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작업 탄생시키고 막기도 한 기술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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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백남준의 작업 탄생시키고 막기도 한 기술발전 TV 영상기술 해킹 그리고 비디오 편집과 재생…TV 해커 백남준㊦

기사입력2024-03-20 10:39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자주 소개되는 백남준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작년 12월에 개봉된 백남준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이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일 정도로 이 작품은 백남준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아마도 이 작품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제목에서 ‘달’의 서정성과 TV라는 현대기술, 그리고 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전자신호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를 떠도는 전자신호가 반사체인 달을 화면 삼아 이미지로 드러난다는 제목이 이 얼마나 시적인가.

이 작품은 둥근 보름달부터 초승달의 형태로 변화는 달의 모양을 여러 대의 TV에 각각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65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후 1976년 르네 블록 갤러리, 1977년 퐁피두센터,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등 다수의 전시에서 선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1960~70년대 작업과 1990년대 작업이 겉으론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전자가 TV 영상기술 해킹이라면, 후자는 비디오아트이기 때문이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세부, 1976년 르네 블록 갤러리.

사실 1965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열린 백남준의 개인전 ‘전자 예술’에서 선보인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최초 작업은 ‘전자 달’ 정도로 명명되었을 뿐 특정한 제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나 형태적 면모를 봤을 때, 이 작업이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출발점이라고 대부분 동의한다.

‘전자 예술’ 도록에는 “전자 달, 목걸이-TV의 전주곡?”이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달’과 ‘TV’를 연결하는 중요한 문구라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평면 TV가 나오기 이전의 TV 화면은 완만하게 튀어나와 있고 뒤로 깔때기 모양을 지닌 CRT(일명 브라운관)였으며, CRT에는 전자빔을 조정해 이미지를 화면에 띄우는 편향 장치가 달려 있었다. 백남준은 편향 장치를 옮기면서 전자빔이 CRT 화면 뒤쪽에 튜브처럼 생긴 가느다란 부분, 즉 목(neck)에 걸리게 해 화면에 달 모양의 둥근 형태가 생기게 했다.

TV의 목에 걸리게 해 달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전자 달’, ‘목걸이-TV’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는 편향 장치를 방향을 뒤틀면서 전자빔 일부를 가림으로써 둥근 형태의 일부를 검게 해 반달, 초승달과 같은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이것이 그가 TV 영상기술을 해킹해 만들어낸 작업이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개별 작품. <출처=아트 바젤>

하지만 1990년대부터는 ‘달의 형상’을 비디오로 제작해 사용함으로써 해킹이 아닌 편집 및 재생으로 작업의 속성 자체가 변한다. 왜일까? 그가 유명해지면서 번거로운 작업이 싫어진 걸까?

짐작건대, 흑백 TV가 점차 컬러 TV로 대체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컬러 TV로 변하면서 편향 장치가 더욱 중요해졌고, 그것의 위치를 변경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하게 된다. 조작이 힘들어진 것이다. 아마도 이 때문에 더는 TV 같은 영상매체의 물리적 조작보다 화면 이미지를 분해하고 합성해 재생하는 방향으로 나간 것으로 보인다. 기술 발전이 백남준의 작업을 탄생시켰으며, 더불어 백남준의 작업을 막기도 하고, 다른 길을 열어주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