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해하는 인간사회의 이상적 관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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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서로 이해하는 인간사회의 이상적 관계 보여주다 라파엘로 ‘가바의 성모’와 그가 만난 천재들…英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

기사입력2023-07-13 10:00

미술관에 가는 것과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은 느낌이 다릅니다. 소장된 작품을 보러 가는 미술관과 달리 전시회는 새로운 작품을 만나러 가니, 무엇이 있을지 왠지 더 설레입니다. 한국과 영국의 수교 140주년을 맞이해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19세기 인상파 미술까지 서양미술의 회화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표작품 52점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벽에 전시된 것입니다.

라파엘로 산치오 ‘가바의 성모’, 1510~1511년, 영국 내셔널 갤러리.

이탈리아에서 자주 보았던 보티첼리와 카라밧조, 티치아노와 라파엘로까지 르네상스와 바로크 거장의 작품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와 반가움으로 입구에 들어섭니다. 보티첼리 그림이 장식된 르네상스관, 드라마틱한 빛의 예술을 창조한 카라밧조의 바로크관을 지나 19세기 인상파 작품이 전시된 장소에 도착하기 전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을 주제로 한 18세기 영국미술의 시대에는 그랜드투어와 관련된 카날렛토의 그림들이 눈에 띕니다. 이탈리아의 풍경을 담은 카날렛토의 베두타(Veduta) 그림들은 그랜드 투어를 마친 영국 여행자들의 손에 들렸던 기념품이었습니다. 르네상스관은 여전히 종교 주제를 다룬 성모자상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라 불리는 라파엘로의 그림과 베네치아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이 나란히 전시되었습니다.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가 담긴 르네상스 미술은 화가의 관점에 따라 개성이 살아있습니다.

라파엘로 작품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은 영국의 가바(Garvagh) 남작이 소유해 ‘가바의 성모’라고도 불립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의 알도브란디니(Aldobrandini) 가문 소유였기에 ‘알도브란디니의 성모’라고 합니다.

라파엘로는 다정하고 따스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진 성모자상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는데, 1510년에 바티칸의 ‘아테네 학당’ 벽화를 그리면서 틈틈이 제작한 성모자상 중 하나입니다. 파란 튜닉에 분홍 원피스를 입은 마리아는 무릎에 아기 예수를 앉히고 어린 세례자 요한을 부드럽게 바라봅니다. 라파엘로는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답게 삼각형 구도의 화면 질서를 만든 후 세 인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켰습니다. 그들은 실내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습니다. 원래 배경은 들판이었지만 복원과정에서 라파엘로가 풍경과 인물들 사이에 아치를 나중에 그린 것이 확인되었죠. 건물 기둥 덕분에 마리아의 얼굴 윤곽선이 더욱 밝게 강조되는 효과를 얻습니다.

미켈란젤로 ‘톤도 도니’ 1506년, 우피치 미술관.

마리아의 자세는 좀 복잡합니다. 몸은 오른쪽으로 앉아 아기 예수를 향하고 머리는 왼쪽으로 돌려 세례자 요한을 바라봅니다. 오른손에 잡은 파란 튜닉으로 누드인 아들을 감싸고 왼손은 세례자 요한의 몸을 잡아당기죠. 라파엘로는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교회의 품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습작하여 이 자세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그가 주시하는 것은 미켈란젤로입니다. 1506년 라파엘로가 피렌체에 있을 때 미켈란젤로의 ‘톤도 도니’의 마리아 자세가 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비록 친하지 않았지만,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미켈란젤로 천정화를 본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를 예술적으로 존경합니다. 아기 예수의 자세 역시 ‘톤도 도니’의 예수와 닮았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가진 생동감을 역동적인 자세로 강조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갈대로 만든 십자가를 들고 예수에게 빨간 카네이션을 건넵니다. 카네이션은 르네상스 미술에서 예수의 수난과 사랑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자주 그려졌습니다. 라파엘로의 이 아름다운 성모자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영감도 담겨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73년 피렌체에서 제작한 ‘카네이션의 성모’는 아치창의 배경 앞에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카네이션을 건네는 장면입니다. 라파엘로는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공방에도 자주 찾아가 예술에 대한 교류를 나누었습니다. 카네이션의 등장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꽃을 관찰하고 식물의 아름다움을 인간 창조의 기적처럼 여겨 인간만큼 ‘자연’에게도 눈을 돌렸던 르네상스 시대의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카네이션의 성모’, 1473년, 뮌헨 알테피나코텍 미술관.

카네이션의 어원은 그리스어 ‘신의 꽃’의 의미에서 나온 라틴어 Dianthus에서 파생됩니다. 그래서 신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기독교 미술에서는 마리아가 죽은 아들을 안고 흘린 눈물이 예수의 몸에 닿아 핀 꽃이라는 전설로도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붉은 카네이션은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정중하게 바친 붉은 카네이션을 아기 예수가 받아 이제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이 사랑의 약속의 결정체를 마리아를 상징하는 교회라 합니다. 이 둘 사이에 마리아가 카네이션과 흡사한 이미지로 그것을 암시합니다.

16세기 북유럽에서는 신혼 첫날 밤 신부가 카네이션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신과 인간의 사랑은 부부의 사랑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가족과 스승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라파엘로의 아름다운 성모자상 ‘가바의 성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예술철학을 담았지만 부드러운 붓질과 파스텔톤의 맑은 색채는 라파엘로가 가진 온화한 성격을 닮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라파엘로처럼, 그림 속 세 인물은 서로 눈과 손을 마주하며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개성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 주는 인간사회의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줍니다.

르네상스 미술은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을 그리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세계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만나는 라파엘로의 그림 앞에서 고전 작가들의 생각에 잠겨 봅니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3년 6월2일~10월9일까지 열립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