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수급 차단 못하는 ‘시간선택제’ 폐지해야 한다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부정수급 차단 못하는 ‘시간선택제’ 폐지해야 한다 우리 노동시장 현실 외면…‘또 하나의 4대강’ 우려

기사입력2016-10-20 11:2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정부는 ‘시간선택제 전환 지원사업’(이하 시간선택제 사업)의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82억원(17.8%) 증가한 545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시간선택제 사업은 시간선택제로 신규 근로자를 고용하거나 전일제 근로자를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전환한 경우 사업주에게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주에게 인건비를 지원하는 이유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저하가 불가피한데 이를 정부가 보전해 줌으로써 시간선택제로 전환한 근로자에 대한 생계비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예산증액을 사유로 내년 지원대상을 2000명까지 확대하고, 시간선택제 전환시 임금지원 단가를 월 2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이른바 혈세를 투입하는 시간선택제 사업의 지원대상 확대 및 지원단가 인상이 설득력을 갖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은 투입 대비 효율성이다. 그런데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발표한 ‘환경노동위원회 예산안 분석’(이하 예산안 분석)을 보면, 시간선택제 사업은 효율성 측면에서 당장 중단해야 한다. 예산정책처의 결론은 ‘사업주의 부정수급 우려가 있으므로 사업을 확대하기 이전에 사업추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완곡한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시간선택제로 전환한 근로자의 단축된 근로시간은 1인당 1주 평균 12.1시간이다. 시간선택제 전환 이후 근로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임금이 낮아져야 함에도 임금은 동일하거나 인상된 비중이 더 높았다. 시간선택제로 전환된 근로자 478명 중 전환 이전과 비교해 임금이 동일한 사람은 268명(56%), 더 높아진 사람이 51명(11%)인 반면 감소한 사람은 159명(33%)에 불과했다.

근로시간 단축에도 임금이 동일하거나 높아졌다는 것은 실제 근로시간을 단축하지 않았음에도 ‘근로시간을 단축했다’고 사업주가 허위보고를 하고, 지원금을 수령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론이다. 그것도 지원금 수령자 478명 중 319명(67%)이 부정수급 의혹 대상자다. 고용노동부가 여기에 대해 합당한 소명을 하지 않는다면, 시간선택제 사업은 폐지하는 것이 혈세 낭비를 막는 최상의 선택이다.

부정수급 의혹은 올해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부 드러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삼화 의원(국민의당)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금 부정수급 적발내역’을 보면,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올해 8월말 현재 모두 13억3000만여원에 달하는 239건의 부정수급이 있었다. 연도별 적발 건수 및 부정수급액은 2013년 5건(2700만원), 2014년 16건(3056만원), 2015년 137건(6억2199만원), 2016년 8월말까지 81건(6억5000만원)이다. 2015년 적발건수와 부정수급액이 급증, 전년 대비 21배 폭증했으며 2016년 8월 현재 부정수급액은 전년 금액을 넘어섰다.

부정수급액이 급증하기 시작한 2014년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 취임이후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한 ‘고용률 70% 로드맵’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고용노동부는 대통령의 애정과 관심 속에 경력단절여성을 노동시장으로 유입함으로써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선택제 사업을 확대·강화했다. 2012년 67억6000만원 이었던 예산은 박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3년 105억6000만원, 이어 2014년에는 214억4000만원, 지난해는 407억5000만원으로 해마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예산급증에도 불구하고 2013년 예산집행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6.6%였고, 2014년도에는 75.4%에 머물렀다. 예산집행이 부진하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오자, 고용노동부는 2015년에는 무려 99.8%에 달하는 예산집행률 실적을 보였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지원조건에만 해당하면 형식적인 서류심사를 통해 ‘퍼주기식’ 지원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라며 “그 결과 2015년도 부정수급 적발건수가 137건으로 치솟고 부정수급액이 약 6억3000만원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적발된 대부분의 부정수급은 근로자에게 전일제 근무를 시키면서도 시간선택제 근무를 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서 지원금을 받는 방식이었다. 예산정책처가 완곡한 표현이지만 시간선택제 사업의 효과성을 따끔하게 지적하면서 제시했던 근거들이 구체적인 사례로 나타났다. 시간선택제 사업 수혜자 중 부정수급 의혹 대상자, 67%의 극히 일부만이 이번 고용노동부의 단속을 통해 적발된 것이다.

시간선택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근로제, 말이 좋아서 그렇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아르바이트로 질 낮은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일정하게 갖춰진 유럽의 경우 자발적 선택에 의해서 단시간을 근로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 우리사회 단시간 근로자는 전일제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또는 부족한 생계비를 다소나마 메우기 위해 할 수 없이 단시간 근로를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시간 근로제를 우리 노동시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실제 그렇다는 것은 시간선택제 사업 예산집행 실적과 일부 드러난 부정수급 유형에서 확인됐다.

노사관계를 어느정도 안다고 자부하는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또 하나의 4대강’이라고 폄하한다. 특히 공무원과 공공부문에 취업한 단시간 근로자들은 박 대통령 퇴임 이후 계륵으로 전락할 것이란 지적을 한다. 부서장 입장에선 구조조정을 할 수 없고, 단시간 근로자는 이런 저런 눈치로 조직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정부가 시간선택제 사업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부정수급 여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업은 폐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