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국민이 듣고싶은 얘기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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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무엇을, 어떻게” 국민이 듣고싶은 얘기 안했다 또 불통 “하고 싶은 말만 하고”…민심 떠난 권력 움켜쥐려 해선 안된다

기사입력2016-11-04 19:36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또 다시 불통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정작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지한 것은 분명 아니고 뻔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전국에 생중계된 담화문을 통해 ‘자신이 행한 일을 가감없이 얘기하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맞서 ‘오늘’ 말고 ‘기회가 될 때’ 밝히겠다고 선을 그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시선을 멈춰 세웠고 귀를 기울였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온갖 방송장비를 동원하고, 공중전파까지 낭비하면서 한 얘기가 고작 ‘외롭게 지내왔다’, ‘홀로 살면서’ 등 신파극만을 연출했다.

우리 국민중 누구도 ‘외로운’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생존하고 있는 혈육들과 점심, 저녁도 즐기면서 조카의 재롱에 겨워 함박 웃음꽃을 짓는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싶다. 그렇게 하지 못한 책임은 본인 스스로 고뇌해야 할 문제다. 한국사회란 정글에서 더 ‘외롭고’, ‘혼자’인 것을 자책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 앞에서 국정최고책임자가 신세한탄을 하면서 할 소리가 아니란 말이다. ‘외롭고’, ‘혼자’인 대다수 국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해 달라고 정치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랬더니 ‘내가 더 힘드니, 내 심정을 알아달라는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수사 수용 입장을 밝히는 대국민 담화를 했다.<사진=뉴시스>

근대사회에 보편화된 합리적인 이성과 상식에 익숙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어떻게 만든 나라이고, 여기까지 오기까지 길거리 곳곳에 뿌린 피와 산업현장에서 뒤범벅이 됐던 기름과 땀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어제 오늘 벌어진 전근대적인 국기문란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나마 간직했던 긍지와 자존은 땅에 떨어졌고, 그 이상 추락하려 해도 갈 곳이 없을 정도다. ‘최순실이랑 대통령이 뭔일을 했는데’ 하는 아들, 딸의 물음에 맨 정신으로 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4일 담화문에서 국민들이 듣고 싶어했던 말은 아들, 딸에게 상식의 선에서 설명할 수 있는 근거였다. 최순실 건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대통령이 나서 90초 짧은 시간동안 진심이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사과했다. 여기까지 그렇다고 치고, 90초 사과 이후 벌어진 박 대통령 본인이 단행한 인사에 대한 설명 또는 해명을 듣고자 했다.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렸던 새누리당 다수의 의견도 그렇고 거국중립내각, 야당과의 협치는 정국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수습책이었다. 정국을 일시에 혼란으로 몰아넣은 대통령이 또 다시 ‘불통’으로 국무총리와 장관 임명권을 발동한 사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대통령은 여전히 여기에 답을 하지 않았고, 정국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새누리당 내 일부 친박의원들과 나머지 비박간의 갈등, 더 크게는 여야간의 갈등,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국민들을 어찌 하겠다는 것인지…, 대통령은 수습책은커녕 불난 집에 불을 붙였다. 내 할말 다했으니 알아서 갈 길 가라는 메시지에는 국가의 안녕과 질서엔 관심도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검찰의 조사를 받겠다고 한다. 특검까지도 수용하겠다고 한다. 대통령 자신도 수사대상이고, 수사중인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에 걸림돌이 될 염려가 있어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범죄혐의가 있으면 당연히 검찰의 조사를 받는 것이고, 국회의 결정에 따라 특검이 시작되면 그 또한 법에 따라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범죄혐의가 있는데, 조사를 받지 말라는 법은 대한민국 어느 법전에도 없다. 대통령의 조사 여부는 국민들의 관심 밖이다. 그나마 관심을 가졌던 이들의 목소리는 이른바 ‘통치권’ 운운하는 관변학자들의 곡학아세가 여전히 유효한지 여부를 보려했던 가십정도 수준이다.

4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안종범,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등 청와대 관계자들과 이재용 등 재벌대기업 총수 7인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전 기자회견을 했다.<사진=뉴시스>

박 대통령은 이제 청와대에 머물 그 어떠한 명분도 자격도 없다. 4일 발표한 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5%까지 떨어져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했다. 상식에 비춰보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놀라운 것은 박 대통령에 대한 20대와 30대의 지지율 1%다. 그리고 40대와 50대는 3%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이미 국민들 마음 속에서 지워졌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개인 ‘박근혜’는 한국 현대사에서 그 누구보다 아프고 쓰린 상처를 안고 있다. 자식이란 이유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행했던 독재의 유산과 과오가 개인 박근혜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짐’이란 점도 없지 않다. 또한 그 성격이 개발독재라 해도 오늘날의 우리 경제규모가 이만큼 온 것에 대해 ‘칭송’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에서 부모의 ‘후광’도 누렸다. 자로 재고 무게를 달 수 없지만 ‘짐’과 ‘후광’ 차이는 크지 않았고, 그래서 개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다. 여기까지가 끝이여야 한다. 이미 민심을 떠란 권력을 움켜쥐고 그것을 사용하려고 해선 안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김재규가 쏜 총알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국민들의 분노였고, 그것을 알지 못했거나 외면했던 박 전 대통령의 오만이었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더 이상 가면 박 대통령이 원하는 ‘기회가 될 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