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명품을 리폼하면 상표권 침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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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특허변리 ‘내돈내산’ 명품을 리폼하면 상표권 침해인가 지속 가능성과 상표권 보호의 갈림길에 서게 된 패션 업사이클링

기사입력2024-11-07 00:00

손보남 객원 기자 (ceo@indieip.co.kr) ㅣ다른기사보기

손보남 ㈜인디프 대표/변리사

최근 루이비통과 명품 수선업자 간의 상표권 침해 판결이 많은 분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법원은 리폼된 제품이 원래의 상표를 손상시키고 소비자에게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수선업자의 상표 침해를 인정했는데요. 이는 단순히 제품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한 수선의 정도가 아니라, 제품의 원래 목적과 형태를 변경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으실 수 있는데요. 상표법상 상표는 ①상품의 출처표시 기능과 ②상표권자의 신용을 보호하는 목적이 포함됩니다. 이는 다른 특허법, 디자인보호법과 달리 소비자가 제품의 품질과 브랜드의 평판을 신뢰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표법의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리폼(리메이크) 과정에서 원래 제품의 형태, 디자인, 기능을 크게 변경하게 되면, 이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고유한 특징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급 명품 핸드백을 완전히 다른 형태의 가방이나 액세서리로 변형시키는 경우, 이는 원래 브랜드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과 품질 기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를 법률용어로는 상표의 희석화라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재생산된 상품이 유통될 경우, 상표권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리폼이 자사 브랜드의 이미지와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소비자들이 변형된 제품을 보고 해당 브랜드의 본래 품질과 디자인을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지속가능성과 상표권 갈림길에 서게 된 패션 업사이클링에 대해 해외 사례를 통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세계 온실가스량의 약 10%를 배출하는 패션산업은 환경파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지속 가능한 대안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순환 패션’이 새로운 해답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순환 패션은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재사용과 재활용, 업사이클링을 통해 의류의 수명을 연장하는 등 지속 가능한 생산방식을 강조합니다.

그 중에서도 업사이클링은 버려질 운명에 처한 소재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기법은 오리지널 제품을 해체해 그 구성요소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유명 브랜드의 로고나 디자인이 포함된 제품의 부품을 사용해 새로운 액세서리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된 명품 의류의 단추를 귀걸이로 만들거나, 디자이너 가방의 조각을 펜던트로 제작하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명품의 품질과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창작물을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두 번째 기법은 기존 제품에 장식요소를 더해 리폼하거나 맞춤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명품 가방에 프린지나 보석을 추가해 독특한 매력을 더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맞춤형 디자인은 소비자들이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패션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사이클링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IPR)과의 충돌이라는 난제가 존재합니다. 기존 상표나 디자인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업사이클 제품은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습니다. 상표법의 소진 원칙은 최초 판매된 상품이 이후 재판매되는 것을 허용하지만, 원본 상품이 변형될 경우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브랜드 로고나 고유한 디자인 요소가 그대로 남아있는 업사이클 제품은 상표권 침해의 위험이 있습니다.

2022년 미국에서는 샤넬과 루이비통 제품 패션 업사이클링 행위에 대한 법원 분쟁사례가 있었습니다.

Shiver + Duke(이하 SD)가 샤넬의 단추를 재사용하며 주얼리를 제작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샤넬은 용도 변경된 샤넬 단추가 샤넬에서 직접 공급되지 않았고, 샤넬의 진품 확인이 부족했으며, 원래 주얼리가 아닌 의류용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SD의 업사이클 제품은 샤넬의 보석 디자인과 유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SD는 최초 판매원칙 또는 권리 소진 이론에 따라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뉴욕 남부 지방법원은 샤넬의 손을 들어주며, SD의 샤넬 단추 리폼을 영구적으로 금지하고 사건을 합의했으며, 합의조건은 비밀로 유지되었습니다.

21-cv-02177, Chanel Inc. v. Shiver + Duke LLC, Document 1 Filed on 02/12/21 Page 6 of 24.

루이비통은 루이비통 제품의 소재를 변형해 의류, 핸드백, 액세서리를 제작한 산드라 링 디자인을 고소했습니다. 루이비통은 소재 변경이 고객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을 문제삼았고, 산드라 링 디자인은 각 제품에 루이비통과의 제휴가 없다는 사실을 명시하였기 때문에 고객이 출처 혼동할 가능성이 낮다고 반박했습니다. 판결 이전 합의가 이루어져 법원에 의한 책임이나 손해 인정 사실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산드라 링 디자인은 루이비통에 60만3000달러를 지급하고 영구적인 금지 명령에 동의해야 했습니다.

21-cv-00352, Louis Vuitton Malletier S.A.S. v. Sandra Ling Designs, Inc., Document 1 Filed on 02/02/21 in TXSD Page 17 of 28.

우리나라의 루이비통과 명품 수선업자와의 판례는 앞선 미국의 사례로 비추어볼 때, 법리적으로 동일한 맥락으로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법제상으로는 리폼 행위의 상표권 침해 가능성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보호의 관점에서 업사이클링이 권장되고 있고, 기업들도 ESG 경영을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리폼 행위를 무조건 불법으로 보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브랜드의 상표권과 업사이클링의 자유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커지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업사이클링의 활성화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데 기여하지만, 브랜드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첫째, 리폼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단순 수선과 창작적 변형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 수선은 가방의 찢어진 가죽을 교체하거나 안감을 수선하는 등 원래 제품의 기능과 형태를 유지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루이비통 가방을 해체해 지갑으로 바꾸는 등 근본적으로 제품의 성격을 바꾸는 창작적 변형은 브랜드 정체성을 손상시킬 수 있어 제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브랜드의 품질과 디자인 요소를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 공식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브랜드와 소비자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는 자체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인증된 리폼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소비자의 리폼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에르메스의 ‘petit h’는 업사이클링 전용 라인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디자이너들의 친환경적 창작 활동을 장려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더 나아가 실용적인 공식 업사이클링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통해 소비자와의 신뢰를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패션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환경 가치와 상표권 사이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상표권 행사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며,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점에서 리폼 허용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 수선은 제품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는 작업이지만, 창작적 변형은 브랜드 정체성과 충돌할 수 있어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업사이클링은 지속 가능한 소비를 위한 긍정적인 시도로 평가받지만,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환경 보전과 브랜드 가치를 모두 존중하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손보남 ㈜인디프 대표/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