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 울리는 ‘물적분할’ 그대로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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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동학개미 울리는 ‘물적분할’ 그대로 둘 것인가 애먼 소액주주 피해보는 불공정 분할합병, 방임한 이사의 책임이다

기사입력2022-05-24 11:00

이지우 객원 기자 (jwlee@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이지우 간사

윤석열 정부는 ‘자본시장의 공정성 제고를 통해 투자자로부터 신뢰받는 시장을 구축한다’며, ‘물적분할 관련 주주 보호’를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모(母)회사가 신사업을 분할해 별도 자(子)회사로 상장하는 경우 모회사 소액주주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정비한다는 것이다.

물적분할은 최근 자본시장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2020년에는 28개, 2021년에는 23개사가 물적분할을 공시했다. 이 중 2020년 9월 LG화학, 2021년 8월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사업부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을 각각 자회사로 물적분할 했다. 이후 주당 100만원대이던 LG화학 주가는 50만원대로, 주당 30만원에 달하던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20만원대로 각각 50%, 30% 폭락했다. 분할 후 상장된 LG에너지솔루션 또한 상장 후 주가가 지속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SK온은 상장을 위한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외에도 카카오-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모빌리티, 이마트-SSG닷컴, SK케미칼-SK바이오사이언스, CJ ENM 등 많은 회사들이 물적분할 후 상장을 했거나 이를 계획하고 있다.

물적분할은 인적분할과 함께 기업분할의 대표적인 한 유형이다. 재벌은 승계 등 사익추구를 위해 회사의 분할·합병을 자주 사용해 왔다. 회사가 인적분할을 하는 경우 기존 주주가 분할회사의 주식 또한 원래 자신의 지분율대로 소유하는 반면, 물적분할 이후 모회사는 신설 자회사의 지분을 100% 소유한다. 회사 A의 지분을 10% 소유한 주주의 경우 A가 인적분할로 쪼개져 회사 A'와 회사 B가 되면 A', B의 지분을 각각 10% 그대로 갖게 된다. 그러나 A가 물적분할을 한다면 이 주주는 모회사 A'의 지분만 10% 갖게 되고, A'가 자회사 B의 지분을 100% 소유한다.

인적분할은 소위 ‘자사주의 마법’을 통해 재벌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데에 사용됐다. 회사 A가 소유한 자사주에는 원래 의결권이 없으나 A가 A'와 B로 분할될 때 A'는 자신의 기존 자기주식 비율만큼 의결권 있는 B의 주식을 갖게 된다(A'→B 지배력 강화Ⅰ). 한편, A 지분 20%를 가진 지배주주는 분할 후 A'와 B의 지분을 20%씩 갖게 되는데, 이때 지배주주가 가진 B의 지분 20%를 A'가 되사고(A'→B 지배력 강화Ⅱ), 그 대가로 지배주주에게 A' 자신의 신주를 발행(지배주주→A' 지배력 강화)해 넘겨주면 지배주주는 자신→A'→B로 이어지는 소유지배구조를 굳건히 할 수 있다. 인적분할은 재벌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방법이었지만 많은 논란으로 인해 최근에는 줄어드는 추세다.

물적분할 후 상장의 경우 지배주주는 자신의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기업의 자본시장 상장(IPO)으로 인한 사업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다. 그러나 분할 후 상장 자회사는 주로 모회사의 신사업이나 핵심사업부였던 경우가 많아, 해당 사업의 가치를 보고 기존 모회사에 투자한 소액주주는 주가 하락 등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즉, 물적분할 문제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배주주의 사익추구를 위한 의사결정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한국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 현실이다.

불공정한 분할합병을 통해 재벌총수 등 지배주주는 손쉽게 기업집단 내 영향력을 강화하고, 애먼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사례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물산 불법 합병 또한 애초에 이사회가 부당한 합병비율을 용인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이러한 문제점은 비단 기업분할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까운 사례로는 지난 3월 발표된 동원그룹의 비상장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상장 중간지배회사인 동원산업의 합병비율 관련 논란을 들 수 있다. 동원산업은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 합병하면서 합병비율을 1대 3.8로 공시했는데, 동원산업 소액주주들은 이것이 불공정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동원엔터프라이즈가 63%의 지분을 소유한 상장회사 동원산업의 가치는 낮게, 총수 일가 지분이 100%인 비상장회사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가치는 높게 평가함으로써 소액주주에게는 불리하고, 총수 일가에게는 유리한 합병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동원산업은 기준시가(24만8961원)로 정한 합병가액이 순자산가치(38만2140원)보다 낮은 점 등이 논란이 됐고, 이에 지난 5월19일 동원산업은 합병가액을 순자산가치로 변경, 합병비율을 1:2.7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와 유사한 예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례에도 적용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자신이 지분을 가진 제일모직과, 지분은 없지만 덩치가 더 크고 삼성전자 등 주요 회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추려 했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회계 등을 자행했고,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얻기 위해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대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회삿돈을 횡령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 또한 회사 가치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입었고, 이는 국민 노후자금에 대한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결국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한 회사 분할합병은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를 하락시키고, 지배주주 외 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등 불공정한 경제질서를 조장한다. 윤석열 정부는 물적분할 후 상장으로 인한 소액주주 피해를 막기 위해 합병분할 시 소액주주도 인수기업에 주식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외에 기존 주주들에게 물적분할한 자회사 상장 시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법도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은 불합리하게 합병비율이 결정되는 것을 애초에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사실 해외기업의 경우 물적분할을 금지하는 법이 없음에도 물적분할 후 모자회사의 동시 상장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해외기업들이 한국기업보다 선해서가 아니라, 이들 나라에 소액주주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집단소송 등의 제도가 잘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 상법에는 불공정한 합병분할 비율 등으로 소액주주가 손해를 입었을 경우 주주대표소송 등으로 이를 결정한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부재하다. 문제 있는 합병분할 비율을 살펴보고 이를 걸러내야 할 이사회가 그 의무를 해태함으로써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았다면,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이 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불공정한 회사 분할합병안을 방임한 이사에 대해 소송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부당한 분할합병은 줄어들 것이다.

불공정한 분할합병을 통해 재벌총수 등 지배주주는 손쉽게 기업집단 내 영향력을 강화하고, 애먼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사례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물산 불법 합병 또한 애초에 이사회가 부당한 합병비율을 용인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투자자들의 억울한 피해를 막고, 자본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 통과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이지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