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공장 ‘멋진 구호’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프린트

오피니언 ㅣ 칼럼 스마트공장 ‘멋진 구호’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양’의 성과 거뒀으니, 스마트제조 ‘질’적 발전을 이룰 때다

기사입력2022-02-10 11:50

한석희 객원 기자 (shhan@assist.ac.kr) ㅣ다른기사보기

4차산업혁명연구소 대표 한석희 박사

“고도화 공장, AI 공장, KMAP, 제조 르네상스, AAS, 등대 공장, 가이아 X, 시범 공장, 모델 공장, 표준 공장 등 멋진 구호 하나 만들려는 욕심에 돈과 시간만 낭비한다.”

흉금을 털어놓는 분위기가 조성된 제조기업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사실 눈과 귀가 늘 현장에 있는 사람은 이런 구호에 별로 관심이 없다. 반면 구호를 찾는 사람의 공통점은 어깨의 완장이다. 완장이 주어지면 그 완장이 어깨를 떠나기 전에 뭔가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는 것 같다. 그 강박관념이 종종 별다른 내용이 없는 새로운 구호를 양산하고 있다.

제조업의 역사가 200년이 넘는 시점인 지금, 대한민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데 ‘스마트공장, 스마트제조’ 말고 뭐 그리 새로운 구호가 더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이것저것 말만 무성하고 성과가 없으니, 또 다시 작명에 공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개별 기업 제조현장에서 보면, 작명이 어떻든 본질이 바뀌는 것은 없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활동이 있을 뿐이다. 실제 지난 7~8년간 정부가 수 없이 내 놓은 활동 구호를 봐도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결과만 보면 결국 다른 것이라 함은 정책 추진자의 관점이며, 그 관점을 강요하려는 부연설명의 노력 정도일 뿐이다.

활동의 ‘질’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그간 정부가 주도한 스마트공장 보급사업은 2만5000개에 이르게 됐다. 세계 다른 곳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유례 없는 수준의 ‘양’의 성과를 거뒀다.

“주변의 사람들 중에 제조업을 운영하거나 제조업체에서 경영자로 일하는 기업을 한번 둘러 보세요. 그 회사의 경쟁력이 이전에 비해 좀 나아진 것 같은가요?”

대한민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데 ‘스마트공장, 스마트제조’ 말고 뭐 그리 새로운 구호가 더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이렇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대부분 부정적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의 혁신활동을 추진했건만 그런 양의 성과를 통해 얻은 것이 아직 없다고 보는 것인가? 누군가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얼마나 어떻게 향상됐는지 답을 해야하지만, 성과에 대한 진실한 답을 말할 사람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개별 기업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답이 있는 곳이 있기도 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양’이 점차 ‘질’을 형성하는 긍정 현상도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제조업의 ‘스마트제조’는 이러한 긍정 현상과 경험을 확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구호에 집착하기 보다는 이런 상식에 기초하는 ‘질’ 향상을 도모할 때다. 누군가 더 근사하고 더 새롭게 만든 구호로 치장한들 현장이 달라질 것은 없다.

그간 여러 굵직한 명칭의 변화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한 국가 주도 제조업 경쟁력 향상 활동이 스마트제조의 시작이었으며 1단계 활동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이어받아 추진한 활동은 그 2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정부는 담담하게 스마트제조 3단계 활동을 추진하면 된다. 그간 시행착오의 원천이었던 ‘정부 주도’, ‘공급자 중심’ 마인드셋을 ‘제조기업 중심’으로 바꾸는 원칙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구호를 다시 만들고 그 구호 속에 화려한 접두어인 ‘AI’, ‘빅데이터’, ‘IoT’ 심지어 ’메타버스’를 넣든 빼든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기업은 스스로 그들에게 적정한 수준의 필요 기술을 선택해 ‘적합한 수준’으로 제조혁신을 추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구호를 통해 분위기를 띄우지 않아도 될 시점이란 뜻이다.

정부는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다. 마치 들판에 햇빛 또는 비와 바람을 뿌리는 존재와 같다. 이런 역할을 하는 정부는 생태계 속에서 뿌리 내리고 활동하는 기업의 생존력을 믿어야 한다. 마치 아이를 믿고, 신뢰를 보내는 부모의 바른 역할을 정부가 찾아야 한다.

정부의 할 일은 기업이 일을 잘하도록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건강한 생태계 조성은 바른 정책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가질 때다. 바른 정책의 줄기는 산업 현장, 기업 현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책상 위에서 머물러서는 바른 정책이 나올 수 없다. 그리고 바른 정책은 이런 저런 새로운 구호를 만드는 것에 있지 않다. 생태계 속에서 기업이 자신의 생존 능력을 믿고 이를 키워나가도록 하는 것에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4차산업혁명연구소 대표 한석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