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없는 청춘들의 원한과 분노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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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빽’없는 청춘들의 원한과 분노 어찌할 것인가 공공기관 대수술 주문한다…‘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롭게’

기사입력2017-09-15 11:25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행복한나라 즐거운 상상과 추억이 가득한 곳’이고 ‘당당한 인재를 기다립니다’라는 글귀가 강원랜드 홈페이지 채용공고란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또 강원랜드 홈페이지는 초기화면에서 ‘부패·공익·부정청탁 신고센터’도 운영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수많은 젊은 구직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채용공고란을 들락거리며, 채용공고가 나기를 그리고 합격자발표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2013년 신입사원 채용인원의 95%를 ‘빽’의 청탁으로 채워 넣은 기업이란다. 홈페이지에 빼곡하게 명시한 인재채용 절차와 요건 등의 채용정보는 사기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규모는 경악할 수준이다. 카지노, 콘도 등 수많은 관련 사업체를 거느린 규모에 비해 채용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강원랜드는 국민의 혈세를 들여서 만든 공기업이다. 채용인원의 95%를 권력자, 지역유지의 청탁에 따라 선발했다는 것은 국가재산을 편취해 나눠가진 범죄와 하등 다르지 않다. 심정적으로는 강원랜드를 몇 달 아닌 몇 년간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청탁으로 뽑힌 직원 모두를 내보내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공기업 채용비리는 비단 강원랜드 문제만도 아니다. 지난 5일 발표된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53곳의 공공기관 가운데 39곳에서 100여건의 채용비리가 밝혀졌다. 박근혜정권하에서 일어난 일이고 청탁자 중에는 염동열·이정현·권성동 의원 등 구여권의 핵심인사들이 두루 포진돼 있다. 공기업, 공공기관이 권력자들의 논공행상을 위한 잔칫상으로 전락했다는 소문은 괴담이 아니었다. 이런 작태를 벌리는 중에도 이들은 청년실업수당을 포퓰리즘이라고 막아섰다. ‘눈높이를 낮추라’며 청년실업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것도 이들이다. 최소한 속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스스로 정치권력을 내려놓는 게 맞다.

문재인정부에 당부한다. 이번 감사결과는 믿고 싶지 않은 소문이 진실임을 확인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공기관장을 보은 인사로 채우고, 정치권 실세들은 그 기관장에게 인사청탁의 전횡을 일삼았다. 부러움과 조롱의 대상이 된 ‘신의 직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연간 수천억원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평균 연봉 7000만원이라는 공기업·공공기관을 수술하지 않으면 기관이 부실해지고, 결국 국가와 국민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신의 직장’을 ‘노동자의 직장’으로, ‘낙하산·철밥통의 쉼터’를 ‘노력하고 준비된 청년들의 일터’로 바꾸는 대수술을 주문한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구보다도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청년 구직자들, 그들에게 머리 숙여야 한다. 비록 전 정권의 일이라지만, 감사원·경찰·검찰 등 감시시스템이 조금이라도 작동했다면, 이같은 거대한 비리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총체적인 무능이고 부패였던 셈이다. 정권이 고개를 숙인다고,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빽’없는 청춘들의 원한과 분노 모두를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정권의 새로운 다짐으로 읽힐 수도 있다.

청년실업은 날로 악화의 길을 걷고 있다. 8월기준 청년실업률이 9.4%로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고용절벽을 맞이한 청년들에게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대규모 채용비리 소식은, 시쳇말로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리는 격’이다. ‘헬조선’은 부패한 정권의 파국적 종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진행형이다. 여전히 기업은 값싼 노동력 확보에 혈안이 돼 있고, 하루가 멀다않고 권력자들이 낀 채용비리가 터져 나온다.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도 불공정했으며, 결과 역시 정의와는 거리가 먼 ‘갑들만의 잔치’였다. ‘빽’없는 서민의 자식들은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를 치장하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강원랜드를 포함 박근혜정권하에서 공기업·공공기관 채용과정이 그랬다는 말이다.

문재인대통령은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를 내세워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강원랜드 채용비리를 목도한 지금 청년들에게 당장은 어떤 위로도, 희망도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없다. 그래서 문재인대통령에게 촉구한다. 공기업과 공공기관 대수술을 통해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