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죄고 금리만 올리는 가계부채 대책…‘가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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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대출죄고 금리만 올리는 가계부채 대책…‘가혹’ 진정한 해결방안은 벌어서 갚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보장하는 것

기사입력2017-10-25 13:13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파티는 끝났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던 저금리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기축 통화를 쥐고 있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제로’ 금리시대의 종언과 금리인상으로의 기조 변화는 ‘돈 풀기’로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영향권 아래 있는 많은 나라들도 구경만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좋던 싫던 비슷한 수준으로 금리를 올려야만 자본유출을 방어할 수 있다는건 상식이다.

문제는 우리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빚지고 사는 서민들에게 떨어진 불이다. 1400조원을 넘어선 천문학적인 가계부채를 지고 있는 국민들에게 금리인상은 젖은 솜이불을 더 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통은 더 커질 것이고, ‘한계가구’는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처분가능소득에서 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 비중이 40%를 넘는 한계가구가 지난해 3월말 기준 150만에 이른다. 미국의 금리인상 날개짓이 서민들 밥상을 엎을 태풍이 된 모양새다.

이렇게 된 건 누가 뭐래도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빚 권하는 정책 탓이다. 전월세 폭등에 대출로 집사길 권했고, 재래시장 상인, 영세자영업자, 값싼 노동에 내몰린 비정규직.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에게까지 저금리 대출상품을 내밀어 생존의 요구를 입막음했다. 서민들의 빚내는 삶은 일상화됐다. 집 가진 임대업자가 돈을 벌었고, 수출 대기업은 분기마다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냈다. 은행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정권은 그 대가로 기업에게 검은 돈을 받아 챙겼다. 1400조 가계부채로 대기업과 은행 그리고 불의한 정권이 질펀한 파티를 즐긴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놨다. 빚내서 집사는 시대를 끝내겠다는 것과 함께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자영업자대출. 제2금융권대출까지 심사를 강화해 가계부채를 더 늘리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올바른 방향이다. 세계적인 금리인상 추세를 앞두고 가계부채를 더 늘린다는 것은 국가위기로까지 전이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빚진 사람들, 빚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서민들 처지에서는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파티 자리에는 끼여 보지도 못하고 계산서만 홀로 떠맡는 억울함도 있다.

가계부채 1400조는 국민들이 무능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국가정책이 바르지 못했고 은행과 대기업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빚내서 집사는 시대를 끝내겠다’고 하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에 속아 집사고, 삶에 쪼들려 빚내고 수백만원 등록금을 내려고 빚쟁이가 된 청춘들은 대체 어찌할 것인가. 국가의 무능과 은행의 탐욕에는 면죄부를 주면서 빚진 서민들에게는 왜, 이다지도 가혹한가. 전 정권의 일이니까 세계적인 금리인상이 추세니까, 옥죄는 대출, 오르는 금리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지 정책 당국자에게 묻고 싶다.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은 반쪽짜리다. 저신용자의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고 소액장기채권을 정리하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하나 최악으로 내몰린 일부 계층에 해당되는 일이다. 생색내기일 뿐이다. 문제는 가계부채 대책이라고 하지만 가계부채를 줄일 어떤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의 문턱을 높이고 금리는 올리는건, 서민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은행으로 또 국가경제 전체로 옮겨 붙지 못하게 하기 위한 ‘도화선 자르기’일 뿐이다. 그래서 대출을 옥죄고 금리만 올리는 가계부채 대책은 가혹하다. 동의하기 힘들다.

진정한 가계부채 대책은 벌어서 갚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빠진 가계부채 대책은 어떤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숱하게 쏟아냈던 가계부채 대책, 그때마다 오히려 빚이 늘어났다. 대출을 조이고 금리를 올린다고 빚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빚은 더 음습하고 위험한 곳으로 숨어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