치를 부러뜨리고 나면 뒷일이 얼마나 힘들게 이어질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최대한 감정을 지우고 바위가 되려고 노력하는 수 밖에.

설치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 늦도록 이어졌고, 그대로 눈을 감으면 땅으로 깊숙이 꺼져 지구의 핵이 숨어져 있다는 곳까지 녹아들어 갈 것만 같았다. 조명까지 손 보고 집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오르자 날이 밝기 시작했다. 그 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에 없다. 아마도 집에 들어와 그대로 침대에 누워 바로 잠들었던 것 같다.

8월1일은 호우주의보 경고로 아침부터 재난경보 메시지 알람소리에 전화기가 시끄러웠다.

보통 오프닝이라고 하면 간단한 케이터링과 와인, 각종 음료를 준비하고, 전시에 따라서 오프닝 공연을 준비하는 작가도 있고 더러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기도 한다. 어차피 별도의 오프닝 없이 진행할 예정이었고, 전시에 오실 분들은 전시기간 중에 띄엄띄엄 여유있게 올 거라 예상했기에 느지막이 갤러리로 출발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비가 오는 날씨와, 서울 그리고 토요일이라는 교통체증이 극에 달하는 요일과, 이렇다 할 홍보 하나 없었던 전시였는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전시장에 들어서고 계셨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나조차도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형식의 전시관람이 줄곧 이어졌으나, ‘공간’에 대한 니즈가 외려 더 높아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그날 밤은 늦게까지 계획에 없던 뒷풀이가 이어졌고 여느 뒷풀이처럼 예술, 사랑, 돈, 삶에 대한 이야기가 비 오는 새벽 내내 문래동 골목 작은 포장마차에서 내내 이어졌다.

그 후로 전시기간 내내 일기예보에서, 그리고 재난경보가 시끄럽게 내내 울린 것처럼, 줄기차게 굵은 빗줄기가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은 모두 이 기록적인 장마 얘기 밖에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모처럼 사람들을 전시장에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작업실에 비가 새는 바람에 내내 물 퍼내고 작업실 공사 하느라 여전히 작업장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내 바닥에 고인 빗물을 스펀지에 적셔서 짜내고 하면서 나는 피식, 벌써 다음 계절에 놓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조만간에 다시 추운 겨울이 올 테고, 아마 모두들 기록적인 추위에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폭우 속에서도 정말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다. 별다른 홍보 하나 없는 전시였지만, 아마 내 생에 지금까지는 가장 기록적인 방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홍보라는 게 뭐 대단하게 배너 띄우고 팝업에 번쩍번쩍 뜨는 것이겠나. 장마 속에서도 오가는 동시대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의 젖은 신발에 있는 게지.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