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1%만을 위한 소비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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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현실과 동떨어진 1%만을 위한 소비대책 호텔·콘도업체에 대한 부자감세가 민생대책인가…차라리 가만 있으라!

기사입력2017-02-23 19:4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있는 돈이 주머니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재충전에 필요한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혹여 그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돈이 문제다. 시간이 있어도 돈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방콕’뿐이다. 99명이 가져야 할 부(富)를 1명이 독점한 우리사회에서 방콕에 따른 자괴감과 박탈감은 계층간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결국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재충전의 시간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23일 내수 활성화를 위한 관계장관회의을 열고 ‘내수위축 보완을 위한 소비민생 개선 대책(이하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개선대책의 무게를 더하고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짐작컨대 바닥에 떨어진 소비심리를 회복해야 하고 가계소득도 늘려야 하는 국정과제, 그 자체가 긴급했고 또 절박했기에 권한대행까지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개선대책은 정부가 의도한 그대로 실행된다고 가정해도, 소비증대 효과와 가계소득 증가 중 한 마리의 토끼도 잡을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부터 정부관료의 머릿속에는 ‘1%의 가진 사람’만이 존재할 뿐, 99%에 해당하는 ‘방콕’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다.

개선대책에 따르면 내수활성화를 위해 호텔·콘도업체 객실요금을 현행가 대비 10% 이상 인하하면 올해 한시적으로 해당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건물분)를 최대 30% 줄여준다. 틈만 나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1% 가진 사람’의 세금을 깎아주려는 노력이 눈물겹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호텔·콘도업체를 대상으로 한 재산세 인하가 돈도 시간도 없는 99%의 소비심리 회복·소득증대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지금까지 수십차례 이상 반복했던 정부의 소비촉진대책에 비춰보면 대답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1%에 해당되는 호텔·콘도업체에 재산세를 깎아줘 이용료도 내렸으니, 쓸 돈이 있는 1%는 부담없이 놀러 다니란 것이다. 99%의 상대적 박탈감만 더 자극하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해외로 나가 레저를 즐기는 1%의 소비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크루즈산업을 육성하고, 골프장에 대한 혜택을 강화하기로 한 개선대책 또한 마찬가지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 국내 골프에 장관들이 나서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에 대해 “자비로 골프를 쳐서 경기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던 이들이 우리나라 장관들이다. 이들이 내놓을 수 있는 정책이란 것은 애초부터 99%에 해당하는 서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탁상공론일 수밖에 없다.

실버관광 활성화를 위해 고령자가 국내여행을 하는 경우 할인혜택을 주는 ‘시니어 관광카드제’도 도입한다. 미국과 호주도 각각 50세,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관광시 할인혜택을 주는 시니어 할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 스스로 정책의 타당성, 명분이나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외국사례를 제시하는 옹색함까지 보여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9.6%,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노인자살률이 OECD 평균의 4배인 것도 노인빈곤율과 무관하지 않다. 개선대책에 담겼어야 할 내용은 실버관광 활성화가 아니라 절반에 가까운 노인들의 빈곤한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대책이어야 했다.

또 개선대책에 따르면 청년들의 여행을 장려하기 위해 일반철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내일로’ 이용대상을 현행 만 25세 이하에서 29세 이하로 올해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후반 실업자는 23만6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5000명 늘었다. 2015년의 경우 전년 대비 5000명 감소했지만 지난해 다시 급증한 것이다. 20대 후반 실업률이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기 없기 때문이다. 제조업 특히 중소기업에선 사람이 없어서 난리인데, 대다수의 청년들이 공무원·대기업 등 이른바 ‘신의 직장’에 목을 매고 있다. 학점, 자격증, 해외연수 등 취업을 위한 스펙 준비에도 숨이 찬 이들에게 ‘내일로’를 이용해 ‘머리를 식히라’는 것이 개선대책이다. 정부의 뜻을 받들어 여행을 간 청년들이 취업에 실패했을 때 정부가 대신 고용할 요량이 아니라면 위험하기까지 한 대책이다.

개선대책 대부분이 현실과 괴리된 내용이지만, 그 중 가장 압권은 이른바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추진이다. 일본정부가 추진 중인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해 마련한 대책이다. 매월 1회 금요일을 ‘가족과 함께하는 날’로 지정, 일찍 퇴근한 근로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쇼핑·외식을 통해 헌법에 보장된 인간다운 삶을 누리라는 것이다. 소비도 진작시키고, 일·가정양립도 도모하겠다는 순진한 발상이다.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조기 도입을 위해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을 인증할 때 하나의 평가 요소로 삼는다거나, 노사관계 안정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고민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우리나라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OECD에서 두번째로 많다. 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 OECD 회원국 34개국 평균(1766시간)보다 347시간 많다. 1인당 월 2113시간이란 것은 상대적으로 근로시간이 많지 않은 공무원·공기업·대기업의 근로시간 모두를 합한 평균이다. 주변에 중소기업 또는 소기업에 다니는 지인이 있다면, 그들의 근무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라. 인력난으로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중소제조업 그리고 소기업에 소속된 근로자 대다수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1주 5일 근무하고 있다. 평소에 비해 생산물량이 좀 늘어나는 경우에는 일요일도 반납하고 일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들에게 금요일은 일찍 퇴근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묻는 것이다. 백번을 양보해 가능한 경우에도, 이들이 금요일 일찍 퇴근해 할 수 있는 것은 방콕뿐이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대기업 근로자의 80% 수준까지 보장한다’는 대선공약까지 제시했다. 대통령이 임금을 올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중소기업 근로자가 받는 저임금으론 정부가 의도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효과는 허상이다.

실이 꼬여서 뭉쳐버리면 풀지도 못한다. 개선대책을 보면서 ‘실’ 얘기를 하는 것은 정부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언뜻 들기 때문이다. 괜히 이것 저것 건들여 나중에 정상적인 정책을 펴고자 할 때 이런 저런 발목을 잡을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호텔·콘도업체에 대한 재산세 인하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도 하겠다면 99%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검증된 대책, 이미 국회에 발의됐거나 공청회 등을 통해서 한번은 걸러진 정책을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최저임금 1만원, 전월세 상한제, 공공임대주택 확대, 중소기업 및 영세상인 보호를 위한 입법 등 이런 것들이다. 단 한번만이라도 99%가 겪고 있는 서러움과 고통에 눈을 돌려,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 정책을 제시해 주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