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재계·보수언론 ‘떼’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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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상법개정…재계·보수언론 ‘떼’ 쓰지 마라 재벌총수 ‘독단경영’ ‘범죄행위’ 막자는 것…반대할 명분 없어

기사입력2017-02-13 18:3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임시국회에서 현재 논의중인 상법개정안을 놓고 재계와 보수언론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12일 야당이 추진하는 상법개정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해외투기자본만 배 불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8일과 9일 국회를 방문해 여당과 야당 모두에 전달한 자료를 보면, 개정안대로 입법될 경우 ▲시장경제의 기본원칙 훼손 우려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될 우려 ▲해외투기자본에 의해 악용될 소지 ▲모험투자와 혁신 등 기업가정신 발휘에 악영향 등을 이유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상법개정 추진에 재계 공포…기업사냥꾼 놀이터되나’, ‘최준선 교수 “상법개정안 국회 통과땐 적군에게 심장 내주는격’, ‘상법개정안만 기다리는 투기세력, 韓 쉬운 먹잇감’, ‘기업 대주주 견제하는 법안 밀어붙이는 야당…재계 “이사회, 투기자본 놀이터 될 것”’ ‘“2월 한 달, 재벌 개혁 적기” 떨고 있는 기업들…재벌개혁法 일부는 처리 탄력’…경제지를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재계의 반대주장을 받아 전하거나, 사설 또는 외부필진의 입을 빌어 상법개정안 통과에 따른 파장을 왜곡 또는 과장하는 방법으로 입법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꿔 생각하면, 2월 임시국회 내 상법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개정안은 ‘재벌개혁입법’ 또는 ‘경제민주화법’이라고 다소 과대평가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재벌총수의 독단적 경영과 전횡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53개 대기업이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했는데, 이사회 의결을 제대로 거친 곳은 단 2개뿐이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상법개정안에 반대논거로 ‘주주의 이사선임권 제한’, ‘대주주에 대한 역차별’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소액주주의 이익을 배신하고, 기업의 돈을 사적으로 횡령·배임한 재벌총수들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번 상법개정안에 포함된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와 ‘집중투표제’가 있었다면, 이사회의 감시·견제기능은 작동했을 것이고, ‘최순실·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도, 일말의 자성이나 성찰없이 앵무새처럼 반대만으로 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줄 만큼 국내·외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 이들의 주장은 앞으로도 계속 재벌총수와 그 일가들의 배만 불리겠다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궤변이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또한 마찬가지다. 재벌총수들이 자회사에 지배력을 통해 ‘일감몰아주기’ 등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부를 축적했다. 또 일가들에 대한 경영권 세습을 위해 악용하는 사례는 이미 ‘표준규범’이 된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 개정안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의 50% 이상 보유한 경우에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재계와 보수언론의 반대주장에 따르면 자회사에 대해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경우에도 총수일가를 제외한 나머지 모회사 주주들은 자회사의 불법을 감시할 아무런 제재수단을 가질 수 없다. 공정거래법 등 별개법을 통한 규제를 논외로 한다면, 일감몰아주기와 탈법적인 경영권 세습을 상법에서 보장하란 얘기다. 일감몰아주기와 탈법적인 세습방법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는 점에서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반법인 상법을 통해 규율해야만 한다.

기업분할시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불리는 ‘자사주 분할신주 배정’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재계와 보수언론의 반대는 가당치도 않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분할시 자사주를 자회사 지분으로 전환하면서 의결권을 부활시킴으로써 한푼의 돈도 출연하지 않은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편법을 계속 용인하라는 것이다. 이같은 편법은 이들이 입만 열면 떠드는 ‘1주 등가원칙’에도 반한다. 소액주주는 자사주에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총수일가에게만 허용하겠다는 발상은 주식회사 원리에도 반하는 주장이다.

상법개정안에는 근로자대표 또는 우리사주조합이나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사외이사제도가 경영진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하는 본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년 이상 황제경영으로 인해 불거진 폐해들을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를 받지 못할 일도 아니다.

재계와 보수언론이 온갖 허구의 사례를 제시하며 상업개정안에 반대하는 속내는 단 하나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지금같이 총수일가의 곳간에만 곡식을 쌓아놓겠다는 것이다. 경영에 대한 과실은 독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조금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재벌총수일가의 도를 넘은 탐욕에 눈을 감은 대가로 보수언론은 떡고물을 챙기겠다는 것인가?

상법개정안은 상거래에서 통용돼야 할 상식과 순리가 무엇인지 확인하면서, 그 내용을 법안으로 다듬은 것이다. 또 법안의 내용 또한 갑작스런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동안의 토론회·공청회 등을 통해 관련 문제점을 보완한 내용이다. 특히 이번 상법개정안은 지난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제시했던 공약의 내용과 일치한다. 또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 정부가 2013년 9월 입법예고한 내용과 사실상 같다.

이번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예정된 다음달 2일이면 모든 것이 정해진다. 상법개정안 통과를 통해 재벌개혁을 위한 거점을 일부나마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없는 중차대한 시기다. 재벌개혁이란 국민적 여망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또한 각론에서 다소 이견이 있지만, 상법개정안 통과 자체에는 합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와 보수언론의 공세가 더 거세지고 있는 이유이고, 그럴수록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의 보다 강력한 연대가 요구된다.

한번은 실패했다. 지난 2013년 상법개정안 입법예고 종료 직전 전경련 등이 반대의견서를 제출했고, 박대통령 면담과 함께 보수언론이 가세하면서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다시한번 기회는 왔고, 말그대로 천재일우다. 1000만 촛불이 만들어낸 탄핵국면 속에서 재벌총수들이 행한 불법과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결과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그 어느때 보다 뜨겁다. 야당을 포함해 여당 또한 국민적인 요구를 외면하기엔 자신들의 죄가 너무 크다. 독선과 아집으로 재벌총수를 보호해줄 대통령도 없다. 상법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정치권에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