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황금빛 오묘함 ‘키스’에 영감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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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클림트의 황금빛 오묘함 ‘키스’에 영감을 주다 “꿈의 도시”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만나는 비잔틴 모자이크 여행

기사입력2022-06-15 10:24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선율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 유럽의 음악도시 오스트리아 빈은 미술, 특히 클림트의 도시라고도 합니다.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 전시돼 있는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연인의 표정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황금빛 의상이 주는 오묘함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연인의 ‘키스’가 얼마나 달콤한지 그 순간을 환상적인 황금빛 문양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현대적인 화려함 안에 무거운 장엄함을 감추고 있습니다.

천년 전 중세미술 기법을 현대미술로 복원한 클림트의 ‘키스’.

그 장엄한 분위기가 어디서 왔을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황금빛 의상은 모자이크 기법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클림트는 천년 전 중세미술 기법을 현대미술로 복원한 것입니다. 그는 예술가의 감성으로 정신의 추상성을 표현하는 가장 오래된 기법을 연인의 사랑하는 감정 위에 뒤덮었습니다. 천년 전의 기법을 되살려 천년의 사랑을 기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유럽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탈리아를 여러 번 다녀왔다는 클림트는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의 화려한 천장 모자이크화에서 받은 충격을 그보다 더 오래된 비잔틴 미술도시 라벤나에서 정화했다고 합니다. 저도 베네치아에서 살면서 수없이 산마르코 성당의 모자이크화를 보러 갔었지만, 라벤나가 주는 인상은 베네치아를 압도하곤 했습니다. 저는 라벤나를 ‘꿈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모자이크화를 만드는 색유리가 내는 특유의 광택이 자연의 빛과 만나 예술적인 자유로움을 비로소 펼쳐낸 최초의 미술이기 때문입니다.

라벤나는 이탈리아 동부 해안에 위치한 작은 도시입니다. 서로마제국이 기울어져 가던 서기 402년 밀라노에 이어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가 되었던 도시로, 동고트족에게 끝내 지배받으며 서로마제국의 끝을 보았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가진 동로마제국의 유스티아누스(Giustianus, 482~565년) 황제의 노력으로 540년에 재탈환해, 로마의 영광을 되살리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서기 400년대와 유스티아누스 황제시대에 동로마제국의 비잔틴 미술이 라벤나를 장식했는데, 오늘날의 라벤나는 그 당시 제작된 건축과 미술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비잔틴 미술도시입니다. 라벤나 기차역을 빠져 나오면, 동고트족의 왕 테오데리쿠스(Theodericus, 454~526년)의 영묘가 도시 입구에 있으며, 시내 중심부에는 라벤나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중세 초기 비잔틴 성당들이 즐비합니다.

갈라의 영묘 내부에 있는 돌무덤 위에는 아치형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독교 성인들 사이에 놓여 있는 물그릇에서 물을 마시는 비둘기다.

서로마 황제의 딸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 동고트 황제의 개인 예배당으로 지어졌던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그리고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라벤나 재탈환을 기념하는 산 비탈레 성당에서 중세 비잔틴 미술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와 산 비탈레 성당은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멸망한 서로마의 전통을 다시 이어보려는 동로마 황제의 열망을 느끼는 있는 곳입니다.

중세 초기 비잔틴 미술을 보여주는 황후의 영묘는 로마의 멸망을 운명으로 겪은 한 여인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영묘의 주인 갈라 플라치디아(Galla Placidia, 388~452년)는 서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347~395년)의 딸로, 로마제국이 서고트족에게 정복당한 뒤 포로로 잡혀 서고트의 왕 아타울포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로마에서 프랑스 남부로 이주하며 살다가 결혼 1년 만에 아타울포왕의 죽음으로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재혼 후 얻은 아들 발렌티니아누스가 로마 황제에 오르면서 다시 황후가 됩니다. 그러나 아들이 어렸기에 대신 섭정을 하며, 꺼져가는 로마의 마지막 운명을 끝까지 지켜내고 죽었던 강인한 여인이었습니다.

갈라는 고향 라벤나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으며, 그녀의 영묘는 동로마 제국의 초기 기독교 미술양식을 담은 비잔틴 미술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바깥에서 보면 이것이 로마 황후의 영묘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소박한 외형을 가진 그녀의 무덤은 내부에서 더없이 빛납니다.

십자가형 구조의 벽돌로 지어진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색유리로 장식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궁륭형 천장 중앙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 청금석 유리 모자이크 사이에 황금 십자가가 있으며 주변으로 99개의 황금별들이 퍼져 있습니다. 99는 무한대를 뜻하는데 무한한 우주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다는 뜻입니다. 돌무덤 위에는 아치형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독교 성인들 사이에 놓여 있는 물그릇에서 물을 마시는 비둘기입니다. 예수가 주는 생명의 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모자이크화를 보면 이 그림에 숨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모자이크화에는 양들에게 풀을 먹이는 목동이 있습니다. ‘선한 목자’라는 작품입니다.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에 그려진 양들에게 풀을 먹이는 목동이 있는 ‘선한 목자’는 동로마제국 비잔틴 미술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에 그려진 두 개의 에피소드는 사실, 국민에게 맑은 물과 풀을 먹이고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 황제의 역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 플라치디아는 비록 꺼져가는 혼란한 로마제국의 딸이자 황후였지만, 통치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후손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라벤나가 아닌 로마에서 죽었지만 그 정신만큼은 라벤나로 귀환하고 있습니다.

약 100년 후 동로마제국이 라벤나를 재탈환한 후 세워진 산비탈레 성당은 평면성과 상징성이 잘 표현된 비잔틴 미술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를 나와 고요한 잔디밭을 지나면 팔각형으로 지어진 높은 성당의 입구가 보입니다. 초기 기독교 성당들이 신과 인간의 공간을 대변하는 팔각형의 상징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떠올리면서 성당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원색으로 치장된 색유리 모자이크 장식이 황홀하게 다가옵니다. 높은 중앙 천장에는 상징성을 부여하는 기하학 무늬들이 초록과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태양을 상징하는 신의 빛과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의 향연이 갈라 플락치디아의 영묘 천장과는 또다른 감성을 전해줍니다.

신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장식에서 자연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상상해 그려낸 산비탈레 성당의 천장은 비잔틴 미술이 상징성으로 벗어나 자연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즐겼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기둥의 장식에도 다양한 동물과 식물 문양을 창조적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에 인간이 꿈꾸는 상상력을 더해 원색적인 색과 빛으로 표현해 낸 초기 비잔틴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으면, 클림트가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은 그저 똑같이 재현하는 것만으로 인간에게 만족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상상력의 영감을 받고, 색과 빛은 우리의 예술적 감성을 자극해서 감상이 즐거운 예술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라벤나의 정원에서 새삼 깨닫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