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 성장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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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소득주도 성장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 할 일 모든 구성원이 부담해야 할 ‘고통’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기사입력2017-05-25 19:5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한 ‘일자리 상황판’은 ‘소득주도 성장을 골간으로 한 J(제이)노믹스의 지향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황판에 표시된 지표는 일자리의 양과 질을 나타내는 일자리 지표 14개와 노동시장과 관련된 경제지표 4개 등 모두 18개다. 이들 지표 중 눈에 ’확‘ 들어오는 지표가 ▲비정규직 ▲임금격차 ▲저임금근로자 ▲근로시간이다. 상황판에 담긴 ▲고용률 ▲취업자수 ▲실업률 ▲창업 ▲취업유발계수 등 다른 지표들은 ‘객관적인’ 통계수치지만, 전자의 지표는 ‘주관적인’ 통계치다.

‘비정규직’과 ‘임금격차’ 지표에서 비정규직 남용을 제한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고치겠다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를 볼 수 있다. ‘저임금근로자’ 지표를 통해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근로자의 생존권 보장 등 가계소득을 늘려 소득주도의 성장을 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아울러 ‘근로시간’ 지표에서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 주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결단도 엿볼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정권 초기 그럴듯한 구호와 함께 일자리 정책과 목표를 얘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747공약’(7%성장·4만불소득·세계7위경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산층 70%·고용률70%’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했다. 양자 모두 공약을 지킬 의지 자체가 없었기에, 이제와 공약 이행 여부를 묻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다.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경제공약은 아궁이 불이 직접 전해지는 아랫목에 맞춰져 있었다. 재벌기업의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재벌기업의 탐욕에 맞서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법질서를 세우겠다는 것, 이른바 ‘줄푸세’가 경제정책의 전부였다.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았고, 아랫목은 달아오른 열기를 감당하기 어려워 곳간에 천문학적인 유보금만을 쌓아놓고 있다. 반면 윗목은 1300조원 이상의 가계부채,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심화, 매월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는 청년실업률 그리고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심화, 소득 양극화에 따른 유래없는 내수침체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1%의 기득권과 이익만을 위해 복무했던 이명박·박근혜정권은 1800만 촛불에 의해 단죄됐다. 새 정부가 일자리 상황판을 통해 구체적인 지표로 제시한 소득주도 성장전략은 이명박·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우리가 경험했던 허풍이 아니다.

일자리 상황판을 소개하면서 문 대통령은 “일자리의 경우 한국 고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상위 10대 그룹이 될지 30대 그룹이 될지, 그런 재벌그룹의 일자리 동향을 개별 기업별로 파악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풀어쓰면 재벌기업이 만든 신규 일자리 숫자를 포함 이들 기업이 고용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 비정규직 숫자, 근로시간을 보겠다는 것이다. 과거 극우정권 9년간 유지했던 경제운용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또 문 대통령은 “지금의 청년실업은 구조적인 이유로 청년들의 고통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시장의 일자리 실패를 보완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산업생태계로는 청년실업 등 우리사회 적폐가 해결될 수 없으니, 정부가 직접 나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일부 재벌대기업이 자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침을 밝히는 등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전략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재벌기업들은 여전히 일부 언론 뒤에 숨어서 ‘재벌 줄세우기’, ‘관치(官治)와 다를바 없는 시장 죽이기’,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권개입’ 등의 논리를 동원해 반대여론을 모아가고 있다. 이들 재벌기업의 논리와 저항이 아직은 대국민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새 정부가 일말의 틈을 보인다면 언제든지 저항의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차별을 개선하고, 최저생계비 이상을 보전하고, 근로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과제는 한국사회가 단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다. 없던 길을 만들어야 하기에 때론 넘어질 수도, 방향을 잘 못 잡아서 되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무력화하고자 하는 집단이 기다리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치밀한 전략과 함께 결연한 의지로 돌파하지 않으면 노무현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고, 오늘과 같은 기회는 앞으로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공략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가 붕괴직전까지 이른 가장 큰 원인은 불평등이다. 1%와 99%간의 불평등은 가장 고질병이지만, 99%내에서의 불평등 역시 중증수준을 이미 넘었다.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의 문제를 개선하고, 대·중소기업간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99%내 이해관계를 세밀하게 조정하고 통합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근로자의 가계소득 증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재벌기업의 양보는 필수지만, 중소기업도 한 발 물러설 수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이 고통을 분담해야 할 필요도 있다. 새 정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우리사회 모든 구성원이 부담해야 할 ‘고통’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함께 건설하자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공정한 사회’에 반대하며 그래도 저항하는 집단이 있다면, 일자리 상황판을 설명하면서 문 대통령 스스로 했던 발언에 대해 국민들에게 가부를 물어라. 문 대통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긴 노동시간에 우리가 시달리고 있고, OECD 평균에 비해서도 우리나라 노동자가 연간 400시간가량 더 많이 일한다”고 했다. 또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인데,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을 비교하면 거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