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노동자도 심야와 일요일에는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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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대형마트 노동자도 심야와 일요일에는 쉽시다 계속되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 무력화 시도

기사입력2022-12-30 18:00

김은정 객원 기자 (ejcong@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지난 12월19일 대구시는 8개 구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 협약서를 체결했다. 대형·중소 유통업체 관계자 그리고 시장·구청장·군수들만이 참석했고, 마트 노동자들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심지어 의무휴업 평일 변경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한 데 이어 대구시는 지난 20일 이들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전통시장이나 중소상인들에 대한 상생대책은 별도로 추진’하기로 했다며, 마트 노동자들이 본사에 항의하면 될 일을 대구시에 항의한다며 페이스북에 밝혔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의 평일 전환 과정에서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마트 노동자들을 대화의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는 불통의 자세는 크게 우려되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에 질세라 윤석열 정부도 최근(12월28일)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영업을 제한하고 있는 오전0시~10시 심야·새벽시간과 월2회 의무휴업일에 온라인배송 영업을 허가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대형마트 사용자단체와 일부 상인그룹 등과 맺었다. 듣도 보도 못한 국민투표와 규제심판회의를 통해 의무휴업제도 폐지를 시도했던 윤석열 정부가 이제는 지방정부와 사용자단체 등을 동원해 의무휴업제도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제도화되기까지 많은 공론 과정을 거친만큼, 정책을 거꾸로 돌리거나 변경하려면 그만큼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도, 대구시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의 도입 취지를 몰각한 채 유통대기업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정책의 이해당사자들과 대화와 소통의 의지도 밝히지 않고 있어 문제가 크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도입된 ‘대형마트 의무휴업’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는 대형마트 등이 사실상 연중무휴로 심야영업을 하면서 강한 자본력을 이용해 지역상권을 장악함으로써 전통시장과 중소유통업자가 대부분인 골목상권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대형마트 등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건강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대형마트 등에 대한 영업규제를 통해 건전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근로자의 건강권과 대형마트 등과 중소유통업과의 상생발전을 위해 도입됐다.

당시에도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있었지만 대형 유통업체가 편법, 위장입점 등으로 이를 준수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 침해 문제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에 12조2 ‘대규모점포등에 대한 영업시간의 제한 등’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제304회-법제사법제3차(2011년12월30일) 회의록 발췌

◯李恩宰委員 : 장관님, 지금 실제로 다른 데도 보면, 다른 나라들 보면 휴일은 없고 365일 24시간제로 돌아가는 데가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휴일제를 채택하려고 했던 배경이 뭐지요?

◯지식경제부장관 홍석우 : 그것이 소상공인들하고 골목 상권에 대해서 좀 더 기회를 많이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 노동자들의 근로 보호, 휴일도 제공한다는 그런……

◯李恩宰委員 : 그러니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지식경제부장관 홍석우 : 예, 그렇습니다.

◯李恩宰委員 :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차피 돌아가면서 쉬지 않아요? 예를 들면 이게 주 40시간이지요? 주 40시간 일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 잘 안지켜지고,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해 가지고 휴일날 하고 이러는 것 아니에요, 지금?

◯지식경제부장관 홍석우 : 하여튼 내부적으로는 사실 잘 지키면야 되겠습니다마는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면도 있기 때문에 일단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첫 번째 대의명분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또 부대적인 소상공인 보호 효과도……

실제로 2011년 법사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의무휴일제 채택 배경에 대해 노동자 보호가 첫번째 대의명분이라고 밝혔다. 보수정권에서도 노동자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법 개정에 나섰던 사안임을 알 수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는 노동자 건강권, 중소상인의 생존권은 물론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등까지 확대돼야 할 정책이다. 이에 2018년 헌법재판소도 “건전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대형마트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도모하며, 대형마트 등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려는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대형마트 등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이라는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며, 대형마트 7곳이 의무휴업 제도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2018. 6. 28. 2016헌바77·78·79(병합)]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처럼 보수정권도 헌법재판소도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의 취지를 인정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보수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이러한 기본적인 취지에도 공감하지 못한 채, 그저 규제완화만을 외치며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평일에 쉬면 된다?…일과 삶 균형위한 일요일 의무휴업

대구시의 경우,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를 폐지하자는 게 아니라 일요일을 평일로 옮기니 노동자의 휴식권은 보장되는 거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휴식에 대한 일차원적 발상이다. 가족, 지인과 함께 일요일에 쉴 수 있도록 의무휴업일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노동자의 신체와 정신, 사회적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 휴일 근무는 결국 노동자의 건강권과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혜은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부교수가 서울·경기지역의 마트산업노동조합 조합원 318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 3회 이상 일요일에 근무하는 노동자 115명 중 40명(34.8%)과 월 2회 이하 일요일에 근무하는 노동자 196명 중 47명(24%)이 우울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18명 중 236명인 74.2%가 ‘일로 인해 가족에게 원하는 만큼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일요일 근무일수에 따라 우울증상, 일·가정 균형 등에 있어 노동조건이 유사한 마트노동자 간 경험 차이를 보였는데, 이에 대해 이혜은 부교수는 “일요일 근무가 노동자들의 건강과 가족관계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권 보장을 위해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 유통분야 전반에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제도가 확대돼야 한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이혜은 부교수가 ‘윤석열 정부의 마트 의무휴업 폐지 시도 문제점 및 대안 토론회’에서 소개한 유럽 31개국 노동자 2만3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월 1회 이상 일요일 근무를 할 경우 일요일 근무를 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1개 이상 건강문제가 있을 위험이 17% 높았다. 또한 일-생활 균형이 저하될 위험은 15%, 작업 관련 사고 경험 위험은 34%나 증가했다. 일본 11개 도시의 노동자 4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월 5일 이상 휴일 근무하는 여성은 휴일 근무를 하지 않는 여성에 비해 우울증상을 겪는 경우가 33.3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국내외 다양한 연구결과에서 노동자가 일요일에 일하면 몸과 정신 건강 문제가 발생하고, 일과 삶의 균형이 저하되고, 작업 관련 사고도 높아진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요일 의무휴업이 마트 노동자의 최소한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보장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함을 의미한다. 또한 대구시의 의무휴업제도 평일 전환이 사실상 의무휴업제도의 무력화와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과로사 초래 위험…‘24시간 365일’ 돌아가는 대형마트

윤석열 정부의 대형마트 영업제한 시간과 의무휴업일에 온라인배송을 허용하는 ‘대중소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를 통해 우리사회가 보장하고자 했던 노동자의 건강권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대형마트에서 야간노동과 과로사 위협에서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나. 결국 정부가 노동자들을 심야와 일요일에까지 일을 시켜 유통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대규모점포를 등록한 자가 동시에 통신판매사업자로서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경우,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주문된 상품을 의무휴업일에 배송하기 위해 의무휴업일의 적용을 받는 그 대규모점포매장의 물건을 반출해 배송하는 것은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에 따른 의무휴업 명령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과도 배치된다. 이에 윤석열 정부 역시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회에서 법 개정이 있기도 전에, 정부가 나서서 의무휴업제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과연 노동자를 삶과 가족이 있는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의 이익창출을 위한 도구로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노동자가 밤에는 잠을 자고, 주말에는 쉬고, 과로사와 위협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일하자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보장하기 위한 제도마저도 훼손하려 드는 이 상황이 개탄스럽다.

윤석열 정부의 대형마트 의무휴업 무력화 시도는 철회돼야 하고,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권 보장을 위해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 유통분야 전반에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제도가 확대돼야 한다. 이를 위한 연대와 공감이 필요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