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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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삶은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의 반복이다 모든 반복은 차이를 만든다…카르마

기사입력2023-09-10 00:00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매년 8월 찌는 듯한 더위가 지나면,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섯 손가락을 넓게 펼쳐 보았을 때, 손 사이로 더운 기운이 없는 선선한 바람이 흐른다. 이럴 때마다 언제나 생각한다. ‘카르마가 바뀐다.’

지난 7월, 동료의 초대로 ‘이완과 명상을 위한 미니멀리즘 음악 플레이리스트–음악은 이렇게 흐르고’라는 공연에 다녀왔다. 이 공연은 지쳐가는 일상에 스스로 평정을 구하기 위해 ‘전자적 숲’으로 들어서는 현대인의 여러 시도와 문화 양상에 주목한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전자적 숲;소진된 인간’의 한 프로그램이다. ‘음악은 이렇게 흐르고’는 TIMF 앙상블이 연주를 맡았고 챗 GPT와 여러 플랫폼의 플레이 리스트, 그리고 음악전문가 김호경이 선별한 미니멀리즘 음악을 관객에게 들려줬다.

1960년대부터 작곡된 미니멀리즘 음악은 매우 제한적이거나 최소한의 음악 요소를 활용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음악들과 다르게, 미니멀리즘 음악은 단순한 패턴을 가진 선율만을 반복한다. 반복. 방금 찾아왔던 소리가 잠시 머무른 뒤 되풀이된다. 내게 반복은 안정감보다는 지루함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유튜브를 통해 미니멀리즘 음악을 듣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곡을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기승전결이 있는 음악과 다르게 전개가 예측되고 그 시간을 기꺼이 참았던 적은 없었다. 이완과 명상을 위해 미니멀리즘 음악을 들으러 가다니. 상상만으로 아득해졌다.

동료와 인근 찻집에서 차가운 차를 한 잔 마신 뒤 천천히 걸어 미술관으로 향했다. 덥고 무거운 공기를 가로질러 우리는 서늘한 미술관에 도착했다. 티켓을 바꾸고 극장에 들어가니 사람들로 가득 찬 객석이 보였다. 핸드아웃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들, 공연 시작 전 옆자리 동행과 속삭이는 사람들, 함께 앉아있는 관객들을 살펴보는 사람들. 객석에 앉아 내가 느꼈던 것은 생동감이었다. 조명이 꺼지고 연주자들이 입장했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박선호, 심동수 ‘땅, 하늘 바다 어디에서도’, 2019, 싱글 채널 비디오, 01분 49초, 비디오 스틸 이미지.

첫 번째 곡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String Quartet No. 2, Company’. 이상하게도, 연주가 시작되고 음악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선율들이 단순한 무늬를 그리며 쌓이는 것처럼 보였다. 연주가 진행될수록 그 무늬들이 서서히 어우러지며 클라이막스를 맞이했다. 같은 것이 더 이상 같지 않게 느껴지는 마법 같은 경험.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몰입했다.

이어서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Mrs. Dalloway:In the garden’,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Spiegel im Spiegel’ 등이 이어졌다.

공연 중반, 피아니스트들이 무대를 떠난 뒤 몇 명의 연주자들이 무대 뒤에서 입장했다. 이들은 작은 나무 기둥처럼 생긴 악기인 클라베 한 쌍만을 손에 들고 있었다. 잠시 후,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의 ‘Music for Pieces of Wood’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무 조각을 위한 음악’. 특별한 악기가 필요하거나 복잡한 기술을 요하는 음악이 아니지만, 이 곡은 엄밀함과 정확성을 필요로 했다. 첫 번째 연주자가 일정한 리듬으로 클라베를 두드리고, 뒤이어 다음 연주자들이 나무를 두드리며 연주를 이어갔다. 이 음악은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다. 이 리듬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연주는 한동안 계속되었고, 연주자들은 길을 잃지 않고 정확하게 함께 멈췄다. 나의 동료는 나무 조각을 위한 음악은 연습만 하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고 귀띔해 줬다. 연주를 보고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르게 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다.

대체로 미니멀리즘 음악은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음악이었다. 반복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반복은 차이를 만들기에, 똑같은 반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 속에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차이를 견디는 것. 그것이 내가 미니멀리즘 음악을 들으며 느낀 반복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다.

유난히 힘들었던 올해 여름을 지나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삶은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의 반복이며 이는 지루하거나 견디기가 어렵다는 것. 그러나, 반복은 사실상 반복되지 않는다. 모든 반복은 차이를 만든다. 이 과정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며, 그때 비로소 나를 잊고 현재를 짊어질 수 있다. 카르마. 카르마가 바뀌는 것은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이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는 것일 테다. 내년에도 여름의 더위는 반복될 테지만, 우리는 새로운 더위를 느낄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