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대출을 옥죈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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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서민대출을 옥죈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가 은행 문턱 높이면 풍선효과…대책없는 대출규제 카드 의구심 들어

기사입력2017-09-28 10:22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대학교육연구소 안호덕 객원연구원

황금연휴를 앞둔 대목이라지만 시장은 썰렁하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언제 쉬고 언제 일할지를 가늠하는 상인들의 얼굴은 어둡다. 작년 추석보다는 올해 설 명절이 더 나쁘고, 설 때보다는 지금이 더 안 좋다고도 한다. 소비가 좀체 살아나지 않는다. 또 소비트렌드마저 온라인, 대형쇼핑몰, 마트와 백화점으로 옮겨간 현실에서 시장과 소규모 영세상인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펴던 박근혜정부는 정경유착의 비리로 국민의 공분을 사 탄핵됐다. 촛불민심을 등에 업은 문재인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프랜차이즈본사의 횡포 근절,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저임금 인상 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취임 5개월을 눈앞에 둔 지금, 여전히 시장과 서민경제에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섣부른 측면도 없지 않지만, 별로 달라질게 없다는 푸념도 늘어나는 게 사실이다.

문재인정부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취임과 동시에 한층 가열된 북미갈등은 최고조 긴장 국면으로 발전돼 진행 중이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무역마찰로 관광객이 급감하고, 중국진출 기업들이 무일푼으로 내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 트럼프정부의 막가파식 보호무역주의는 철강·자동차 산업에 큰 악재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의 의지만 가지고는 해결이 쉽지 않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소비위축, 내수경기 침체의 원인을 외부의 문제로만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원인의 하나는 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얼개는 갖췄다고 하지만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더러 부처간 불협화음이 생기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책들도 없지 않다. 일례로 은행과 제2금융권 대출규제 정책이 그렇다. 정부는 부동산경기 과열을 막고,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는 대출을 규제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리스크 관리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박근혜정부를 포함 이전 정부가 대출로 집값을 떠받치면서, 결과적으로 가계엔 빚잔치를 강요해왔음을 반추한다면 문재인정부의 대출규제 정책은 큰 틀에서는 맞다.

생활이 어려워, 오르는 전·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임대료와 아르바이트생 월급을 주기위해 은행권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아무런 대책없이 대출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정부와 은행의 직무유기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하지만 지금 당장 대출로 지탱되는 가계경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부동산투기를 목적으로 한 대출은 규제돼야 한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워, 오르는 전·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임대료와 아르바이트생 월급을 주기위해 은행권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아무런 대책없이 대출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정부와 은행의 직무유기다. 은행 문턱을 높임에 따라 발생하는 풍선효과는 사채시장을 부풀게 만들 것이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더 팍팍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정부가 아닐진대, 털컥 강도 높은 대출규제 카드부터 꺼내든 저의는 이해하기 어렵다.

대출형태로 돈을 풀어 국민들의 아우성을 잠재웠던 어떤 정부도 빚을 쉽게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5개월,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빚 안내고 살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청년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빈부격차는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커져가고 있다. 청년실업도, 비정규직과 저임금 문제도 발등에 불이다. 대출을 조여서 경제지표만 개선시킨다고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이 정도의 경제개혁으로 국민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건 착각일 수 있다. 오랜기간 지속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수출대기업 중심의 산업정책은 국민들의 허리를 휘게 만들었다. 프랜차이즈 본사 몇 군데를 본보기로 삼고, 공공기관 및 공기업 몇 군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값싼 노동력에 중독된 경제질서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