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기업인들이 욕을 먹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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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우리나라에서 기업인들이 욕을 먹는 이유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먹튀 회장님의 일당 5억짜리 노역

기사입력2014-03-25 10:5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구치소 노역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수백억원의 세금 포탈을 지시하고 횡령 혐의까지 받은 기업 회장이 호화 도피생활을 해오다 벌금을 내지않은 처벌로 일당 5억원짜리 노역을 택했기 때문이다. ‘일당 5억짜리 노역’ 자체가 비상식,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사회지도층에 대한 법집행을 엄격히 하겠다는 현 정부의 기조와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조치에 국민들은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허 전회장은 2011년 대법원에서 세금포탈 지시와 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및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벌금을 내지 않아 수배된 상태였고 뉴질랜드 카지노에서 도박 게임을 하는 모습이 일부 언론에 포착되는 등 호화생활로 지탄을 받아 왔다. 검찰은 최근 허 전 회장이 자진 귀국해 노역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받고 신병을 확보,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입감했다. 이에따라 허 전 회장은 하루 노역에 일당 5억원씩, 49일간 노역을 하게 된다. 허 전 회장은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국세 136억원과 지방세 24억원도 모두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벌금을 선고하면서, 벌금 대신 노역을 하는 환형유치 환산금액을 정한다. 도시 일용노동자의 일당에 해당하는 5만원이 통상적이며, 노역장 유치기간이 최대 3년이기 때문에 벌금이 크면 노역 일당도 커진다. 벌금 2340억원을 선고받은 권혁 회장은 3억원,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억1000만원, 벌금 400억원을 선고받은 손길승 SK 명예회장은 1억원으로 환산한 게 그 예다. 내로라 하는 재벌들과 비교해도 허 전 회장의 일당은 사상 초유다. 일반인의 그것과 비교하면 무려 1만배에 해당된다.

법조계에서는 한 마디로 당시 법원에서 작심하고 봐준 판결이라고 지적한다. 형법 69조 2항에 따르면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경우 1일이상 3년이하의 범위내에서 노역장에 유치한다고 돼 있는데, 3년 범위도 무시하고 49일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가령 254억원이 선고됐는데 3년(1095일)으로 환산하면 일당은 2319만원이 된다. 이럴 경우 허 전회장이 254억원을 내지 못하면 3년 내내 유치장에서 노역을 하게 되지만 일당 5억원으로 환산해 49일만 버티면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노역을 받아도 집행이 어려워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일부 허드렛일을 제외하곤 실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결국 별로 하는 일 없이 일당 5억원씩 수백억원의 벌금을 대신하는 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행 환형유치 제도의 문제점이 다시 부각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민 법 감정을 무시하고 법을 어긴 재벌 등 기업인들에 대한 편향된 판결은 이 참에 바꿔야 한다. 예를들어 환산금액 최소액인 5만원의 몇배를 넘지 않게 한다든지, 노역장 유치기간 상한을 3년에서 10년 등으로 연장한다든지 형평에 맞는 개정을 통해 특혜논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탈세·편법으로 얼룩진 일부 기업인들에 대한 처벌이 이처럼 비정상, 비상식적임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기업인들이 욕을 먹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일부 기업인들의 반사회적이고 삐뚤어진 일련의 행태와 그에 맞춘 법제도의 편향과 허술함은 기업인들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1~2억원 아니 수천만원이 없어 견디지 못해 파산을 하거나 벌금 몇백만원을 선고받고 노역이 두려워 빚을 내 벌금을 내는 소기업인, 소상공인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 아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