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사고, 승용차사도 내수는 살아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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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에어컨사고, 승용차사도 내수는 살아나지 않는다 구조화된 내수 침체의 원인은 가계와 기업소득의 불균형이다

기사입력2016-07-01 19:43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오늘부터 9월 30일까지 3개월간 40인치 이하 TV, 에어컨, 일반·김치 냉장고, 공기청정기 등 5개 품목 중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제품을 구매할 경우 20만원 한도 내에서 구매금액의 10%를 돌려받을 수 있다. 지난 28일 정부가 발표한 '2016년 하반기 경제정책운영방향'에 따른 것이다. 이들 제품이 필요했던 소비자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다.

더 큰 선물이 대기하고 있다. 노후된 경유차를 폐차하고 승용차를 새로 구입할 경우 6개월간 개별소비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감면 등을 통해 최대 143만원의 감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이 역시 ‘하반기 경제정책운영방향’ 덕분이다.

정부는 오는 9월 29일부터 10월 31일까지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개최할 예정이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내외국인 소비촉진을 제고하는 한편 범국민 쇼핑관광 축제로 만든다고 한다. ‘하반기 경제정책운영방향’에 따른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이 기간 중에 나름의 선물을 챙길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 김기준 의원이 지난 4월 한국은행의 ‘2015년 국민계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영업잉여는 274조5000억원으로 2007년(185조)에 비해 48%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근로자의 급여와 자영업자의 영업잉여를 합한 가계소득은 41%(508조원→718조원) 늘었다. 기업의 영업잉여 증가율은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그것보다 7%포인트 높았다. 같은 기간 기업이 낸 법인세는 36조원에서 44조원으로 늘어 21% 증가한 반면 근로자와 자영업자가 부담하는 소득세는 51%(40조원→61조원) 증가했다.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세부담 증가율은 기업의 그것보다 무려 30%포인트 이상 높았다.

근로자와 자영업자는 기업과 비교하여 돈은 덜 벌고, 세금은 더 많이 냈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정부가 그토록 살리고자 하지만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민생경제, 장기적인 내수 침체의 원인을 말해준다.

가격이 제법 나가는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전자제품을 사고자 했지만 다소 부담이었던 사람들에게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채운영방향’은 반가울 수 있다. 또 한 평생 살면서 몇 번 되지 않을 정도의 큰 결단이 필요한 승용차의 경우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한 걸음만 더 생각해보면 이건 아니다.

지난 30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223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3월 말보다 11.4% 늘었다. 같은 기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45.6%로 9.6%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4.1%에 불과하다.

처분가능소득이란 가계가 벌어들인 소득에서 세금, 연금 등을 빼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을 말한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45.6%라는 얘기는 가계가 처분가능소득 전부를 털어 빚을 갚아도 45.6%의 빚은 여전히 남는다는 뜻이다. 우리네 가계의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의 내수 진작 대책은 마른 수건 쥐어짜듯이 에어컨사고, 차사라는 것이다. 그마저 형편이 안되면 쇼핑축제를 참여해 어려운 민생경제를 살리자고 한다.

오죽하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매번 연례행사 하듯 하기에, 더 이상은 봐주기 어렵다. 냉장고 사고 차사고 그것도 부족하면 아파트까지, 가계의 희생만으로는 구조화된 내수 부진을 극복할 수 없다.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이 균형을 이룰 때, 그래서 서민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도록 할 때만 내수 시장은 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