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가문, 숨겨진 아픔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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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화려한 가문, 숨겨진 아픔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 안드레아 만테냐의 ‘부부의 방’

기사입력2022-01-07 15:58

아름다운 그림이 벽에 가득한 부부의 침실에 들어서면 시선은 어느새 천장을 향합니다. 황금빛 고대 장식이 가득한 천장 중앙에는 원형 창문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외부로 뚫려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이 원형 창문 위에는 은밀한 부부 침실을 훔쳐보려고 모여든 여인들과 천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탈리아 북부 르네상스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 침실, 바로 만토바의 ‘부부의 방’입니다.

‘부부의 방’, 천장(부분), 1465~1474년, 만토바, 듀칼레 궁전.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 만토바. 로마와 피렌체처럼 유명 관광지는 아니지만, 하루 나들이를 즐기기에 좋은 이 도시 거리에는 북부 르네상스 미술과 건축이 가득합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듀칼레 궁에 1465년 그려진 ‘부부의 방’입니다.

북부 르네상스 미술을 이끌었던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는 당시 도시국가 만토바의 영주였던 루도비코 곤자가 가문의 침실에 벽화를 그려 주었는데, 이 방은 단순한 부부 침실이 아닌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백작의 집무실이기도 했습니다. 안방이나 거실에 가족사진을 걸어 두는 것처럼 곤자가 가족의 초상화를 그려 백작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에게 통치자의 메시지를 예술로 전하는 르네상스 미술작품입니다.

부부의 방은 길이 8미터, 높이 4미터의 공간으로 북쪽 벽에 곤자가 가문 사람들을 소개하는 ‘궁정’ 장면과 서쪽 벽의 ‘만남’에서 가문의 중요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천사와 여인들이 엿보는 풍경이 그려진 천장의 원형 창문에서는 르네상스 시대가 인간을 얼마나 따뜻한 시선으로 보았는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부부의 침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6세기 미술역사가 조르조 바자리는 이 작품을 보고 싶었지만, 만토바의 허락을 받지 못해 결국 생전에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만토바의 보물 보관소가 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잊혀지다가 1800년대 말에 와서야 세상에 공개됐고, 최근에 와서야 학자들의 연구가 진행 중인 작품입니다.

‘부부의 방’ 벽화 중 궁정 장면.

만토바는 15세기에 결혼 관계로 맺어진 인맥으로 유지되었던 작은 도시국가로, 2대 통치자 루도비코 곤자가(1412~1478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조카 바르바라 브란데부르크 (1422~1481년)와 결혼해 세력을 확장해 갔습니다. 정략결혼이었지만 다정한 부부로 살았던 그들은 11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 자녀들은 통치권을 계승하고 추기경이 되었으며 딸들의 정략결혼을 통해 또다른 정치적인 인맥을 다지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밀라노와 베네치아 공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작은 도시국가 만토바의 운명이 곧 곤자가 가족의 운명이었기에 그들의 가족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기품있는 모습으로 의자에 앉은 루도비코 곤자가 백작은 충실한 비서 마르실리오에게 전달받은 편지를 읽고 그에게 중요한 정치적인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뒤에는 대를 이을 아들 잔프랑코가 서 있고, 든든한 조력자인 아내 바르바라가 곁에 있습니다. 그녀 주변에는 여인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독일 뷔템베르크의 공작 부인이 된 딸 바르바리나 곤자가가 백작 부인 뒤에 있으며 그녀 뒤에 리미니 귀족인 할머니 파올라가 마치 뒤를 지켜주는 것처럼 서 있습니다.

아들딸들과 남부러울 것 없는 화목한 가족의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어느 집안이나 우환이 있는 것처럼 이 가족에게도 근심이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가문과의 정략결혼은 곤자가 가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지만, 이 가문에게는 숨기고 싶은 유전병이 있었습니다. 곤자가 가문의 유전병 때문에 밀라노 공국과의 결혼이 무산되어 한 때 두 나라간의 동맹 관계에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첫째 딸 수산나 곤자가는 밀라노 공국의 아들과 약혼하지만 유전병에 걸려 파혼당합니다.

곤자가 백작은 밀라노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둘째 딸 도로테아 곤자가를 겨우 새 약혼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밀라노 공국과 사돈을 맺으려는 루도비코의 계획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정략결혼을 하지 못한 여인들은 이 가족 초상화에는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정략결혼에 성공해 공작부인의 호칭을 얻은 딸들만 가족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엄마 곁에서 사과를 들고 응석을 부리는 어린 딸 파올라는 병약했기에 병색이 짙은 얼굴로 그려졌지만, 그녀는 신성로마제국의 연방 국가인 고리치아의 공작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들 주위에는 할머니, 가정교사, 비서, 시중드는 하녀 그리고 난장이 여인 같은 궁정인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난장이는 가문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어 궁정인으로 함께 살곤 했습니다.

‘부부의 방’ Camera degli sposi, 1465~1474년, 만토바, 듀칼레 궁전.

루도비코 곤자가는 애견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가족 초상화에 그려넣을 정도로 그들을 사랑했는데 이 벽화에는 듀칼레 궁에서 살았던 4마리의 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루도비코의 의자 아래에 앉아 있는 애견 루비노는 1467년에 죽었을 때 라틴어로 비석을 만들어 줄만큼 루도비코가 아끼는 애견이었습니다.

곤자가 가문의 전성기 때 완성된 듀칼레 궁은 호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호수를 건너면 만나는 궁전의 가장 오래된 저택 성 조르조 카스텔로는 아침마다 둘러싸는 안개가 르네상스 시대를 회상하듯 고요한 풍경을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부부의 방’에 들어서면 세련된 장식이 있는 극장에서 한 가족 이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커튼을 걷으면 500년 전 곤자가 가족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소문 듣고 온 천사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려 엿보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안목이 깊었던 루도비코 곤자가가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를 궁정에 불러 제작한 ‘부부의 방’은 화려한 가문의 인맥과 이면에 숨겨진 아픔 그리고 가족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천사와 함께 엿보는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입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