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만 지우고 선거권리는 제한…반민주적 발상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의무만 지우고 선거권리는 제한…반민주적 발상 친박·비박당은 선거법 개정안 반대이유를 솔직하게 밝혀라

기사입력2017-01-12 19:16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것에 대해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사실상 반대입장을 밝힘에 따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11일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9일 개최된 법안소위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후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찬성에서 반대입장으로 급선회한 탓이다. 그런데 속사정을 보면 ‘급선회’란 표현은 맞지 않다. 친박당과 비박당의 반대방침은 ‘예상’된 수순이었고, 오히려 지난 9일 법안소위에서 있었던 ‘여야 만장일치 찬성’이 의외라고 분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안행위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 홍철호 의원은 “18세 선거연령 인하와 관련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조정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있지 않다”며 “그런데 몇 달 후에 있을지 모르는 이번 대선부터 적용하는 것은 여야의 입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좀 더 큰 틀에서 봐줘야 한다”며 개정안 처리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냥 ‘반대한다’고 주장하면 될 것을 낯이 뜨거워선지 모르겠지만, 말을 비비꼬는 정성이 사실 안쓰럽다. 홍 의원 말을 쉽게 해석하면, ‘조속한 시일내에 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대선때는 안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전형적인 화법이고, 홍 의원은 친박당 소속이다.

솔직하지 못한 점에서는 비박당 역시 친박당과 다르지 않다. 바른정당 황영철 의원은 “개인적인 소견은 18세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투표와 관련된 충분한 정치의식이 있고 감당할만한 연령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황 의원은 “선거 룰이 이런 방식으로 통과돼선 유효성과 합리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여야 큰 틀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정개특위를 만들어 그 속에서 합의 공감을 얻어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황 의원 ‘개인적인 소견’은 ‘충분한 정치의식’이 있는 청년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 ‘시대적 흐름’임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속한 당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역시 거짓말이다. 황 의원을 포함 바른정당 모든 의원들은 새누리당의 정체성이 자신들의 ‘소견’과 맞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친박당을 뛰쳐나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황 의원은 자신의 소견과 다른, 당 핑계를 대고 ‘유효성’ ‘합리성’ ‘합의 공감’ 등 좋은 말을 쓸데없는 곳에 치장하고 있다.

친박, 비박 구분없이 자신들의 속내를 숨기고 있지만,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안다.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청년들이 새누리당을 혐오하고, 지지도에 미세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바른정당도 싫어한다는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권력을 제대로 내놓지 않았던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다. 청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를 찾아서 합당한 정책으로 이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정도다. 그리고 지난 50년 이상의 집권기간 내내 청년들의 지지를 복원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기회를 줬음에도 하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그럼에도 이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또 다시 책임을 회피하고, 청년들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사실상 반헌법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투표권은 헌법에 보장된 의무이기도 하지만 권리다. 병역법이나 근로기준법 등 다른 법령에서도 18세 이상의 국민은 국가·사회의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수준을 갖추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병역의무도 이행하고, 친권자의 동의없이 자신의 결정으로 생산에 참여하고, 그에 따라 납세의 의무도 부담하는 나이가 18세다. 이들에 대한 투표권 제한은 의무만 부담시키고 권리는 부여하지 않겠다는 반민주적 발상이다.

물론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가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제한한 공직선거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했다. 합헌결정의 근거는 19세 미만 청소년의 정치적·사회적 시각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는 점, 현실적으로 교사 등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이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왜곡될 수 있다는 이유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3명의 헌법재판관은 위헌으로 판단하고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중등교육을 마치는 연령인 18세부터 19세의 청소년은 취업문제나 교육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정치적·사회적 판단능력이 크게 성숙해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능력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반대이유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는 별개로 18세 청년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경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법과 정책적 관심을 높이는 유인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며, 이들의 정치적 책임의식을 고양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청소년들의 정치참여를 통해 참여민주주의의 가치를 함양하고 공유할 수 있는 합리적인 유권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OECD 국가 중에서 폴란드를 제외하면 선거연령을 19세로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18세가 되면 선거권을 행사할수 있다. 18세에 이른 우리 청소년이 여타 OECD국가의 같은 나이 청소년에 비해 정치적·사회적 의식이 뒤떨어졌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최근 탄핵정국에서 보여준 청소년들의 정치의식은 어른들의 그것, 그 이상이었다. 95% 이상의 국민이 대통령 탄핵과 퇴진을 요구하며 광장으로 집결하는데, 그 곳에 청소년들이 있었다. 반면 5%가 모여 억지와 궤변으로 정국을 호도하고자 하는 반민주·반역사적 집단들이 모인 곳에선 청소년들을 볼 수 없었다. 이같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청소년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더 이상 ‘아이’ 운운하며 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낡아빠진 ‘어른’의 좁은 틀에 청소년들의 꿈과 이상을 가둬서는 안된다. 청소년을 포함, 우리 사회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 못하고 기성세대가 기득권만 고집하고 안주한 결과와 탄핵정국은 무관하지 않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선거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솔직한 이유를 밝히고, 그것에 대해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민들의 심판이 두려워 개정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겠다면 법안소위 결정에 따라 개정안을 전체회의에 부의하고,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회 본회의로 넘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