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대리점, 언론·시민사회 향한 ‘입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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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노동자, 대리점, 언론·시민사회 향한 ‘입틀막’ 쿠팡의 입틀막 패러디…쿠팡의 형사고소·계약종료 ‘입틀막’은 괜찮나

기사입력2024-03-07 11:57

김주호 객원 기자 (dream@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

최근 쿠팡플레이에서 방영 중인 ‘SNL코리아’에서, 대통령 과잉경호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입틀막’ 사건을 패러디해 화제다. 지난 1월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상 위해방지를 이유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의 입을 막고 사지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끌어낸 데 이어, 2월엔 정부의 R&D 예산삭감을 반대하던 카이스트 졸업생과 정부 의료정책에 대한 반대발언을 하려던 의사까지 입을 틀어막아 끌어내며 논란이 되었는데, SNL코리아에서 이 장면을 패러디하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통령 경호처의 ‘입틀막’ 사건을 패러디해 방영한 채널이 쿠팡플레이라는 점이 참 흥미롭다. 최근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택배노동자들의 활동을 탄압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취업에 불이익을 주려한다는 의혹은 물론 불공정거래 행위 등을 문제제기하는 언론인과 노동조합 그리고 시민사회에 ‘입틀막’ 소송을 남발하고 있는 기업이 다름 아닌 ‘쿠팡’이라는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장면 하나…노동자 ‘입틀막’ 형사고소

로켓배송과 로켓배송노동자인 쿠팡맨 직고용으로 큰 화제를 끌며 온라인·모바일 유통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쿠팡은 지난 2018년 자회사인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이하 쿠팡CLS)로 택배사업 부문을 이전하며 본격적인 택배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쿠팡CLS에는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문제, 프레시백 회수 및 분류작업 전가 등 노동조건 논란이 제기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쿠팡CLS는 해당 노동자들이 쿠팡CLS가 직접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 신분이며, 쿠팡CLS와 택배 배송 위수탁 계약을 맺은 택배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것이어서 이들의 노동조건과 관련해 쿠팡CLS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반박해왔다. 노조가 주장한 분류작업 전가와 프레시백 회수 업무에 대해서도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한 불법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입수한 ‘계약해지에 관한 부속합의서’에 따르면, 쿠팡CLS는 ▲2회전 배송 미수행 ▲신선식품 배송율 ▲월 수행율 ▲휴무일 배송율 ▲명절 당일 배송율 ▲PDD(Promised Delivery Date) 미스 비율 ▲파손율 ▲회수율 등의 지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의무를 대리점에 부과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택배대리점과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소위 ‘클렌징’이라는 영업지역 회수조치를 통해 물량을 줄이는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하도급법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프레시백으로 배송을 받은 소비자들이 이를 문 밖에 내놓지 않고 외출을 할 경우, 택배대리점이나 택배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묻기 어려운데도 과도한 회수목표를 강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자 이 기준을 낮췄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문제는 쿠팡CLS가 택배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했을 뿐,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계약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대리점 입장에서는 쿠팡CLS와 맺은 계약조건 중 일부가 부당하거나 무리하더라도 이를 이행하기 위해 택배노동자들에게 무리한 업무지시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에 있다. 택배대리점 입장에서는 이러한 계약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결국 배송지역 회수를 통해 일감이 줄어들거나 계약이 연장되지 않을 우려 때문에 택배노동자들을 압박하거나 대리점의 수익을 줄여가며 출혈경쟁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쿠팡은 본인들의 ‘입틀막 소송’에 대해 먼저 돌아봐야 한다. 진정한 혁신기업이라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쿠팡은 배송구역의 회수이지 해고는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본인이 담당하던 배송구역이 회수되면 대리점 입장에서도 해당 기사에게 일감을 줄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대리점의 다른 기사가 일감을 떼어주거나 대리점이 다른 계약을 따내지 않는 한 결국엔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 해고와 동일한 결과가 발생하는 셈인데, 본인들과는 계약관계가 없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해고가 아니라는 얘기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표현이 딱 맞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의 꼭지점에 있는 쿠팡CLS가 ‘이건 대리점과 소속기사들의 문제이지 본인들은 법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해고는 허위사실이다’라고 하면, 원청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쿠팡CLS는 허위사실 유포,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택배노조 간부들을 형사고소했다.

장면 둘…대리점 ‘입틀막’ 계약종료

지난 12월 결국 한 대리점은 3월7일부로 쿠팡 CLS로부터 계약종료 통보를 받았다. 사유는 해당 대리점 소속 임원 및 배송노동자들의 쿠팡CLS 임직원 폭행, 공동건조물 침입, 해당 대리점의 대표자 및 배송노동자들의 쿠팡CLS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인한 신뢰관계 훼손 행위.

대리점 소속 노동자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대리점에 묻는 것도 이상하지만, ‘대리점 대표자의 허위사실 유포’는 해당 대리점의 공정거래법 및 하도급법 위반 혐의 신고에 대한 보복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하도급법에 따르면, 수급사업자인 택배대리점이 원사업자의 법 위반을 이유로 공정위에 신고한 것을 두고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보복조치 금지 위반으로 과징금의 20%가 가중되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물론 대리점이나 하도급 계약의 경우 계약갱신요구권이 보장된 가맹사업영역과 달리 통상 1~2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고 대리점주에게 계약이 연장될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면 원사업자의 일방적인 계약종료가 불공정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쿠팡CLS는 그 신뢰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불공정한 계약조건을 불공정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신뢰관계가 훼손되었으니 계약을 종료한다. 이러한 행태는 가맹점이나 대리점, 하도급 영역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는 ‘입틀막’ 불공정 행위의 유형이다. 치즈 통행세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던 미스터피자 정우현 전 회장도 처음엔 통행세 의혹을 제기했던 가맹점주를 상대로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계약해지에 해당하는 계약연장 거절을 했다가 보복행위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장면 셋…언론사와 시민사회 ‘입틀막’ 형사고소

쿠팡 측의 입틀막 소송은 비단 노동자와 대리점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엔 쿠팡의 납품업체 갑질 문제를 제기했던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서를 보낸 데 이어,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한 쿠팡시민대책위 권영국 변호사를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도 쿠팡 측은 본인들에게 불리한 점은 언급을 피하고 사소한 부분을 꼬투리 잡아 마치 전체 주장이 심각한 허위사실인 것 같은 언론플레이를 일삼고 있다.

쿠팡은 ‘입틀막 패러디’ 전에 본인들의 ‘입틀막 소송’에 대해 먼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쿠팡이 진정한 혁신기업이라면 남을 패러디하는데 그치지 말고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터져나오는 ‘을’들의 목소리는 손바닥으로 막을 수 없고, 하늘 또한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