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서 나온 적이 없는 작품들이 빛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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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창고에서 나온 적이 없는 작품들이 빛을 보다 퍼스트핸드 숍(Firsthand Shop)…박선호·홍자영 작가

기사입력2024-09-29 10:00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전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무렵부터 나는 사물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작업에 활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작품이 성립하는 조건에 관한 질문이 생겼다. 내가 선택한 것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만든 것이 미술인지 아닌지 잘 이해하지 못하곤 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거나 형태를 만드는 등 작가의 고유한 조형언어가 현실에 구현되면 쉽게 작품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작가가 온전히 조형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현대미술 같다’, ‘이게 작품이야?’라는 말로 의심과 조롱의 눈길을 받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회화나 조각이 아닌 미술작품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의 ‘샘 Fountain’(1917)처럼 레디메이드(readymade)의 발견 이후, 조형뿐만 아니라 작가의 아이디어와 선택 역시 작품이 되었다. 나 역시 작가의 아이디어와 선택, 그리고 그것들을 구성한 맥락(context)까지가 작품을 이루는 핵심이자, 작품이 성립되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으로 여겼다. 이는 내 작업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러한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충족하는 완전한 작업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고, 심지어 어느 것도 미술 작품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부터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냉소적인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늘 고민이 많은 나와 그런 나를 이해하는 동료작가 홍자영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것과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에 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는 작품이 제작을 통해 완결되는 것뿐만 아니라 전시회에 출품되고 ‘사용’되면서 비로소 그것의 고유함과 독특함을 얻게되는 것 같다고는 말을 해주었다. 우리는 이러한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어 전시 ‘Firsthand Shop’을 준비하게 되었다. 전시 제목으로 쓰인 ‘Firsthand Shop’은 중고품을 판매하는 세컨드핸드 숍(secondhand shop)을 비틀어 본 언어유희다. 직접 경험한 것(firsthand) 즉, 경험, 선택, 아이디어가 응축된 작품이 사용된 상태(secondhand)가 되는 중간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Firsthand Shop’ 전시 전경. <촬영=정지필>

우리가 사용하게 된 전시장은 1930년대 지어진 목조주택을 개조해 만든 ‘챔버(CHMBR)’라는 공간이다. 본디 6개의 작은 방으로 구성된 집의 벽과 천장을 허물고 보강해 2022년부터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전에는 창고, 공장, 사무실로 활용되었고, 변화무쌍한 공간의 역사만큼이나 케케묵은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바닥, 기둥, 천장 중 어느 것도 평평하거나 곧지 않았다. 삐뚤빼뚤한 건물의 구조 위에 흙 벽, 콘크리트 벽, 서까래 나무, 철 등 다양한 질감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챔버는 ‘Firsthand Shop’이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를 잘 담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고, 공간에 여러 번 방문하며 전시계획을 촘촘히 다듬어 보았다.

전시공간을 크게 세 구획으로 나누고 작품을 놓는 방식을 고민했다. 첫째, 우리가 만든 것 중 공개하지 않은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용해 볼 것, 둘째, 작품들의 질감과 인상이 충분히 오래되어 보이는지 충분히 살펴볼 것, 셋째, 전시장을 세컨드핸드 숍과 박물관의 중간 정도 분위기로 연출할 것, 마지막으로, 우리가 선보이는 것들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것.

전시를 준비하며 그간 선보인 적 없는 작업을 모두 꺼내 보았다. 구조와 맥락의 구성요소로 사용되던 사진들, 수집한 엽서를 크게 확대해 인화하고 액자에 넣은 것, 즉흥적으로 만든 조각 드로잉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작은 오브젝트를 결합해 만든 조각 소품과 필름을 활용해 촬영한 영상까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진 것이었다.

이것들을 차에 모두 실어 전시장으로 가져왔다. 공간 한편에 플리마켓과 박물관에서 볼 법한 부드러운 벨벳 천을 깔고, 그 위에 작업들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배치했다. 시간을 두고 전시장에 방문하며 조금씩 자리를 옮겨봤다.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Firsthand Shop’이라고 가정된 장소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되었다. 창고에서 나온 적 없는 작업들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새롭게 열린 전시, 그리고 새롭게 사용해 본 작업들. 어쩌면 끊임없는 대화와 고민을 통해 작업들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닐까.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