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끝’이 아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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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이재용 구속…‘끝’이 아닌 ‘시작’이다 재벌개혁 놓치면 ‘정의’와 ‘국민경제’는 사라진다

기사입력2017-01-16 20:47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특별검사팀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및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의 횡령, 국회증언감정법의 위증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16일 밝혔다. 특검은 또 같은 날 삼성의 핵심 수뇌부인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을 불구속 입건했다.

당연한 결과다. 이 부회장이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하기 위해 400억원이 넘는 뇌물을 최순실에게 갖다 바친 사건이다. 특검은 이날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총액은 피의사실이라는 이유로 직접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특검이 그간 정례브리핑을 통해 언급한 뇌물액수만으로도 400억원을 상회한다. 특검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의 자금을 출연했다. 또 최순실씨 모녀가 독일 현지에 세운 ‘코레스포츠’와 220억원대 계약을 맺고 이미 80억원을 송금했다. 이밖에 최씨 조카인 장시호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특검 조사 결과 확인됐다.

뇌물공여액 규모가 400억원을 넘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구속사유다. 게다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액만 수천억원에 달해 죄질 자체도 나쁘다. 구속수사는 불가피한 결정이란 얘기다. 더욱이 이 부회장은 국민 모두가 지켜보는 국회청문회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부하직원에게 떠 넘겼다는 위증의혹을 받았다. 이 또한 특검수사결과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은 “대통령 독대 후 2016년 초쯤 최순실을 알게 됐으며 삼성의 재단 지원에 관해 보고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특검수사 결과 2015년 7월25일 독대과정에서 승마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 이후 삼성 수뇌부를 불러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한편 최씨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 또한 직접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수사없이 불구속수사를 한다면 증거인멸을 계속할 것이 너무 명확하다는 점에서 구속수사 결정은 당연한 것이다.

국민의 법 감정을 떠나 법리적인 측면에서 구속수사가 불가피함에도 ‘국가경제’, ‘기업의 존망’까지 거론하며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예상했던 일이다. 다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모두가 일시에 입을 모아 각각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형식 자체는 다소 생소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빠졌다. 보통 재계단체 합동으로 의사를 표시했던 종래관행에 비춰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또한 재계단체가 권력에 보였던 그간의 속성을 고려하면 납득하지 못할 바 아니다. 자신들 위에 있는 유일한 존재, 대통령이 식물이 되었기에 굳이 재계단체라는 우산조차도 필요없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우리사회 누구도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오만함이 방패막이인 우산없이 재계단체 각자의 명의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도 국민들의 명령을 받아 역사적인 과제, 재벌체제를 수술하고자 하는 특검의 칼날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재계 세 단체가 각각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핵심은 하나다. 이 부회장의 구속결정으로 국가신인도 하락, 글로벌 국내 대기업의 이미지 실추, 기업인의 ‘경제하려는 의지’ 저하 등 늘 하던 얘기다. 그런데 하나만 묻자. 우리나라 재벌총수 중 감옥에 가지 않았던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재벌기업이 모두 망했나. 오히려 재벌총수가 감옥에 가 있을 때 정치적인 고려없이 경제적인 결정을 통해 기업은 더 공룡화됐다는 것이 사실에 더 부합한다.

더 이상의 정경유착은 국민경제뿐만 아니라 재벌기업 스스로의 성장 역시 발목을 잡는다는 현실을 깨닫고 시대착오적인 망언과 행동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오죽하면 재벌총수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새누리당의 분파, 바른정당까지 논평을 통해 재벌개혁을 언급했다. 논평을 통해 바른정당은 “이번 영장 청구가 대한민국에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해 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재계단체의 반발과 달리 국민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특검이 삼성의 핵심 수뇌부 3인을 불구속 입건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이규철 특검보는 “국가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가경제’와 ‘정의’를 고민한 결과 특검이 양자의 균형지점으로 삼성 수뇌부 3인에 대한 불구속수사를 결정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국민적 여론이나 법 감정에 따르면 오히려 특검의 결정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국가경제’와 ‘정의’, 양자는 어느 하나를 취하면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선택사안이 아니다. ‘정의’가 바로 서야 재벌총수의 이익만으로 귀결되는 ‘국가경제’가 아닌 ‘국민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국민 대다수가 특검을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이유는 경경유착으로 수혜를 받는 집단이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수사 결정에 대해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고, 향후 특검의 행보를 지켜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다른 기업들의 재단 출연금도 부정청탁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면거래, 면세점 청탁 등의 혐의로 출국금지된 SK의 최태원 회장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삼성그룹 다음으로 많은 128억원의 출연금을 제공했다. 또 최순실의 요구에 따라 광고회사인 ‘더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원의 광고일감을 몰아줬고, 특정 중소기업과 10억5000만원의 납품계약을 맺었다.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정 회장은 삼성의 이 부회장 못지 않게 최순실에게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

이외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그 자체의 법적성격이 뇌물이라는 전제하에 특검은 모든 기업에 대해 예외없이 엄정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제공한 모든 기업의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그리고 엄중한 법원의 심판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특검이 우려하는 ‘국가경제’는 법과 원칙을 통해 ‘정의’를 세우는 과정에서 재벌총수들의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전제로 국민적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발부 여부는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결정된다. 1000만 촛불과 국민적 여망 그리고 특검의 성실함이 더해져 만들어낸 천재일우다. 이번엔 반드시 재벌총수들의 전횡에 철퇴를 가하고, 정경유착의 잔뿌리까지 뽑아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아주 오랜기간 동안 이 땅에서 또 다시 ‘정의’와 ‘국민경제’가 실종되는 고통스런 역사를 감내해야 한다.