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을 보고도 토건주도성장론을 못버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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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4대강’을 보고도 토건주도성장론을 못버리나? 재벌기업 프로젝트 지원, 공공시설 민간투자 개방…당장 철회해야

기사입력2018-12-22 00:30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지난 17일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경제 불확실에 대한 조급함이나, 내후년으로 다가온 총선에 앞서 성과를 내야한다는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소득주도성장이란 경제담론을 내놓은지 얼마나 됐다고, 폐기돼야 할 前정부의 경제정책에 눈을 돌리는가 말이다. 이렇게 자신감도 철학도 없이 최저임금을 높여, 서민들 주머니를 채우겠다며 표를 구하고 지지를 호소해 왔는지 묻고 싶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이 지난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2019년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사진=뉴시스>

정부의 ‘2019년 경제정책방향’은 과거 정부에서 연말이면 으레 내놓던 새해 경제운영계획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겉표지만 떼고보면,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에서 나왔던 경제계획과 구별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국민의 호주머니도 채워진다던, 지난 정권의 성장론인 ‘낙수효과’가 ‘경제활력 제고’란 표현으로 재포장됐을 뿐이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총론을 시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고 SOC 예산을 대폭 늘려 경제활성화 효과를 본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정부가 현대의 105층 신사옥(GBC),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수도권 반도체클러스터 등 6조원 규모의 민간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해, 이들 재벌기업의 조기투자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또 모든 공공시설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항만과 고속도로, 철도 건설에 민간자본 6조4000억원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민자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 요건까지 완화한다고 해, ‘경제활력 제고’의 수혜자가 재벌기업과 토건자본임을 공공연히 밝혔다.

SOC 예산을 확충해 도로와 항만을 건설하면서 일자리를 늘리던 시대는 지났다.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현장은 장비·기계로 대체됐고, 다단계 하청구조 때문에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옛말이다. 멀리 돌아볼 일도 아니다. 수질관리에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받으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의 결과를 봐라. 환경파괴는 논외로 쳐도 재벌기업과 건설사에게만 부를 안겼을 뿐,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가 나아졌다는 통계는 전혀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SOC 예산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여러차례 공헌했지만, 번번이 기업만의 돈 잔치로 끝났다. 문재인 정부에서 늘린 SOC 예산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경제가 침체됐으니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럼 경제민주화나 동반성장,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활력을 위해 지양해야 할 정책인가? 지금은 비상시국이나 이런 정책을 미뤄놓고, SOC 예산을 조기집행해서라도 경제를 살리는게 먼저라는 강변, 지난 정권에서 수도 없이 반복했던 억지다. SOC 예산을 늘리고 기업에 규제를 풀어주는 정책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대기업이 돈을 벌면 중소기업·소상공인 그리고 가계로 돈이 흘러들게 만드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등의 정책들을 뒤로 미루면서, 기업에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발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위험은 외주화하면서 돈은 기업이 챙긴다. 그래서 스물네살 비정규직 젊은 청년은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죽었다. 그 청년이 죽어가면서 만든 전기를 파는 한국전력은 올 3/4분기 누적 영업이익만 5859억원, 정규직 직원들은 연말에 받을 성과급에 들떠 있을지 모른다. 스물네살 비정규직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에서 눈처럼 펑펑 쏟아지는 SOC 예산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노동존중 사회다. SOC 예산이 아무리 늘어난들, 이미 확정된 최저임금마저 적용 유예를 시도하는 사회에서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란 기대는 헛된 꿈이다.

과거 정권이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돈풀기를 하고 나면, 물가가 덩달아 올라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오히려 힘들어 졌다. 잔칫상은 기업이 받고 계산서는 서민들이 받는, 돈 풀어 경제 살리는 정책, 문재인 정부라고 다를까. 참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