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가 남 일인가…정부 의지가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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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전세사기가 남 일인가…정부 의지가 안보인다 피해자 선별에만 골몰, 이래서야 피해지원 실효성 있나

기사입력2023-05-04 14:05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우선 저희는 원칙적으로는 전세사기라는 매우 예외적인 대상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해야 된다라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전세사기 지원에 대한 입장이 아주 강경하다. 지난달 27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을 발표한 브리핑 자리에서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선별적 구제에 초점을 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예외적인 경우에만 개입한다는 원칙을 선명히 밝혔다. 이 밖에도 명백한 범죄에 준하는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보증금 채권의 공공매입 요구에 대해서도, 형평성을 거론하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수 차례에 걸쳐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이런 강경한 의지는 정부가 내놓은 전세사기 특별법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별법 지원대상을 “아래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임차인”이라고 명시했다.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이라는 요건을 통해, 보증금 3억원과 면적 85㎡로 지원대상을 제한했다. 추가로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와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등의 요건을 통해, 다수 피해자가 발생해 수사가 개시된 범죄로 거듭 지원대상을 좁혔다.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피해자 지원법이 아니라 피해자 선별법이란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는 국회 법안소위 논의과정에서 수정안을 내놓았다. 대상주택의 면적 요건을 삭제하고, 보증금 수준은 3억원을 기준으로 하되, 국토부 내 전세사기피해 지원위원회에서 최대 150% 범위 내에서 보증금 규모를 조정키로 했다. 또 기존의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라는 기준도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변제받지 못한 모든 경우를 포함하도록 확대키로 했다.

정부의 대책발표에 앞선 지난달 26일,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참여연대>

이후에도 논란이 거듭되자, 변경된 조건으로 보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대다수 가구가 지원대상에 포함된다는 설명자료도 내놓았다.

지원대상을 확대해 미추홀구 피해자들이 특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정부의 의지가 보이지는 않는다. 여전히 허들을 세우고 피해자를 선별하기 위해 조건을 이리저리 들이대는데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3일 정부가 제안한 특별법안에 대해 “모호하기 그지 없는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한다고 명시하여 피해자들을 걸러내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내용들은 제외했다”고 비판했다.

또, “보증금 채권 매입이 포함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가로막고 있다”며,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빠진, 정부여당의 피해자 골라내기 특별법을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사기 피해구제에 정부가 나선 전례가 없다는 원희룡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강하게 규탄했다. “이미 정부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혈세를 들여 매입하고, 건설회사들의 미분양 아파트까지 매입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인데, 원 장관은 선례가 없다는 거짓 주장으로 피해자들을 또다시 절망하게 만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특별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지 않는다면, 전세사기 근절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더욱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의 일이고, 올해들어 피해자 세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마저 발생했다.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면, 그리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신속히 마련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일이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은 집을 소유하지 못해 빌려서 사용했을 뿐이다. 집 못 가진 것이 죄가 되는 사회가 아니라면, 국가가 마땅히 세입자들이 입은 피해를 살피고 도와야 한다.

정부가 과연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지, 전세사기 특별법의 향후 논의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