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ㅣ 사설
SK이노베이션 노사합의 新임금모델 될 수 없다
체감물가조차 반영 못하는 ‘가이드라인’…산업현장 혼란만 가중
- 기사입력2017-09-11 17:5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
<“노사교섭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산업계 확대 전망>,
10일과 11일 양일간 대다수 언론이 지면 등을 통해 SK이노베이션 노사간 임금단체협약 합의안을 설명하고, 나름의 평가를 소개하면서 뽑은 기사제목이다. SK이노베이션 노사가 합의한 ‘임금 물가연동제’란 올해 포함 매년 반복되는 임금협상에서 임금인상률을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지수로 정하자는 것이다. 이에따라 SK이노베이션 노사의 올해 임금인상률은 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인 1%로 결정됐다.
SK이노베이션은 SK에너지(정유부문), SK종합화학(석유화학부문), SK루브리컨츠(윤활유부문)를 자회사로 거느린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SK그룹 핵심 계열사중 하나다. 또 2016년기준 종업원 숫자가 6047명, 매출액 규모가 39조5205억원, 영업이익만 3조2286억원에 이르는 대기업이다.
재벌대기업 노사가 ‘새로운’ 방식의 임금협상 기준을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뉴스가치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노사관계 ‘낙후성’ 원인에 대한 노사간의 진단과 처방은 다르지만, ‘상생’의 노사관계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에 노사 모두 인식을 같이한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SK이노베이션의 이번 노사합의에 대해 일부 언론은 ‘새로운 패러다임’, ‘신임금 모델’, ‘SK식 상생’ 등의 표현을 썼다. 반면 나머지 언론은 노사합의안에 대한 평가를 생략한 채, ‘임금인상률=물가상승률’이란 사실관계를 서술해 차별성을 보여줬다. 다소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 모두는 짚어야 하는 ‘사실관계’를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SK, 나아가 경영계의 이해만을 옹호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명목임금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면 실질임금이 줄어 근로자의 가계는 소비를 줄이든가,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빚을 내야 한다. 국가경제의 위기 또는 기업의 파산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노사간 임금협상을 시작하는 출발선이어야만 하는 이유다. 하지만 소비자물가지수는 체감물가와 괴리가 있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고, 정부는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생활물가지수’를 보조지표로 사용한다. 이 때문에 SK이노베이션 노사합의 방식이 다른 산업 또는 기업에 적용돼서는 안되는 몇가지 이유중 하나다. 예를들어 통계청에 따르면 올 7월 생활물가는 전년동월대비 3.1% 올라, 소비자 물가상승률 2.2%와 비교하면 1%p 가까이 차이가 난다.
SK이노베이션 노사의 올해 임금인상률은 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인 1%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번 노사합의는 ‘노사교섭 새로운 패러다임’. ‘신임금 모델’이 돼 산업계로 확산돼서는 안된다.<사진=뉴시스>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해 국부가 늘어나는 만큼 근로자의 임금(가계소득)이 오르지 않는다면, 그 차액은 기업 또는 정부재정으로 귀속된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 GDP 성장률은 2.8%였고, 5인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월평균 실질임금은 339만2000원으로 전년대비 2.8% 증가했다. 지난해엔 실질GDP 증가율과 실질임금 인상률이 동일했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최근 5년(2012~2016년) 평균으로 보면 GDP가 2.82% 늘었지만 실질임금은 2.46% 증가하는데 그쳤다. 또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GDP 성장률은 4.18%였으나 실질임금 증가율은 2.52%에 불과했다. 거칠게 얘기하면 가계로 분배됐어야 할 몫(GDP 성장률과 실질임금 증가율 차액분)이 기업과 정부로 간 것이다. 올해 8월기준 1400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계부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SK이노베이션 노사합의는 ‘노사교섭 새로운 패러다임’. ‘신임금 모델’이 돼 산업계로 확산돼서는 안된다. 특히 ‘SK식 상생’이란 포장으로 ‘노사간 소모전’, ‘밀고 당기기’ 임금협상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돼서는 더더욱 안된다. SK이노베이션 노사합의는 중소기업과 비교해 상대적인 고임금, 높은 수준의 고용안정성, 대기업에 부과된 사회적 책임 등 SK이노베이션만의 특수한 사정이 만들어낸 고민의 결과물일 뿐이다. SK이노베이션과 유사한 경영환경을 가진 기업의 노사가 ‘신임금 모델’을 채택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보편적인 임금협상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은 전년대비 16.4% 인상된 7530원으로 결정됐다. 문재인정부의 성장전략인 ‘소득주도 성장’을 주도할 근로자의 지갑을 채워줌으로써 소비와 생산 증대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성장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함이다.
근로자의 임금은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노사간 협상을 통해,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대표 또는 당사자간 합의를 거쳐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정의와 형평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노사가 합의할 수 있도록 ‘공정한 중재자’의 역할이다. 공정한 중재자라면 개별기업의 경영지표 등을 고려해 해당 기업의 지속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의 ‘중재안’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체감물가조차 반영하지 못하는 1% ‘가이드라인’을 밝혀 노사간 협상의 여지를 없애고, 산업현장을 혼란으로 내모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