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사과’로 이 나라를 정쟁과 혼란으로 몰지 마라

프린트

오피니언 ㅣ 칼럼 ‘거짓 사과’로 이 나라를 정쟁과 혼란으로 몰지 마라 즉시 그만두겠다는 말 이외 국민은 어떠한 말도 듣고 싶지 않다

기사입력2016-11-29 17:59

박현진 기자 (kpla12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구차하고 비루하고 그리고 뻔뻔하기까지 하다. 29일 오후 2시30분부터 5분동안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가 끝난 직후 들었던 단상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은 추호도 인정하지 않은 채 여전히 남 탓을 했고,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일말의 책임도 지지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 스스로 즉시 청와대를 나오면 해결될 수 있는 작금의 혼란사태를 수습할 책임을 정치권에 떠 넘겼다.

불통으로 국민의 탄핵을 받아 국정 전면에 나서지도 못하고 청와대에서 장기농성하고 있다는 조롱을 받는 대통령이다. 앞선 두번의 담화문 사과 모두 입으론 ‘내 탓이오’ 했지만 ‘무엇을 잘못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3차 담화문 발표 역시 국민들의 궁금증을 대신 해소해 줄수 있는 기자들을 대통령 앞 장식물로만 세웠다. 기자들도 물어보지 못했고, 대통령 스스로도 답하지 않았기에 국민들로선 ‘불찰’, ‘잘못’, ‘사죄’, ‘사과’란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친박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그 과정에서 최순실 등과 공모해 헌법질서를 파괴한 범죄’를 대통령의 잘못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같은 이유로 국민들은 대통령을 탄핵했다. 검찰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강변하고 있다. 최순실로부터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 전부가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고 그 사업을 통해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는 궤변을 내뱉고 있다.

96% 이상의 국민이 헌법질서 파괴의 주범으로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다. 오직 4%를 포함 박 대통령만이 자신도 피해자란다. 그저 잘못이라면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도이고, 그 잘못도 지금 자백하지 않고 ‘가까운 시일내에 밝히겠다’고 했다. 범죄를 자백하는데 범죄자가 시간과 장소를 정하겠다는 억지를 받아줄 만큼 지금 우리 국민은 너그럽지 못하다. 치욕스럽고 참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으로 검찰조사를 받겠다는 대국민 약속까지 팽개친 대통령을 인내할 만큼 우리 사법정의는 관대하지 않다.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청와대를 나와 검찰조사를 받고, 그래도 할말이 있다면 그때 가서 할 일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결심’ 운운하며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혼란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어 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국정혼란’은 대통령 입에서 나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국정혼란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 자신이다. 국정혼란에 따른 우려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지금 당장 청와대를 나와야 한다. ‘안정된 정권 이양’ 역시 대통령은 언급할 자격조차 없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질서를 농단한 범죄자에게 누구도 정권을 이양받지 않는다. 최순실 일당들에게 빼앗긴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공화국은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되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대통령이 잠시 가졌던 권력을 회수하기 위한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26일 ‘박근혜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200만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광장에 섰다. 비도 눈도 그리고 영하에 가까운 칼바람도 청와대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이들이 민주주의 광장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 벌써 한달여다. 이들의 광장정치,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공화국을 재건하기 위한 행진은 대통령이 청와대 문을 나와 법의 심판대에 서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은 또 다시 담화문이란 이름의 거짓 사과를 통해 이 나라를 정쟁과 혼란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해 ‘정권이양 방안’을 만들어 오면 ‘법과 절차’에 따라 퇴진하겠다는 수사로 새누리당 내 친박과 비박, 여당과 야당, 그리고 야 3당간 균열의 틈을 비집고 있다. 얄팍한 잔꾀이고 쓸데없는 기대다. 국민들로부터 이미 탄핵을 받았지만 법 절차 형식을 갖추기 위한 국회의 탄핵절차도 시작됐다. 날짜까지 특정할 순 없지만 앞으로 2주일 이내면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될 것이다. 더 이상 ‘진심’이니 ‘호소’니 마음에 없는 말하지 말고, 국민 그리고 국회의 처분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이후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들어야 할 말은 ‘지금 당장 대통령직을 그만두고 검찰의 조사를 받으러 가겠다’는 것이다. 그 이외 어떠한 말도 국민들은 듣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