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제공동체에서 동북아로 ‘빅픽처’ 그리다

프린트

Live 중기 ㅣ 경제일반 남북 경제공동체에서 동북아로 ‘빅픽처’ 그리다 평화·자주·공영체제 위대한 한민족의 길…핵심고리 한반도 신경제

기사입력2018-09-07 16:51

최민식 객원 기자 (newway40@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최민식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

2015년 8월16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8·15 경축사는 커다란 한반도 지도를 화면 가득히 메우면서 시작됐다. 이른바 ‘한반도신경제지도’다. ‘H’자형 환동해권, 환서해권, DMZ 평화관광벨트 3개축이 그려져 있고, 한반도는 분단을 넘어 푸르게 하나로 통일된 모습이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한반도신경제지도 구상은 말 그대로 한반도 경제통일론이었다. 정치적 통일이 안 되더라도 먼저 경제공동체를 이룬다면, 우리 기업의 북한 진출로 ▲단숨에 8000만 시장으로 내수시장 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 5만불 시대로 일대 도약할 수 있다는 것, ▲대한민국의 잠재성장률을 5%대로 올릴 수 있고 2050년에 이르러 굴지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 ▲남북한 생산공동체, 소비공동체, 수출공동체를 만들어 ‘한반도의 기적’을 이뤄낸다는 것, 경제통일을 우리 경제를 살릴 집권비전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2년 후 2017년 7월6일, 베를린 신한반도 평화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큰 그림이 구체적으로 펼쳐졌다. 제 일성은 북한의 붕괴나 흡수통일 또는 인위적 통일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비핵화라는 뚜렷한 개념 하에서 항구적 평화체제(평화협정)를 추진한다는 것이니 만큼, 베를린 선언은 이전의 그 어떤 대북제의와도 그 성격을 달리한다. 항구적 평화체제, 그것은 북한을 독립된 자주국가로 세계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한 것이다.

사실 지난 수년간 한반도 전쟁의 위기는 날로 고조됐다. 최근의 외신에서도 드러났듯이,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북한에 대한 가공할 공격을 검토한 바 있다. 불과 1년 전인 2017년 4월과 8월,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실험이 있었다. 2017년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있었고, 2017년 9월11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유류공급 제한, 북한 섬유류제품 수출 금지, 북한 선박 검색, 북한 노동자 해외송출 제한 등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를 채택했다. 그럼에도 2017년 11월29일 북한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실험을 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가공한 핵무기의 완성은 미국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27일 판문점 도보다리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평화의 단초는 2018년 2월, 평창 올림픽이었다. 2017년 11월 제72차 유엔총회에서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동안 군사적 분쟁을 중단하자는 ‘휴전결의안’을 채택했다. 2017년 12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NBC와의 회견에서, 북한이 도발을 중단한다면 평창올림픽기간과 겹칠 수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쌍중단 입장을 밝혔다. 2018년 1월1일,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2018년 1월4일, 한미 정상 전화통화를 통해 한미합동군사훈련 연기에 합의했으며, 2018년 2월~3월 평창 임시평화체제 하에서 4월의 남북정상회담을 사전 조율하는데 성공했다. 평창올림픽 직후 그리고 정의용 안보실장의 미국파견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4·27 판문점 선언은 민족사의 대사건이다. 2018년 4월27일 오전 9시30분경, 북한의 표준시로는 9시경,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그리고 두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선언문은 세가지 주제 즉 ‘남북관계의 발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의 순으로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도 선언의 의의는, ‘평화번영 향한 연합적 거버넌스’를 제창한 것에 있다. 구체적으로 합의문 1항의 ⑥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민족경제’란 ‘한반도 경제지도’로 확장된다. ‘민족 내부 경제’가 아니라 ‘동북아 경제’ 차원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6·12 북미정상의 센토사 합의는 어찌보면 4·27 선언의 결정판이라고 할 것이다. 양국간 관계 정상화, 북 체제 안전보장, 완전한 한반도비핵화, 전쟁유해 송환이라는 4개항 합의는 짧지만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목표는 체제 안전보장과 북미관계 정상화에 있고, 미국의 목표는 신속하고 완전한 비핵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정상의 합의는 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고 있다. 정상회담 합의문은 포괄적 일괄타결, 선 안보 맞교환 후 경제제재 완화 및 외교관계 정상화 수순을 예고한다. 수개월 이내 북한 ICBM 폐기, 핵신고 및 종전선언, 1년 이내 모든 핵 폐기 및 평화협정 체결, 2년 이내 완전한 비핵화 검증 및 북미 경제·외교관계 정상화(수교)의 실현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았다.

대북 특별사절단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특사단이 지난 5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뉴시스>

필자는 오래전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특성을 차별적으로 인식해왔다. 북한의 변화는 ‘김정은’ 요인이 그 무엇보다 앞서는 지배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를 유럽에서 보내면서 선진문명을 체감했으며, 자본주의의 다양한 변화를 목도했다. 그에게 자본주의란 악마가 아니다. 중국의 성공과 베트남·싱가포르의 성공사례도 있었다.

2018년 4월20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북한은 기존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하고 향후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할 것임을 천명했다. 북한 경제는 매우 어렵다. 수십 년간 지속돼 온 국제적 고립상태에서의 탈피와 대외관계 정상화 없이는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웠다. 핵노선보다 경제건설에 집중한다는 것은, 비핵화를 통한 북미관계 정상화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김정은의 입장은, 핵무력을 확보했기에 무시당하지 않고 미국과 진정한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센토사 합의의 바탕이 됐다고 평가한다.

한반도 신경제는 그래서 출발점이었고, 종착지다. 문재인 당시 당대표가 8·15 경축사를 통해 제시한 ‘한반도신경제’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민족의 회복이라는 역사적 메시지에 머물지 않고 경제 메시지에 주력, 한반도의 미래상을 제시한 ‘평화번영주의’ 노선이었다. 냉전체제 하에서 분단극복의 치유적 메시지에 머물지 않고 평화번영의 선명한 미래를 형상화했으며, ‘경제적으로 유능한 새로운 진보’를 보여준 것이다.

한반도 신경제는 세가지 개념축이 상호작용한다. 먼저, 평화체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안정 확보,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체제의 안전 보장,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및 해소는 경제를 위한 안전판이다. 둘째, 자주적 체제다. 미국과 중국의 입김에 의존하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평화가 아니라, 남북한이 직접 평화와 경제를 경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공영체제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북한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남한경제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북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흡수통일 전략’ 개념이었지만, 한반도 신경제 구상은 남북한이 교류 협력할 수 있는 평화체제 환경부터 조성한 후, 남북한의 체제상 차이를 인정한 상태에서 교류협력 과정을 통해 서로의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북한의 강제적 참여나 압박을 통해 시장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필요에 의해 남북 경제협력을 하고, 북한 스스로 북한경제를 개발하며, 남한 역시 한국경제의 필요에 의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정상국가 간의 경제교류를 지향한다. 또한, 과거에는 남북 경제교류에 국한된 ‘긴장완화형 경협’이 중심이었다면, 한반도 신경제는 경제협력의 영역을 동북아로 확장, 동아시아 지역 경제통합의 시발점을 남북 경제공동체로 삼는다는 빅픽처다. 나아가 한반도 신경제를 통해 선진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동 번영의 세기적 대변화를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