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룡을 막아주려 한 구청장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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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대기업 공룡을 막아주려 한 구청장의 진정성 ‘구상금 4억원’ 물게 된 울산 북구청장 구하기에 나선 지역 상인들

기사입력2018-08-22 18:04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다양한 취재현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치열함이다. 특히 생존권과 직결되는 경우 그 치열함은 절박함으로 변한다. 절박함이 극에 닿으면 갈등으로, 여기에 이권이 개입하면 추악함으로 진화한다.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신선한 기사가 들려온다. 지역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입점을 막았다는 이유로 전직 구청장이 4억원의 구상금을 물게 됐다. 행정수행과정에서 기업과 자치단체 간에 이같은 일은 흔히 일어나며, 상황에 따라서는 송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법원이 누구 손을 들어주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지만, 사업은 박차를 가해 추진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민원을 잠재우기 위한 기업과 자치단체간 일종의 요식행위로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 기사도 여기까지만 두고 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번 건은 달랐다. 그 구청장을 돕기 위해 지역 노동자와 상인단체가 나선 것이다. 이들의 사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울산 북구청장이었던 윤종오 구청장은 코스트코 울산점의 건축허가 신청을 세차례 반려했다. 대형할인마트가 들어설 경우 중소상인과 지역상권이 황폐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보호할 수 있는 제도와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허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울산시 행심위의 재결에 따라 건축을 마무리 하고 다음해 운영까지 진행됐지만, 윤 전 구청장은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 협의로 기소돼 결국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이에 울산의 8개 상인단체는 윤 전 구청장의 구상금 청산을 위한 대책위를 만들어, 구상금 면제를 정부에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나섰다. 상인단체가 윤 전 구청자의 손을 잡은 이유는 명확하다.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정부가 추진해 온 규제개혁 바람을 타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 대도시에 각종 대규모 유통업점이 들어서며 몸살을 앓자, 갈등의 대척점을 이룬 것은 기업과 자치단체가 아닌 시민과 자치단체였다. 그 갈등에서 최종 승자는 대부분 기업이었으며, 가장 큰 피해는 시민이었다.

한 지인은 최근 가구 판매전문 외국기업이 경기도 한 대도시에서 기공식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대형매장 주변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 지인의 걱정은 한가지다. 피해가 뻔한 주변 소상인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치단체장은 기공식에 와 축하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울산시 북구의 사례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들어선 대형마트는 골목시장 황폐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상인 대부분은 이들 입점을 반기지 않는다. 소상인 입장에서는 생존권이,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치단체가 취해야 할 입장은 명료하다. 민원에 떠밀린 요식행위가 아닌, 문제해결을 위한 진중한 발걸음이어야 한다. 분명 무거운 발걸음이겠지만, 지방정부는 상인·노동자 더 나아가 시민 모두가 부빌 수 있는 언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