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화려한 표면 아래 숨겨진 ‘노동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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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전시의 화려한 표면 아래 숨겨진 ‘노동과 시간’ 통념을 뒤엎는 ‘수잔 콜리스’의 초라하지만 값비싼 작품㊦

기사입력2024-06-13 12:3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영국의 현대 미술가 수잔 콜리스(Susan Collis)는 작업을 통해 전시의 화려한 표면 아래 숨겨진 노동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인식 밖에 있었던 작업과정을 조명한다. 그녀의 작품은 사치스러운 재료와 정교한 제작 과정을 통해 일상의 흔적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관객에게 미적 즐거움과 깊이 있는 내러티브를 동시에 전달한다(https://www.junggi.co.kr/article/articleView.html?no=32348).

이러한 접근방식은 예술작품이 단순한 결과물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그 과정에서의 노동과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술을 하는 예술적 과정=수잔 콜리스의 작업은 귀한 재료로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공예적인 속성 때문에, 그 과정에서 높은 노동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완성된 작품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은폐되어 있다.

수잔 콜리스, ‘On Vacation’, 2008, 종이에 브리오 잉크와 연필, 15×13.75×10 inches. <출처=www.seventeengallery.com>

콜리스는 ‘땀(Sweat)’이라는 참여형 퍼포먼스를 통해 작업 과정에서 숨겨진 노동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008년 런던의 세븐틴 갤러리(Seventeen Gallery)에서 선보인 ‘땀’은 자원하는 참여자들과 함께 진행한 작업으로, 참여자들이 가방의 패턴을 손수 그려서 가방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 퍼포먼스에서 참여자들은 천이 아닌 파브리아노(Fabriano) 종이에 연필과 볼펜을 사용해 가방의 패턴을 정교하게 그린다. 테이블에 앉아 세밀하게 작업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은 마치 시장이나 중고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탁 가방을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패턴이 완성된 종이는 잘라서 가방으로 조립되는데, 이를 통해 드로잉과 조각의 중간 형태로 탈바꿈한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에는 ‘Tony Amore’, ‘Ruby’, ‘Bessie’ 등이 있다.

처음 보면 종이로 만든 일회용 가방처럼 보이거나 일상적인 물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패턴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콜리스는 수작업의 정교함과 노동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참여자들 앞에는 디지털 시계가 깜박이고 있는데, 이 또한 하나의 작품이다. ‘One day…’라는 이 작품은 그런데 LCD 시계가 아니다. 손으로 그린 초당 세 개의 프레임으로 표시되는 수천 개의 드로잉으로 구성된 24시간 스톱프레임 애니메이션이다. 초를 나타내는 중앙 두 개의 흰 점은 매초 맥박처럼 깜박거린다. 이 시계는 ‘땀’ 퍼포먼스 참여자의 근무시간을 관리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콜리스의 인내와 지속적인 노동을 상징한다.

수잔 콜리스, ‘One day…’, 2008~현재, 디지털 애니메니션, 재생시간 24시간. <출처=www.seventeengallery.com>

이 작업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전시되었는데, 전시가 완성된 결과물보다는 생산 과정과 조건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이 작업도 완성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전시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땀’ 퍼포먼스와 관련된 작업들은 콜리스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작가는 생산조건과 다양한 생산방식을 작품의 핵심으로 삼아, 작품 자체가 아닌,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생산과정을 깊이 사유하게 한다.

이 작업은 세밀한 작업과정과 노동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노동과 생산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산업적 생산방식과 수작업 방식을 대비시키며, 노동과 가치를 재평가하게 한다.

콜리스는 이 작업을 통해 예술작품이 단순히 결과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도 중요한 예술적 요소임을 강조한다.

작가의 작품은 우리에게 예술이 생산되는 맥락과 노동의 의미, 일상과 예술의 본질을 곱씹어 보게 한다. 그는 전복과 변형을 통해 기존의 인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예술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 속에 담긴 노동과 과정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