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지덕지’ 추하게 문질러 놓은 ‘모자를 쓴 여인’

프린트

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덕지덕지’ 추하게 문질러 놓은 ‘모자를 쓴 여인’ ‘야수’가 된 화가의 아내…앙리 마티스㊤

기사입력2020-04-23 13:42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20세기 프랑스 유명 화가의 아내는 잔뜩 화가 났다. 자신을 그린 초상화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림의 모델을 서기 위해 화려한 모자를 쓰고 우아한 옷을 차려입고 기품 있는 장갑을 끼고 아름다운 부채를 펼쳐 들었다. 그렇게 한껏 멋을 부렸는데, 화가는 물감을 대강 찍어 놓은 것처럼 그림을 완성했다.

“당신은 아내인 저를 어떻게 이렇게 엉망으로 그릴 수 있는 거죠! 제 코가 초록색인가요? 제 목이 이렇게 새빨갛게 보이던가요? 열대과일을 잔뜩 담은 광주리 같은 모자는 뭔가요? 제가 입었던 세련되고 우아한 옷과 기품 있는 장갑, 아름다운 부채를 마치 노상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누더기처럼 그려 놓다니 너무해요!”

이 초상화에 대해 그의 아내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그림을 마주한 사람들도 경악하고, 분노했다. 추한 그림, 미치광이 그림이라고 조롱했다.

그 문제의 작품이 바로 ‘모자를 쓴 여인(La Femme au chapeau)’이다. 야수파(fauvism, 야수주의)의 거장인 앙리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1954)가 1905년에 그린 작품이다.

추하게 문질러 놓은 여인…‘모자를 쓴 여인(La Femme au chapeau)’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La Femme au chapeau, The Woman with the Hat)’, 1905, 캔버스에 유채, 81.3×60.3cm<출처=위키피디아>

그럼 1905년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그해 프랑스 파리로 가보자. 그해 가을 파리에서 ‘가을 살롱(Salon d’Automne)’ 전시가 열렸다.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보수적인 전시회를 반대해 1903년부터 매해 열던 전시였다. 하지만 1905년 가을 살롱에 전시된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은 그 당시로서는 너무 혁신적인 그림이었다. 그의 아내인 아멜리(Amelie)뿐만 아니라, 그 작품을 본 대다수의 사람이 이 작품에 거부감을 보였다.

그 당시 대중들은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좋아했는데, 이렇게 강렬한 색채와 붓 자국이 두드러진 그림을 처음 접해본 것이다. 노란색과 초록색 물감으로 대강 찍어 발라 놓은 여인의 얼굴, 어린이가 그린 듯 몇 가지 색깔로 마무리된 모자, 그리다 만 듯한 검은색 드레스와 장갑과 부채, 네다섯 가지 물감을 엉성하게 칠해 놓은 배경, 이런 그림을 당시 사람들은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러한 거센 비난은 1863년 마네(Édouard Manet)의 ‘올랭피아(Olympia, 1863)’ 이후로 4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만약 마티스가 자연 풍경을 이런 식으로 그렸다면, 그저 한바탕 소동이 일고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을 이렇게 그려놨기 때문에 더욱더 격렬한 거부와 비난, 조롱을 받았다. 당시에는 여성을 아름답게 그리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악명 높은 그림은 판매가 됐다. 미국의 시인 겸 소설가인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은 그의 오빠인 리오 스타인(Leo Stein)과 함께 상속받은 재산으로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구매했는데, 그들이 이 작품을 구매한 것이다. 리오는 ‘모자를 쓴 여인’을 처음 봤을 때, “화려하고 강렬하지만, 물감을 그렇게 추하게 문질러 놓은 그림은 난생처음 보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