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중심 베이커리형 ‘어묵’ 매장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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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소비자 중심 베이커리형 ‘어묵’ 매장이 떴다 벤치마킹으로 혁신이룬 부산 삼진어묵㈜ 박종수·박용준 父子

기사입력2016-02-13 00:00

이가영 기자 (young@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3대째 대를 잇고 있는 삼진어묵 박종수(왼쪽, 대표)·박용준(실장) 父子<사진=삼진어묵>

“언론에서 성공사례만 조명하다 보니 저희 회사가 단기간에 급성장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절대 아닙니다. 많이 좌절하고 실패하고 이제 겨우 성과가 나는 중입니다”

부산에서 3대째 어묵을 만들어 온 삼진어묵(주)의 박용준 실장은 그간의 과정을 털어놓으며,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고 했다. 대박을 꿈꾸는 대신 눈앞에 보이는 부족한 것부터 조금씩 바꾸어 나가다 보면 기업은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실패 끝에 얻었다…‘한방’ 아닌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삼진어묵은 1953년 부산의 영도 봉래시장에서 시작해, 3대에 걸쳐 60년이 넘도록 어묵을 만들어왔다. 2014년 국내 최초로 베이커리형 어묵매장 문을 열었고, 어묵크로켓(어육 반죽속에 감자, 카레, 치즈 등의 속재료를 넣어 튀겨낸 음식)을 비롯해 김말이, 핫도그어묵, 땡초어묵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출시했다. 전통 재래시장을 오고가며 길거리에서 먹을 수 있는 ‘어묵’의 개념을 고급간식의 이미지로 바꾼 것이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제품 차별화에 성공하면서 매출도 약 10배 정도 급증했다. 이와 함께 어묵역사관과 어묵제조체험교실도 운영, 부산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이를 인정받아 지난해 해양수산부 ‘신수산 지식인 대상’도 받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모든 것을 접고 귀국한 박 실장은 ‘겁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호된 신고식을 치른다.

“쫄딱 망했습니다. 시장을 잘못 읽은 거죠.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저 역시도 어묵이 제일 잘 팔리는 곳을 재래시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기존의 모든 거래처도 재래시장이었죠. 시장에는 도매상들이 많은데, 그곳에서 고급화를 하면 누가 어묵을 사겠습니까? 6개월 운영하고 접었습니다”

또 공장을 이전하며 빚이 늘어나 영도 본점의 공장터를 없애고 원룸을 지으려고 하던 부친 박종수 대표를 말린 것은 박 실장이었다. 130평이 넘는 공장부지에 매장을 열겠다고 하니 주위의 반대도 엄청 많았다.

“제품에 독특함 또는 차별성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저희 회사는 스토리, 콘텐츠 그리고 상품 등 하나부터 열까지 이 부분에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숱한 고비를 넘기고, 박 실장은 어묵을 재래시장뿐만이 아니라 로드샵이나 백화점 등에서 판매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그러던 중 눈에 띈 게 ‘빵집’이었다.

부산시 영도 삼진어묵베이커리에서 고객들이 어묵제품을 고르고 있다.

“빵도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제품을 만들고, 어묵도 어육살로 반죽을 해서 제품을 만들잖아요. 그 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너무 달랐습니다. 제과·제빵의 경우 대중화되고 산업화돼 있는데 어묵은 영세하잖아요. 재료나 만드는 방식은 비슷한데 시장과 판매방식은 ‘왜 이렇게 다를까’ 고민했죠”

박 실장은 빵집이 어떻게 서비스 관리를 하고, 판매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전국의 유명 빵집과 프랜차이즈 회사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소비자 중심’이다. 빵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어묵의 경우 소비자는 뒷전이었다. 자체 브랜드나 디자인 없이 포장회사에서 여러 회사의 제품을 무작위로 포장하기 때문에 맛있는 제품을 먹어도 소비자는 어떤 회사의 제품인지 알 수 없었다. 또 얼마의 가격을 부르면 어림잡아 대충 담아주곤 해 구매할 때마다 변하는 양도 소비자들의 불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박 실장은 이를 바꾸기 위해 베이커리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가격표도 제품별로 하나하나 붙이고, 생산 과정까지 모두 공개했다. 처음으로 POS시스템(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도 도입했다. 소비자가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판매방식이나 진열방식 등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면서 기존의 ‘어묵’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서울까지 입소문이 퍼졌다.

이렇다 할 마케팅 전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의 경우 공식계정이 있지만 광고를 하거나 무리해서 자료를 올리지도 않았다. 박 실장은 “제품을 먹어보고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SNS에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게 광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 중심’의 경영과 판매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 “변화와 동기부여 그리고 비전”

얼마 전 삼진어묵은 8명을 공채하는데 1283명이 지원, 160대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공채경쟁률에 버금간다. 이에 대해 박 실장은 “솔직하게 말하면 잘 모르겠다. 부산에 그만큼 주목받는 중소기업이 없다는 뜻 아닐까 한다”고 했다.

부산시 영도 삼진어묵베이커리에서 점원이 계산을 하고 있다.

박 실장이 처음 회사 일을 맡기 시작한 4년 전만 해도 회사 직원의 평균 연령은 50대였다. 단순 제조공장이었던 터라 젊은 층은 찾기 어려웠고, 20년 이상 장기 근속자가 많았다. 숙련된 기술노동자가 대부분이어서 품질은 보장됐지만, 시장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활력을 불어넣는데는 부족했기 때문에 젊은 인재를 필요로 했다.

“어머니가 해썹(HACCP)교육을 받으러 가셔서 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 일 해볼 생각 없느냐’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거절했다는 겁니다. 이유를 들어보면 돈보다는 회사 비전이나 복지가 중요한데 어묵공장에서는 그걸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박 실장은 청년층이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작은 것부터 바꿔나갔다. 우선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직급체계와 교육시스템을 개선했다. 한 달에 한번 회사 미래 등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열었다. 동아리 활동도 지원했다. 젊은 세대와 기존 세대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직적이었던 기업문화도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큰 변화보다 작고 사소한 것, 눈앞에 있는 것을 조금 더 좋게 바꾸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는 오래된 회사였고 예전 방식이 그대로 있어 처음에 변화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리스크가 조금 있더라도 현 상태를 유지하기보단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게 중소기업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진어묵은 최근 서울 여의도와 경기도 분당 등에 매장을 열어 12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박 실장은 “20개의 직영점만 운영할 생각”이며 “기술전수방을 만들어 삼진의 어묵기술을 전수, ‘넥스트’ 브랜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